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을 가두리
나는 무당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쓰고자 무당쇼핑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지쳐버렸는데, 어떤 패턴이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신병, 신내림, 몸주신, 무구, 비방, 부적, 굿… 무속이란 어떤 한 경전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무속인 개인의 활동마다 하나의 무속 세계가 있는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처음엔 신비의 나라에 빠져 드는 호기심 가득한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으나 여러 무당을 만나고 보니 ‘대충 알겠네.’가 되어 버렸다. 이런 느낌을 받을 때가 가장 위험한 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무속과 나의 권태기가 시작되었다. 이럴 때는 초심을 찾아야 한다. ‘처음에 만난 그 느낌, 그 설레임을 찾는다면… 우리가 느낀 싫증은 이젠 없을 거야이야아.’ 그래서 나는 무속에 눈을 떴던 그때의 순간을 찾고자 대학 때 수강했던 ‘무속론’ 수업에서 만든 인터뷰집을 다시 뒤적거렸다. 심심하게 책장을 하나 둘 넘기는데… 한 타이틀이 눈에 들어왔다. ‘신령을 가둔 사람.’ 눈이 번쩍 떠졌다.
인터뷰집은 대학 때 민속학과 수업 중 ‘무속론’ 수업에서 최종 결과물로 만든 것이다. 수업을 함께 들었던 사람들과 같이 만들었다. ‘신령을 가둔 사람’은 내가 쓴 부분이 아니었다. 제보자 인적사항을 확인해 보니, 신령을 가두었다는 정 씨는 경상남도 의령에 거주하고 있었다. 조사자에게 연락을 취해 보려고 했지만 소재파악이 힘들었다. 그도 나도 졸업한 지 꽤 시간이 흘러 버렸다. 하지만 나는 궁금한 것을 꼭 해결하고 싶었다. 나는 신령이 지폈으나 내림굿을 받지 않고 별 탈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알지 못했다.
‘신령을 가두었다’는 정 씨는 어릴 때 신이 지폈다. 온몸이 이유 없이 아프기 시작했다. 신병이 시작된 것이다. 정 씨는 무당을 찾아갔는데, 신령이 어깨까지 왔으나, 풀어 먹고살긴 힘들겠다는 말을 들었다. 정 씨의 기운이 너무 강해서 말문이 터지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만신과 함께 내린 결론은 신령을 가두기로 한 거다. 방법은 간단했다. 신령을 신대에 받은 다음, 항아리에 넣고, 땅에 묻는다. 하지만 불려 먹지는 못해도 기도는 해야 했다. 소홀히 하면 몸이 아프고, 잡귀가 보인다. 한 번은 친정 엄마가 검은 보자기를 쓰고 너무 아프다고 울부짖는 꿈을 꾸었는데, 다음 날 낙상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도를 하지 않으면, 이런 꿈을 자주 꾼다.
나는 지금까지 만난 무당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무당이 어쩔 수 없이 되었다. 이런 간단한 방법으로 신령을 가둘 수 있다면 다들 그렇게 했을 것이다. 진짜 가능한 일일까? 나는 아마 신령이 아니라 잡귀를 가둔 것이라는 데 결론이 닿았다. 정 씨가 신령을 신대에 받았다고 했는데, 그 ‘신대’는 아마 ‘신장대’ 일 것이다. 무속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신장대는 ‘먼지떨이’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작은 나무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손잡이 부분은 보통 소나무나 복숭아나무처럼 단단한 것으로 되어 있고, 그 위로 천이나 종이가 잎처럼 달려 있다. 보통 흰색이며, 봉 끝에 오방색 천이나 방울 등의 장식을 매달아 두기도 한다.
신령이 깃들면 신장대가 흔들린다. 또한 무당은 망자의 혼을 신장대에 실어 비방을 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퇴마를 전문으로 하는 무당이 악귀를 없애지는 못하고, 박카스 병에 담아 묻었는데, 시간이 흘러 집을 짓기 위해 땅을 정리하던 사람들이 멋모르고 박카스 병을 열어 버려 악귀가 쏟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신령은 가둘 수 없다’는 쪽으로 거의 확신을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지난번 회차에서도 등장했던 ‘성수동 무당’에게 연락을 취했다. 무업과 육아를 동시에 해내고 있는 그녀와 약속을 잡기는 쉽지 않아, 통화만 할 수 있었다. 나는 인터뷰집에서 봤던 내용을 정리해서 말해 주었다.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글쎄… 신령을 가둘 수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
“그렇지? 그러니까 잡귀를 가둔 거야. 그 사람한테 비방을 해 준 무당이 신령이라고 거짓말을 한 거고.”
“하지만… 기도를 안 하면 자꾸 도사 할아버지랑 도령이 보인다면서?”
“그렇지… 신령을 안 받았으니까, 그 신령들이 보이는 거지.”
“신령이 그렇게 내려왔는데, 수십 년을 버틴다고? 어려울걸?”
“그럼 뭐야, 진짜 신령을 가둘 수 있다고?”
“신령이 가둔다고 가둬지나.”
“그럼 뭐야?”
“내 생각엔… 애초에 말을 잘못한 거 같아. 가둔 게 아니라, 모셔둔 거지.”
“신내림을 안 받았다니까?”
“무당일을 할 정도로는 아니지만 신령이 왔고. 하지만 오신 분을 어쩌지 못하니, 작게 모시는 거지. 그런 사람들 종종 있어. 집에서 작게 신단 만들어 놓고 기도를 한다거나.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장롱 속에 작은 신단을 만들어 놓고 아무도 모르게 빌어.”
“그럼 뭐야… 허풍인 거야?”
“그렇다기 보단… 그냥 두려움에 그렇게 말한 거 아닐까?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느낌으로.”
“흐음… 그렇군…”
“그나저나, 너.”
그녀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바뀌었다.
“자료조사를 언제까지 할 거야?”
“……”
“언제 쓸 거냐고.”
“그러게…”
나는 아직 뭔가가 파바박 오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녀에게 ‘핑계 대지 마.’라는 말만 들을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알면 못 써. 알어? 그 정도만 하고 일단 쓰라고.”
“아직 부족하다니까?”
“다큐 찍냐? 그리고 다큐도 편집이라는 마술이 있잖아. 혹시… 니가 뭘 쓰고 싶은지도 모르는 거야? 그냥 무속이라는 덩어리만 있고?”
허를 찔렸다. 나는 무당쇼핑을 다니면서 내가 ‘뭘 쓰고 싶은지’ 발견하고 싶었다. 물론 그 ‘발견’은 내 안에서 스스로 찾아 건져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냥 엉덩이 붙이고 앉어.”
“지금도 앉아 있어.”
“너야 말로 가두지 말고. 뭐가 무서워서.”
“그냥… 잘 안 될까 봐.”
“놀구있네. 암튼 힘들면 가나다라마바사라도 써. 바뻐, 끊는다.”
그녀의 말마따나 나는 가나다라마바사라도 쓰기 위해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마치 방언처럼 이해할 수 없는 문자들을 써 나가다가 내가 왜 ‘무당’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지를 쓰기 시작했다. 단어와 문장 사이, 서로 조응되지 않는 엉터리 문장이지만 이렇게 써 나가다 보면 언젠가…
그 후로 나는 계속 주문을 건다.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다 하더라도 가두지 말자. 신령을 가두었다는 그녀처럼. 평생을 신령을 위해 기도하지만 신령의 힘을 사람들 앞에 보여주지 못했던 그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