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숲에서 온 노래

프롤로그

by 이헌철
성 바실리 성당.png 성바실리 러시아정교회


1942년 1월, 레닌그라드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지하실에서 물이 쏟아져 나왔다. 파열된 배관에서 흘러나온 물은 순식간에 얼음 호수가 되었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나이 든 여성 박물관 직원들이 구조에 나섰다. 그들은 고무장화를 신고 얼음물 속으로 들어갔다. 발밑에는 11세기 도자기가, 15세기 마이센 인형이 잠겨 있었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밟지 않으려 애쓰며 걸었다.

이 여성들의 하루 배급량은 빵 125그램이었으며, 손가락에는 동상으로 검은 반점이 피어올랐고, 배는 굶주림으로 비틀렸다. 그런데도 그들은 렘브란트를 지키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구했다. 왜 그렇게 했을까?

이것이 러시아다.

우리는 러시아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 대부분은 보드카와 곰, 추운 날씨와 공산주의, 어쩌면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름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러시아의 껍데기일 뿐이다. 진짜 러시아는 전혀 다른 곳에 있다.

1941년 겨울, 독일군에 포위된 모스크바 외곽, 영하 42도의 지옥 같은 추위 속에서 소련 병사들은 하얀 나무 껍질을 벗겨냈다.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불, 눈 속에서도, 비가 와도 타오르는 유일한 나무다. 병사들은 그것을 '하얀 천사'라 불렀다. 자작나무였다. 전쟁이 끝난 후 고향으로 돌아온 병사들은 마을마다 자작나무를 심었다. 승리의 기념비가 아니었다.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을 위한 추모비였다. 오늘날 러시아 전역에 펼쳐진 끝없는 자작나무 숲, 그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민족의 기억이었다. 생존의 나무가 추모의 숲이 되고, 그것이 다시 정체성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 더 놀라운 이야기가 있다. 러시아 북부의 무르만스크, 이곳 사람들은 매년 겨울 40일 넘게 해가 뜨지 않는 어둠 속에서 산다. 아침도, 낮도 없다. 그저 계속되는 밤뿐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우울증에 빠지지 않겠는가?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사람들이 시계를 덜 보게 되는 것이다. 해 뜨고 지는 것으로 하루를 구분할 수 없으니, 새로운 기준을 찾았다. 바로 자기 몸이었다.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자고, 누군가 보고 싶으면 찾아갔다. 시계가 아니라 몸의 리듬에 따른 삶을 산다.

우리는 늘 '시간에 쫓긴다'고 한다. 아침 7시에 일어나야 하고, 9시까지 출근해야 하고, 점심은 12시에 먹어야 한다. 그런데 러시아 최북단의 어둠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묻는다. "정말 그래야만 하나?"

반대로 여름이 오면, 이곳은 해가 지지 않는다. 밤 11시에도 대낮처럼 밝다. 이때 러시아인들은 아예 잠을 포기한다. 축제가 열리고, 사람들은 밤새 거리를 걷고, 음악을 듣고, 춤을 춘다. 1년 중 대부분을 어둠 속에서 보낸 사람들에게, 이 밝은 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야쿠티아 지역. 영하 60도까지 내려가는 이곳에서 혼자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발라간'이라는 독특한 집을 지었다. 여러 가족의 움막을 하나로 연결해서, 마치 거대한 미로 같은 집을 만드는 것이다.


왜? 진짜 따뜻함은 혼자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에서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아무도 모르게 세상을 떠나는 일이 생긴다. 우리는 개별 난방이 있고, 온수가 나오고, 집마다 보일러가 있다. 그러다 보니 착각한다. '나 혼자서도 충분히 살 수 있어.' 하지만 러시아의 발라간이 보여주는 진실은 다르다. 사람은 사람 곁에 있을 때 비로소 따뜻하다.

이제 당신은 궁금할 것이다. 이런 극한의 자연 속에서 어떻게 세계 최고의 예술이 탄생했을까?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들어보라. 그 애절한 선율은 어디서 왔을까? 긴 겨울 밤의 적막 속에서, 하얀 눈 덮인 대지 위에서,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펼쳐보라. 그 무거운 문장들, 영혼의 깊은 곳을 파고드는 질문들은 어디서 나왔을까?

샤갈을 생각해보라. 프랑스에서 60년을 살았지만, 죽기 직전까지 그가 그린 것은 고향 비테프스크였다. 왜 그는 그토록 집요하게 고향을 그렸을까? 러시아 발레가 세계 최고인 이유는 무엇일까? 레핀의 그림은 왜 그렇게 사실적이면서도 영혼을 흔드는 걸까?


답은 하나다. 자연이다

러시아를 이해하는 열쇠는 크레믈린도, 황제도, 혁명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끝없이 펼쳐진 설원이고, 침묵하는 자작나무 숲이며, 40일간의 어둠이고, 영하 60도의 혹한이다. 이 극한의 자연이 러시아인의 영혼을 빚었고, 그 영혼이 세계 최고의 예술을 탄생시켰다.

매주 토요일, 러시아 사람들은 바냐(러시아식 사우나)로 향한다. 뜨거운 증기 속에서 자작나무 가지 다발 '베닉'으로 온몸을 두드린다. 자작나무 잎에서 퍼지는 방향유의 향기 속에서, 가족들은 일주일간의 이야기를 나눈다. 친구들은 삶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천 년을 이어온 의식이다. 스마트폰과 SNS의 시대에도, 이 전통은 살아있다.

봄이 오면, 사람들은 숲으로 향한다. 자작나무 수액을 채취할 시간이다. 나무줄기에 조심스럽게 작은 구멍을 뚫으면, 투명한 수액이 천천히 흘러나온다. "3월과 4월의 특별한 날에 모은 수액이 혈액을 정화시킨다"는 옛 속담이 있다. 과학적 근거를 떠나, 이것은 믿음이다. 긴 겨울 동안 부족했던 생명력을, 자작나무가 봄의 첫 선물로 돌려준다고 믿는다. 채취가 끝나면 구멍을 나무 가지로 막는다. 이것이 규칙이다. 법이 아니라 약속이다. 천 년을 이어온 주고받음의 예의다.

이 글은 바로 그 이야기를 담았다. 당신이 몰랐던 러시아, 진짜 러시아를 담았다. 역사책이 말하지 않는 이야기들, 여행 가이드북이 놓친 진실들, 뉴스가 보여주지 않는 삶의 모습들을 모두 들려준다.

당신은 이 글을 읽으며 자작나무 숲을 거닐게 될 것이다. 바냐의 뜨거운 증기를 맡게 될 것이다. 차이콥스키의 선율이 왜 그렇게 애절한지, 도스토예프스키의 문장이 왜 그렇게 무거운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당신은 깨닫게 될 것이다.

러시아를 안다는 것은 단순히 한 나라를 아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극한 속에서도 인간성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고, 자연과 함께 숨 쉬는 삶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며, 예술이 왜 인간에게 필수적인지 깨닫는 것이다. 나는 12년을 러시아에서 살면서 러시아인들을 보며, 느끼고, 알아 갔다. 이제 은퇴하여 조용히 러시아를 되돌아보면서 이들의 삶과 예술을 되새기며 인생을 배우게 된다.

자, 이제 하얀 숲으로 들어가자. 그곳에서 들려오는 노래에 귀를 기울여보자. 당신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러시아가 거기 있다.

화, 수,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