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쯔하오
#Jam있는중국이야기-852 “라오쯔하오老字號” 중국, 중국인
베이징 텐언먼 남쪽 첸먼 일대는 봉건시대로 부터 그 명맥을 이어오는 유서 깊은 식당과 상점들이 밀집해 있는 곳인데, 이곳마저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자 많은 문화계 인사들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첸먼 일대에 문을 열고 있는 전통 상점이나 식당들은 하나같이 검은색 바탕에 금색으로 글씨를 쓴 규격화된 간판들을 내걸고 있다.그것은 이들이 바로 라오쯔하오 들이기 때문이다.
라오쯔하오는 상업적 가치를 지닌 일종의 무형자산이다. 창업자와 그 후대들이 오랜 세월 각고의 노력으로 지켜온 성실과 신용이라는 장인정신에 대해 소비자들이 부여하는 하나의 훈장이라 할수 있다.
중국정부는 이러한 라오쯔하오를 발전시키는 것이 전통문화의 보호라는 측면에서 큰 의의가 있음을 인식했다. 이에 따라 보호, 육성할 가치가 있는 전통상호에 보통명사나 다름없이 사용해온 "라오쯔하오"라는 호칭을 부여해 명예의 상징으로 활용하게 된것이다.
중국정부가 인증한 랴오쯔하오 상호는 전국적으로 수천개에 달한다.주로 식품, 약품, 공예품, 요식업,전통의상, 차, 전통 문화상품 등의 업종에 집중되어 있다.
베이징 관광를 간 한국사람들이 빠짐없이 들르는 同仁堂약방과, 오리구이로 유명한 취안쥐더
건륭제 황제가 야간 암행을 하다 들러 식사를 하고 상호 편액을 하사한 일화로 유명한 식당 都一處 ,
루쉰이 즐겨 찾았다는 과자집 다오샹춘 등은 베이징의 대표적인 라오쯔하오다.
대부분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라오쯔하오들은 창업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를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그중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몇가지를 추려 소개 하고자 한다.
베이징카오야, 즉 우리가 아는 북경오리구이는 새끼때부터 움직임이 불가능할 정도로 좁은 우리에 가두어 키운 오리를 재료로 한다.
이렇게 살이 오른 오리에 엿기름을 바르면서 숯불에 오래 굽는다.카오야 맛의 진수는 바로 누렇게 구워 썰어내는 오리껍질에 있다.이것을 얇은 밀떡에 양념장, 파와 함께 싸먹는 것이다.
카오야는 원래 안후이성 지방의 음식이었다. 명을 건국한 주원장이 이 카오야의 맛에 감탄하여 즐겨 먹었다고 한다.나중에 명이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천도하자 카오야도 함께 베이징으로 건너가 궁중음식이 되었다. 그 후 베이징 카오야가 민간음식으로 널리 보급된 것은 취안쥐더의 공헌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 통치황제 시절에 첸먼에서 닭, 오리 장사를 하던 양취안런은 황실에서 많은 양의 오리를 사들여가는 이유를 궁금하게 여기다가 카오야를 만드는 데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를 알고 양취안런의 상재가 "황제의 음식을 백성들도 먹게 하겠다" 는 발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렵게 궁중 요리사 전력이 있는 주방장을 초빙하고 첸먼 근처 과자점이었던" 더쥐취안" 을 사들여 이를 카오야 전문점으로 탈바꿈시켰다.이것이 1864년의 일이다. 그러나 장사가 처음엔 잘 되지 않자 어느 풍수가의 권유에 따라 상호를 "더쥐취안" 에서 " 취안쥐더"로 바꾸고 오늘날 까지 카오야 본가로서 명성을 전해오고 있다
都一處는 산시 상인에 의해 창립된 음식점으로 라오쯔하오의 하나다. 건륭황제 즉위 초기, 이씨 성을 가진 산시상인이 베이징의 어느 골목에 보잘것 없는 작은 식당을 개점했다.
그 후 건륭 17년 섣달그믐, 큰 눈이 내리는 늦은 밤이었다. 다른 가게와 식당들은 이미 모두 문을 닫았는데, 이 식당만은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 때 종을 거느린 한 귀인이 식당에 들어와 주인이 손수 만든 정갈하고 소박한 음식들을 맛있게 먹었다.
그 귀인은 나가는 길에 식당을 한번 둘러보더니 아직 상호를 내걸지 못한것을 보고 지필묵을 가져오게 하여 都一處라는 이름 석자를 써주고 갔다. 이 시각 경성 전체에서 아직 손님을 받는 식당이 오직 이곳 하나뿐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이 가게주인은 궁중으로 부터 都一處라고 쓴 상호편액을 하사받았고, 비로소 그날 밤의 귀인이 미복을 한 건륭황제임을 알게 되었다. 이 후 都一處는 그자리에서 200년을 넘게 버티며 크게 성장했다.
狗不理. 150여년의 역사를 가진 텐진의 명물 狗不理만두가 지닌 명성의 비결은 바로 만두의 독특한 제조법과 그 재료의 배합과정에 있다, 거우부리라는 이름이 탄생한 배경에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텐진의 한 음식점에 허베이 시골에서 온 개똥이狗子라는 어린 소년 점원이 있었다.만두 빚는 솜씨가 뛰어났던 그는 얼마 뒤 독립해 만두가게를 열게 되었다. 장사가 어찌나 잘 되던지 드나드는 손님에게 인사할 새도 없었다.
만두 빚는 일에만 여념이 없는 그를 두고 사람들이" 거우부리(狗不理, 개똥이가 아는 척도 않네)"라고 서운한 말을 하게 되었고, 이 말이 사람들 사이에 반복되면서 어느새 그가 빚는 만두를 가리키는 브랜드명이 되어 버렸다 한다.
라오쯔하오. 거세게 밀려드는 거대 다국적 기업 브랜드의 홍수속에서 전통 브랜드들이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지만 시장 여건은 여의치 않다.
만약 새 시대에 걸맞은 참신한 홍보선전 활동과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벗어 던지며 변화를 꾀하지 못한다면 라오쯔하오 역시 대중들로 부터 외면 당할 것이다.
문화는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며
느끼는 만큼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