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터케니 Feb 14. 2023

암에 걸린 아이에게 뭘 먹이면 좋을까요?

털북숭이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생기는 흔한 오해 - 42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몰려오는 슬픔에서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나면 '보호자'로서 나의 털북숭이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돼요. 치료의 방향은 주치의 선생님이 정해주겠지만 수술이나 항암치료로 입맛이 떨어진 털북숭이에게 힘이 될 만한 음식을 주는 것은 바로 보호자인 나만의 일이니까요.


정신없이 인터넷을 뒤지다 보면 암에 효과가 좋다는 각종 영양제와 보조제들이 넘쳐나는데 과연 이것들이 정말 다 효과가 있는지, 이걸 다 먹여도 되는 건지, 상술에 속아 노력과 돈만 날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서죠. 하지만 저 매혹적인 문구들은 모두 광고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심정에 잔뜩 주문을 하게 되는 게 바로 부모이자 보호자의 마음이 아닐까요?


이런 여러분들의 노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종양학 교과서'에 실린, 근거 있는 정보만 추려서 알려드리고자 해요. 제품의 광고만 보면 왠지 항암치료나 수술 없이도 암이 치료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주장'일 뿐, 조작된 사진이나 근거 없는 정보에 속아 넘어가지 않으셨으면 해요. 털북숭이의 질병으로 심리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여러분들과 힘겹게 암과 싸워나가고 있을 여러분의 털북숭이에게 작지만 믿을 수 있는 도움이 되길 바라요.




1. 저탄수화물? 고지방? 고단백질?

암세포의 주된 에너지는 '당'이라는 얘기 들어보셨나요? 그래서 암세포를 글자 그대로 '굶겨 죽이기' 위해 '저당 식단' 즉 저탄수화물 식단이 추천되어 왔어요. 사람에서도 암 환자는 '케톤식이'라는 극단적인 고지방 저탄수하물 식이를 하는 분들도 있죠.

수의학에서도 이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였지만 아직까진 '저탄수화물'의 효과가 뚜렷하게 입증되진 않았어요. 단지 '고단백질'이 일부 연구에서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한다는 결과가 있었을 뿐이죠(고지방식이를 하기엔 췌장염 유발이라는 위험 요소가 있기에 고려 대상이 아니에요).


하지만 '고단백질' 식단을 해줘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어요. 바로 기호성이에요. 종양 치료를 위한 수술이나 종양 자체로 인한 통증을 느끼거나 항암치료로 인해 미각과 후각의 기능이 저하된 경우 털북숭이의 식욕은 떨어지게 돼요. 이럴 때 아이들의 기호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고단백질 식이이죠.

그래서 고양이의 경우 건사료 기준 단백질 함량을 35% 이상, 강아지는 30% 이상인 사료를 급여하는 것을 추천드려요.(사료의 영양 구성표를 확인해 보시면 알 수 있어요!)


2. 오메가-3

항산화제로 유명하지만 생선 기름에서 추출되는 특성 때문에 고약한 냄새를 자랑하는 오메가-3는 노령성 질환이나 각종 염증성 질환에도 다양하게 쓰여요. 이는 암 환자에게서도 마찬가지예요. 고농도의 오메가-3(체중 당 70mg)를 급여 시 일부 암 환자에서 생존 기간이 늘어났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하지만 고양이의 경우 고농도의 오메가-3을 먹을 경우 혈소판(출혈을 막아주는 혈액 속 구성 물질)의 기능에 이상이 올 수 있다는 보고가 있기에 필요 이상의 양을 먹여서는 안 돼요. 또한 만약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다면, 고 농도의 오메가-3가 방사선 치료의 효과를 낮춘다는 실험 결과가 있으니 방사선 치료 중이라면 잠시 중단하는 것이 추천돼요.


3. 비타민과 항산화제

보조제로 쓰이고 있는 비타민의 종류는 참 다양해요. 그중 가장 대표적인 비타민 A, 비타민 B, 비타민 D, 비타민 E의 효과가 연구되었지만 아직까진 이들 중 무엇도 뚜렷한 효과를 입증하지 못했어요. 심지어 비타민 D의 경우 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급여에 더욱 신중을 기하여야 하죠.

뿐만 아니라 노령의 털북숭이에게서 흔하게 급여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항산화제들 역시 암세포에 대한 뚜렷한 이점을 어느 누구도 입증하지 못하였죠.

그래서 아직까진 특정 비타민이나 항산화제가 암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밝혀지진 않았어요. 그래서 암에 걸렸다는 이유로 평소 먹지 않던 다양한 종류의 비타민과 항산화제를 고농도로 급여하시는 건 추천드리지 않아요.


4. 섬유소(a.k.a 식이 섬유, 섬유질)

암 환자의 식단을 고단백질, 고지방식이로 바꿨을 때 가장 큰 단점은 바로 변이 물러지기 쉽다는 거예요.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섬유소예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섬유소, 즉 식이 섬유는 변비를 예방하기도 하지만 변이 물러지는 것을 바로 잡아 주기도 하거든요. 

섬유소가 풍부한 간식을 제공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조섬유의 함유량이 높은 사료를 선택하셔도 돼요. 일반 건사료 기준으로 조섬유는 대개 5% 이하이지만 의도적으로 섬유소를 많이 넣은 사료에는 10%가 넘는 섬유소가 들어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위에서 언급한 것들 이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보조제가 있어요. 해당 제품이 효과가 있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선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아직까진 입증된 바가 없죠. ('입증된 바가 없다'는 것을 '효과가 없다'라고 해석하시면 안 돼요!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죠.) 그래서 오랜 시간 수많은 연구로 밝혀진, 그리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집필한 저서에서 언급한 내용들만 다루었어요. 

 

참고로 제 환자들 중 암에 걸린 아이들이 모두 같은 식단과 영양제를 먹고 있지 않아요. 각자의 식성과 암의 종류, 보호자분의 사정에 따라 제각각 다른 식단과 영양제를 적용하고 있죠. 저는 입증되지 않은 보호제를 절대 먹이지 말라고 말씀드리지 않아요. 아이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먹이는 것에 너무 큰 스트레스만 없다면 얼마든지 먹이셔도 좋아요. 단, 다른 것들에 우선하여 고단백 식이와 오메가-3, 그리고 풍부한 섬유소의 급여를 해주세요. 비록 작을진 모르지만 고생하는 털북숭이에게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

작가의 이전글 우리 아이, 마취해도 깨어날 수 있겠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