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분 좀 쉬세요” 말하면서 나는 365일 근무

“선생님도 좀 쉬세요”라는 말에 웃는 이유

by 김보민

“선생님, 일요일에 아파도 갈 수 있는 병원이 있어서 너무 다행이에요. 근데 이렇게 일만 하시지 말고, 선생님도 좀 쉬셔야죠~ 병원 하루 문 닫고 푹 쉬세요.”

공휴일에 진료를 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 말이다.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환자의 말인데, 나는 항상 똑같은 미소로 대답한다.

“그니까요~ 정말 그래야죠~”

그런데 속으론 생각한다.

'쉬는 날이 어딨어요, 어딨긴... TV 광고에서나 나오는 거지.'

병원을 운영하다 보면 ‘연차’, '월차'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나 나처럼 혼자 병원을 운영하는 경우엔, 내가 쉬는 날은 병원도 다 쉬는 날이고 병원이 쉬게 되면 수입이 없기 때문에, 슬프지만 하루하루 일하지 않으면 월급이 없다. 즉, 쉬면서도 월급이 보장되는 연차, 월차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아픈 사람을 진료 해야 하는 내과이기 때문에...

명절? “아픈 사람은 명절도 없어요.”

휴가? “동네 병원 닫으면 갈 데 없잖아요.”

태풍? “태풍이 와도 혈압은 오르고, 당은 올라요.”

그렇게 한 해가 휘리릭 지나간다.


어떤 날은 39도까지 열이나고, 진짜 감기로 쓰러질 것 같아서 점심에 팔뚝에 수액바늘 꽂고 진료실 침대에 기절한듯이 누워 있었는데, 환자가 가슴이 아프다고 왔다.

“선생님~ 저 갑자기 숨이 차고 가슴이 아픈데 심장에 문제 있는 걸까요?”

나: (기침 두 번 하고) “음… 협심증 약 잘 드시고 계시죠? 심전도는 언제 마지막으로 보셨더라…”

흉통은 협심증이나 심근경색과 같은 치명적 질환의 증상일 수 있기 때문에 “저 수액 다 맞을때까지 잠깐 기다리세요.”라고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팔뚝에 수액바늘을 꽂고 환자보다 더 병색이 짙은 얼굴로 진료를 볼 수밖에 없었다.


어떨 땐 환자가 걱정하듯 말한다.

“선생님은 진짜 환자 많은데 괜찮으세요? 스트레스 안 받으세요?”

“환자분들이 건강해지시면 저도 힐링이에요~”

그 말, 반은 진짜고 반은 체념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 그 말이 진심이 되는 순간이 있다는 거다. 진료가 끝나고 환자가 “선생님 덕분에 숨쉬기가 편해졌어요”라고 말할 때, 그 짧은 말 한마디가 밤새 밀린 피로를 기적처럼 녹여버린다.


요즘 들어 깨닫는다. 내가 버티는 힘은 단순히 책임감이 아니라, 사명감에서 오는 ‘긍정적 스트레스’ 덕분이라는 걸.

실제로 하버드 의대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일이 의미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심혈관 질환 위험이 27% 낮고, 수명이 더 길다고 한다¹. 또한 일본의 한 연구에서는 ‘사회적 역할감(ikigai)’이 있는 사람일수록 우울감과 인지 저하의 위험이 낮고, 노년에도 활력이 유지된다고 보고되었다².

즉, 의사로서의 사명감이 내 몸의 피로를 덜어주는 일종의 천연 보약인 셈이다. 물론 그 보약도 과용하면 부작용이 있다. (허리 통증, 역류성 식도염, 불면증… 등등)


그래서 요즘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한다.

“내 환자들도 살려야 하지만, 나도 살아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끔은 병원 문을 닫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날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아무것도 안 함’이 하루를 넘기지 못한다.

문 닫은 날엔 괜히 불안하고,

‘혹시 오늘 그 환자 또 아프면 어떡하지?’

‘응급실 갈 일 생기면…’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문다.

아마 이게 내가 선택한 업의 숙명일 것이다. 몸은 지치는데, 마음은 여전히 환자 곁에 있다.

아프다는 환자에게 “푹 쉬세요”라고 말하는 내가, 정작 병원 의자에 앉아 엉덩이 붙인 채 밥도 못 먹고 일하는 걸 보면 가끔은 내가 코미디 같다.


그런데도 병원 문을 닫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아직도 동네 병원 하나 의지해서 건강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고, 누군가는 “선생님이 아니면 안 돼요”라며 찾아오는 그 발걸음 하나하나가 결국 내가 계속 열어두는 이유다. 또, 어쩌면 이 끊임없는 순환 속에서 나는 나의 ‘존재 이유’를 매일 다시 확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쉬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그만큼 나도 의사로 살아가는 삶이 좋기 때문이다.

아, 근데 다음 달엔 진짜 하루만 쉴까… (계획은 했지만, 안 지킬 확률 98.7%)


『진료 시간표

월~일: 진료

공휴일, 명절: 진료

감기 걸림: 진료

죽을 것 같음: 수액 맞으면서 진료』


**각주

¹Harvard T.H. Chan School of Public Health. “Sense of purpose in life and reduced mortality risk among older adults.” JAMA Network Open, 2019.

²Koizumi et al., “Ikigai as a predictor of mortality in Japanese men and women: a prospective study,” Psychosomatic Medicine,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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