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애, 마취에서 못 깨어나는 건 아니겠죠? 걱정돼서 찾아보니까 수술하다 못 깨어났다는 글이 많아서요."
이럴 때 저는 항상 이렇게 말씀드려요.
"100% 안전하다고는 절대 말씀 못 드려요. 하지만 마취 전 검사로 안전한 마취를 위해 필수적인 장기들의 기능 이상 여부는 이미 체크했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최대한 안전하게 진행할게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수술 들어가는 오후 1시부터는 핸드폰 꼭 체크해 주세요."
모든 보호자분들이 사랑하는 털북숭이를 전신 마취한다는 것에 걱정하세요. 마취에서 못 깨어날까 봐 걱정, 마취 후 혹시나 아이가 안 좋아질까 봐 걱정, 수술이 잘못될까 봐 걱정, 걱정에 걱정에 걱정을 안고 마음 졸이며 대기하시죠.
사실 위에서와 같이 말하는 경우는 대개 아이들이 건강할 때 드리는 말씀이에요. 털북숭이의 상태가 심각하다면 조금 다르게 말씀드리죠. 현실적으로 아이의 위험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전달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환자의 상태에 따라 마취의 위험도가 얼마나 되는지 객관적인 사실을 알려드릴까 해요.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서는 아니에요. 위험성을 '제대로' 알고 마취 여부를 결정하셨으면 해서 쓰는 거예요.)
마취를 하기 전, 의사와 수의사들은 마취 대상자의 나이와 기저 질환 유무, 현재의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환자에게 점수를 매겨요. 이를 ASA 점수(American Society of Anesthesiologists Physical status)라고 부르는데요, 실제로 마취 중 혹은 마취 후 이틀 이내의 사망률은 1~5단계까지로 나뉘는 이 분류 결과와 밀접한 연관 관계를 보이고 있죠. 모두가 예상하듯 건강할수록 사망률은 낮아져요.
ASA 점수에 따른 사망률
(위 표를 보시기 전에 꼭 아셔야 할 내용이 있어요. 이 표에서 사람은 '전신 마취' 후 사망률이지만 반려 동물의 경우 '전신 마취' 혹은 '진정' 후 사망률이에요. 아무래도 '진정'이 포함되어 있기에 사람에 비해 사망률이 낮게 평가되어 있을 수 있어요.
ASA 점수에 따른 사망률과 관련된 다른 자료들도 있었지만 너무 오래되었거나, 대학 병원과 같은 최상위 레벨의 병원에서만 취합한 데이터 등과 같이 비현실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래서 모집군이 조금 다르지만 최근의 자료이면서 일반 병원에서 이루어진 연구 결과를 첨부하였어요. 참고해주세요!)
위의 표에 ASA 점수 5 단계에 따라 사람은 마취 시, 반려 동물은 마취 혹은 진정 시 사망률을 정리해두었어요. 이를 통해 환자의 마취 전 상태가 안 좋을수록 마취로 인한 위험성은 올라가는 것을 수치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그래서 되도록이면 건강할 때 수술을 하는 것이 추천되죠.
급한 수술이 아니라면 환자의 컨디션이 좋을 때,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들어 놓은 뒤 하는 것이 안전한 선택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특정 질병으로 인해 컨디션이 저하되어 있고, 수술로 이를 교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정말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받는 게 낫겠죠.
온라인상에서 어렵지 않게 마취 중 사망하였다는 털북숭이의 슬픈 사연을 접할 수 있어요. 그런 소식을 접하고 나면 더욱 내 아이의 마취가 걱정되기 마련이죠. 하지만 막연한 두려움만으로 내 털북숭이 가족의 질병을 방치해선 안돼요.
치료를 위한 전신 마취 혹은 진정제 주사의 위험성과 이 질병을 두었을 때 겪게 될 통증과 합병증의 무게 서로 비교해서 올바른 결정을 해야 돼요. 아마도 여러분의 주치의 선생님도 이 점을 염두하여 치료 방향을 추천해 주실 거예요.
털북숭이가 가장 건강할 때 하는 수술이 무엇일까요? 바로 중성화 수술이에요. 영국에서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성화 수술을 위해 전신 마취를 한 경우 사망률은 0.009%*라고 해요. 10만 마리가 중성화 수술을 받았고 그중 9마리가 사망했다는 거죠. 그리고 암컷 강아지의 경우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을 경우 유선 종양의 방생률이 26%이고, 그중 50%는 악성 유선 종양**이라고 해요. 이 외에도 자궁 근종, 난소 종양, 자궁 축농증 등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질병들도 매우 높은 발생률을 보이고 있죠.
(*Mortality related to general anaesthesia and sedation in dogs under UK primary veterinary care. Veterinary Anaesthesia and Analgesia 2022, 49, 433-442)
(**Factors Influencing Canine Mammary Cancer Development and Postsurgical Survival. Journal of the National Cancer Institute 1969, 43,1249–1261)
자, 그렇다면 어리고 건강할 때 마취가 두려워서 중성화를 시키지 않는 것이 현명할까요? 아니면 적은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추후의 큰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중성화를 해주는 것이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