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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반 Nov 02. 2023

월간 디깅 #15 - 11월

공허가 남긴 빈자리

23. 11

높디 높은 창공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공허가 남긴 빈자리.


1. Camera's Rolling  (Agnes Obel)

Citizen of Glass 출시 후 3년 만에 "Myopia"로 돌아온 덴마크의 가수 Agnes Obe이다.

본인의 모든 곡을 직접 작곡, 작사, 프로듀싱까지 한다는 점에서 그녀가 가진 능력이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몽환적인 멜로디, 톤이 약간 낮은 목소리, 꾹꾹 눌러쓴 듯한 노랫말은 그녀를 대표하는 것들이다.

그녀가 가진 이 독특한 분위기는 노르웨이의 가수 "Aurora"와 북유럽 감성과 미국 가수 "Lana Del Rey"의 우울함을 잘 섞은 듯한데 추운 바다의 해일처럼 깊고도 어두운 분위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읊조리듯 내려앉는 그녀의 목소리가 공중으로 퍼질 때, 희미하게 사라지는 입김과도 닮아있다.

그녀가 가진 앨범의 곡 전반에 걸쳐 피아노는 대단한 존재감을 갖는다.

하지만 이때의 라이브에선 도입부의 피아노를 마림바로 대체했는데 덕분에 추운 가을밤 속의 별들처럼 반짝인다.






2. Adan no Shima no Tanjyosai (Ichiko Aoba)

얇은 유리라서 고작 빛만으로도 이리저리 부서지고 분리되고 그렇게 조각나는, 그런 여린 목소리.

숨소리처럼 깨끗한 목소리에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강한 힘이 내재되어 있다.

듣기만 해도 물속 어딘가, 우주 속 어딘가 있는 느낌,

"공기"라는 실체 공간과 "공허"라는 가상의 공간 사이에 붕 떠 있는 감상은 마치 귀로 듣는 부유감 같다.

앨범 재킷의 수영하는 모습은 허공 속의 부유감, 마음이 텅 빈 공허와 닮아있다. (실제로 이 앨범의 탄생은 그녀가 2020년 오키나와를 가게 되면서 탄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감성이 완전히 새롭지도 않다만, 그런데도 그 속에서 자신만의 해석을 덧입혀 새롭게 재탄생시키기도 한다.

이와이 슌지와의 콜라보. 콜라보 한 영상에서 피아노가 덧입혀져 한층 깊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3. 잊는다 (망각화)

가을에서 겨울 사이, 바다를 보러 갈 때마다 무조건 한번은 듣는 곡.

목소리에 쓸쓸함과 고독함이 잔뜩 베여있다.

밴드 곡이지만 일반적인 밴드 세션 진행이 아닌 어쿠스틱과 바이올린의 조합만으로도 처량하고 외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거기에 절절하지만 담백한 목소리의 조합이 매우 훌륭하다.

이렇듯 정리되지 않은 날 선 감정과 청춘과 추억 그리고 고독함은 인디밴드가 가지는 중요 요소일 것이다.

망각화는 이런 쓸쓸함에 최적화된 인디밴드이다.

2007년 "고래"라는 곡으로 데뷔했지만 사실상 2003년부터 20년가량 활동한 장수 밴드이다.

이쯤 하면 대중성이 없기 힘들 정도인데 안타깝게도 2014년 정규 3집을 끝으로 10년 가까이 활동과 소식이 없다. 아직 이들을 기억하는 이들을 위해 머지않아 다시 활동해 주길 바란다.






4. Appeasing The Chief(Hostiles Soundtrack) (Max Richter)

서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사운드트랙인 만큼 웅장하면서도 그 이면에 건조함이 존재한다.

맑은 하늘 아래에 건조하게 매말라가는 거친 땅이 쓰리게 긁힌다.






5. Empty Note (Ghostly Kisses)

원곡은 일렉트로닉 장르가 강하게 느껴지지만, 어쿠스틱 버전은 원곡에서 느껴졌던 공허함이 한층 두드러진다. 굳이 절절하게 목메 부르지 않아도 낮은 목소리에 감도는 물기가 상실과 그리움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노래 제목처럼 곡 곳곳에 보이는 빈 곳은 말 그대로 공허함이 되어 이 곡의 분위기를 살리고 있다.

어쿠스틱에선 신디사이저를 피아노의 기타로 대체했는데 덕분에

피아노에서 드문드문 듣기는 나뭇결의 소리도 또 하나의 악기가 되어 분위기를 한층 살려주고 있다.

그리고 발음할 때에 뭉개지는 언어들이 영어임에도 불어처럼 들리는 착각이 드는데 그건 아무래도 그녀가 프랑스계 캐나다인이라서 그럴 것이다. 그녀의 디스코그래피 전반에 깔린 프랑스 음악의 감성을 알아차린다면 한층 더 풍부하게 음악이 다가올 것이다.


어쿠스틱도 원곡도 아닌 색다른 느낌의 라이브 영상.






6. Bonfires (blue foundation)

Twilight 영화에 삽입곡이 실린 후 인지도가 확 올라간 덴마크 그룹, Blue foundation.

이들의 음악은 일렉트로닉 비트와 유기적인 악기의 혼합 덕분에 상당히 매혹적이고 깊은 감성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Bonfire"에서는 도입부터 오래된 측음기 같은 잡음에서부터 이미 표현하고자 하는 분위기 조성을 완벽히 해내고 있다. 무르익은 분위기는 불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연인과의 정서적인 교감을 담은 가사의 전달력에 힘을 실어준다. 가사 중 [You stroke my fears away]에서 알 수 있듯 이 곡은 정서적 및 육체적인 교감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가사에선 따뜻한 위로를, 멜로디에서는 뜨거운 포옹을 느낄 수 있다.






7. Home (Hania Rani)

피아노곡임에도 전자음악처럼 들린다.

이는 그녀가 피아니스트이지만 일렉트로닉과 장르를 뛰어넘어 다양한 뮤지션과 작곡가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심사는 그녀의 소통방식을 확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음악이 언어라면, 장르는 각기 다른 언어일 것이다. 문자는 사고와 문화에 큰 차이를 준다. 그렇다면 음악과 그를 표현하는 수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미 일찌감치 유럽에서 주목하고 있는 Hania Rani는 폴란드의 젊은 피아니스트이다.

클래식 전공을 했음에도 신디사이저와 스타인웨이 등 여러 악기를 동시에 사용하고 샘플링을 사용하는 등 기존 전통 방식 틀에서 벗어난 행위를 보인다. 그렇지만 기본 실력이 단단히 뒷받침되어 박자나 화음의 타이밍에서 엿보이는 실력이 상당하다. 앰비언트 계열이지만 상당히 리드미컬한 사운드라, 신선하게 1시간 가량을 즐겁게 채운다.

"Home"의 수록곡은 아니지만 한시도 쉬지 않는 그녀의 손놀림이 그저 대단하다.






8.  Hometown glory (Adele)

아델의 곡 중 가장 처음으로 들은 곡 "Hometown Glory".

이 곡은 아델이 16살에 고향을 떠나 기차에서 탄 10분 만에 완성한 곡으로 알려진 곡인데, 2007년에 싱글로 발매되었기에 그녀의 데뷔곡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Hometown Glory"가 앨범 "19"에 실렸기에 19살에 작곡한 곡이라고 착각하지만)

이렇듯 이 곡의 뒷이야기를 알고 나면 그녀가 진정한 싱어송라이터임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 곡은 피아노 반주와 목소리가 전부임에도 전반적으로 전혀 부족하거나 넘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듯 목소리만으로 곡하나를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은 가수가 가장 원하는 재능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Hometown Glory"의 진정한 매력은 안전한 고향을 두고 떠나는 그녀의 심정을 전하는 표현력에 있다. 작사 당시, 많은 영감이 떠올랐을테고 가장 선명할 때 그것을 가사로 옮겨 담은 건 분명하지만, 가사에는 차마 다 담기지 못한 그녀의 복잡미묘한 심정은 곡을 들을 때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곡 기저에 잔잔하게 깔린 고독함은 지나가는 가을처럼 쓸쓸하다.

19 앨범보다 더 이전에 부른 라이브 영상. 상당히 날것의 감성이다.







9. Don't break your heart  (Savina and drones)

최초의 비트는 인간의 심장 소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첫 시작부터 고동(鼓動) 같은 소리는 일찍이 청취자 마음에 들어와 있다.

뒤이어 피아노 반주까지 덧입혀지는 순간 바다 위로 가라앉는 노을이 저만치 보인다.

기교 없는 목소리는 담백하게 읊조리며 꾹꾹 눌러쓴 가사를 흩뿌린다.

특유의 몽환적인 음색은 음표 위의 0.5cm 정도 떠 있는 것 같지만, 음절이 끝날 때마다 가라앉는 끝맺음은 머지않아 곧 바닷속에 가라앉을 것만 같다.

쓸쓸하지만 따뜻한 황혼의 바다처럼.

밀물처럼 위안을, 썰물처럼 이별을 말한다.






10. Blown-out Joy From Heaven's Mercied Hole (Thee Silver Mt. Zion Memorial Orchestra)

연말이 다가오기 전, 해가 짧아지는 어둠 속에서 심연으로 깊게 빠지기 알맞은 곡.

[He Has Left Us Alone But Shafts Of Light Sometimes Grace The Corner Of Our Rooms]라는 상당히 긴 제목을 가진 이 앨범은 2000년에 발매되었으며, Black Emperor의 반려견 Wanda를 추모하고자 탄생하였다.

이번에 소개하는 5번 트랙은 앨범명만큼이나 꽤 이목을 끄는 곡이다.

앨범 전반적으로 화음이 맞다가 틀렸다가, 예상치 못한 샘플링의 소리가 곳곳에 배치되어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왜냐면 곡이 진행됨에 있어서 무엇하나 균형을 맞추어 진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불협화음에서 오는 불안감을 유지한 채 느릿느릿 아래로 처박힐 뿐이다. 거기다 도입부터 쭉 깔린 콘트라베이스 소리는 마치 무저갱 아래로 한 걸음씩 내딛게 한다.

특히 후반부는 인간의 울부짖음이 현악기와 뭉쳐져 절규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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