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쇼핑

딱딱 딱딱 딱딱... 귀신과의 동거

by 손하임

굴렁쇠라는 별명을 가진 내 친구의 이야기다. 그녀의 이름을 정화라고 하자. 그녀가 굴렁쇠라는 별명을 가진 이유는 대학 신입생 환영회 때, 잔뜩 술에 취해서 학교 복도를 앞 구르기 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굴렁쇠는 정화의 캐릭터를 한 마디로 정리해 주는 탁월한 단어다. 성격이 정말로 굴렁쇠 같기 때문이다. 굴렁쇠 모양처럼 둥글둥글, 무슨 일을 하든지 천천히 전진한다. 굴렁쇠를 굴리는 사람 보다 그걸 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이 더 조마조마한 것처럼, 정화의 주변 사람들은 늘 그녀가 쓰러지지는 않을까, 넘어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정작 정화는 뒤로 넘어져도 앞으로 넘어져도 개의치 않는데 말이다.



얼마 전 정화가 이사를 했다. 졸업 후에도 학교 근처 원룸에서 오래 지냈는데, 드디어 투룸 월세로! 은평구에 있는 20년쯤 된 빌라였다. 집들이를 하지 않았지만 친구들은 정화에게 톡으로 이사 축하 선물을 보내주었다. 천천히 굴러가는 굴렁쇠가 넘어지지 않고 거기까지 잘 갔구나… 기특하다, 이런 기분으로. 나 또한 정화에게 선물을 보내주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처음으로 정화에게 먼저 톡이 왔다.



정화 땡큐. 모해?

나 (당황했지만) 나? 쉬고 있지? (조심스럽게) 왜?

정화 우리 집 이상해.

나 뭐가?

정화 그냥 좀… 아니다.

나 아니긴 뭐가? 나 전화한다.



톡으로 전화를 한다고 했는데도, 이 기집애가 한참 만에 전화를 받았다. 나는 벌컥 소리를 치고 말았다.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아!”

내 버럭에도 정화는 나긋하게 받아친다.

“화장실에 갔었어.”

“도대체 집이 뭐? 방음이 안 돼? 물이 세?”

“아니이… 그런 건 아니고…”

정화는 갑자기 목소리를 확 낮추고는 웅얼거리듯 말했다.

“집에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아. 내가 나가서 전화할게.”

그러더니 전화가 뚝 끊겼다. 정화는 혼자 산다. 집에서 혼자 먹고 자고 일한다. 그런데 집에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다고? 답답해 미치겠네… 궁금해 미치겠어! 정화는 30분 후쯤에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나는 핸드폰을 노려 보고만 있었고.

“미안… 나 지금 카페 왔는데… 시끄럽지?”

“하나도 안 시끄러우니까 말해. 집이 뭐?”

“그게 말이야… 우리 집에 귀신 있는 거 같애.”

“뭐어?”

“귀신이 맞을 거야, 아마도.”



정화가 들려준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사 오고 난 며칠 후부터 정화는 침대 밑에서 나는 것이 분명한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딱딱, 딱딱, 딱딱… 하는 소리.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있던 정화는 그 소리가 경험상, 바퀴벌레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바퀴약을 사서 집안 곳곳에 설치했다. 하지만 소리는 계속되었고, 그래서 인터넷에서 왜 그런지 이유를 찾다가 귀신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도 없고… 그래서 그냥 두고 보던 차에 내 톡을 받았다. 무당 석사 친구가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일단 나는 정화에게 같이 무당집에 가보자고 했다. 집에 귀신이 있는 것이 확실한지 확인해 보자고. 정화는 “싫은뎅…” 하고는 말 끝을 흐렸다. “넌 몰라?” 하고 묻는 정화에게 “내가 무당이냐? 어떻게 알어?” 하고 팩 소리를 내 지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집 계약한 부동산에 가서 넌지시 물어봐. 이전에 살던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혹시 죽어 나갔는지. 아니면… 이상하다고 집주인한테 전화해 보든가.” 내 말에 정화는 또 “싫은뎅…” 했다. “왜 싫어?” 내 말에 정화는 “부동산은 모른다고 하고, 집주인은 알아서 뭐 하려고 그러냐 할 것 같은뎅…” 결국 나는 아는 무당에게 연락해서 귀신 쫓는 비방을 알아봐 주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당장 최근에 인연이 닿은 무당에게 연락을 취했다. 사당동에서 무업 활동을 하는 김보살이다. 김보살은 앉은 거리를 하는 무속인이다. 앉은 거리를 하는 무당은 굿을 하지 않고 점을 보거나 독경을 한다. 일반적으로 선거리 무당들이 굿을 하는데, 이때 선거리 무당집 앞에는 붉은 깃발이 꽂혀 있거나, 붉은 깃발과 흰 깃발이 같이 꽂혀 있고, 선거리 무당 집에는 흰 깃발만 꽂혀 있다. 하지만 흰 깃발만 꽂혀 있는 집은 잘 볼 수가 없다. 나 또한 일 때문에 사당동을 찾았다가 흰 깃발만 꽂혀 있는 집을 보고 호기심에 들어가 본 것이다.



김보살과는 그날 저녁에 잠깐 통화가 되었다. 기도를 하러 산에 왔다고 하길래, 길게 통화를 하지 못하겠다 싶어 간단히 정화의 사정을 설명했다. 김보살은 귀신을 쫓는 간단한 비방을 알려 주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정화에게 톡으로 쏴 주었다.



<귀신 쫓는 방법>

첫째, 신문지를 준비한다. 둘째, 침대 밑에 신문지를 깐다. 셋째, 침대 밑에 식칼을 둔다. 넷째, 임금 왕자를 써서 침대 밑 프레임에 붙인다. 그리고 이것을 3~4일 정도 지속한다.



김보살에게서 한 가지 비방을 더 듣긴 했다. 고춧가루를 태우며 식칼로 휘두르거나 고춧가루를 푼 물을 식칼에 묻혀 집안 곳곳에 뿌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화가 하지 않을 것 같아서 전하지는 않았다. 내 톡을 읽은 지 한참 후 정화는 ‘ㅇㅋ’라는 답을 보내왔다.



한 동안은 정화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나도 자연스럽게 정화와의 짧은 에피소드를 잊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어제 정화에게서 연락이 와서 우리는 간만에 실물을 마주했다.

“오랜마안.”

언제나 끝말을 길게 늘이는 정화가 배싯배싯 웃으며 20분 늦게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래도 굴렁쇠가 길을 잃어버리지도 않고 온 게 어디야. 간만에 대학로 나들이였다. 정화가 아는 사람한테 연극 초대를 받았다면서 보러 가자고 만난 것이다. 조금 있으면 연극 시작이라 커피 한 잔을 할 시간도 없었다. 연극을 보고 나서, 정화의 지인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또 간단히 술을 한 잔 마시게 되니, 그때 그 ‘똑똑 귀신은 어떻게 되었나?’ 물어볼 틈이 없었다. 집에 가는 지하철 안 에서야 나는 비방을 제대로 했는지 물어볼 수 있었다.



“아아… 그거…?”

정화는 말 끝을 얼버무렸다.

“표정이 왜 그래? 아직도 있어?”

“어어… 어…”

“정말? 어떡해… 내가 하나 더 알려줄게… 그게 뭐냐면…”

“아니야, 됐어…”

묘하게 대화를 피하려는 게 뭔가 수상쩍어 나는 가자미 눈을 하고 물어보았다.

“뭐야, 너… 내가 알려 준 거 안 했지?”

내 말에 정화는 배싯배싯을 시전 하며 말했다.

“신문을… 못 구했어.”

“야!”

아마 지하철에 있는 몇몇은 나의 목소리에 눈살을 찌푸렸을 것이다. 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화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왜 이렇게 화가 자주 나는 것인가… 그때의 지하철 승객들에게 죄송, 또 죄송하다.

“그래서… 지금도 그 귀신이랑 살고 있다고?”

“그렇지 뭐…”

정화의 말에 나는 기가 찼다.

“그런데도 그냥 있는다고? 신문지만 깔면 되는데?”

“아무래도… 바퀴벌레인가?”

“너 귀신이 내는 소리를 들었잖아. 그거 그냥 두면 큰일 나.”

“바퀴벌레인 거 같아.”

“바퀴벌레가 탭댄스 추냐? 똑똑, 똑똑, 똑똑… 이렇게 한다며?”

“지금은 익숙해져서 괜찮기도 하고.”



정화의 대담함에 나는 절망했다. 우리는 충무로역에서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정화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는 것에 나는 놀랐다. 무던한 건가? 무모한 건가? 아니면… 어마무시한 것인가? 나는 나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바퀴벌레를 귀신이라고 철썩 같이 믿으며 보이지 않은 공포를 키우고 있는 건 오히려 내 쪽이 아닐까? 하지만… 바퀴벌레가 박자를 맞출 리는 없는데… 나는 정화에게 톡을 보냈다. ‘다음 주말에 내가 신문지 들고 간다.’ 이번에는 정화에게서 금방 답이 왔다. ‘하하하’



남들을 안달복달하게 만드는 마성의 굴렁쇠. 귀신 또한 어디까지 버티나 똑똑, 똑똑 거리다가 굴렁쇠에게 굴복당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굴렁쇠가 내 쪽으로 굴러오지 않으면, 내가 가야지 뭐. 다음 주에는 굴렁쇠와 야식으로 닭발이나 시켜 먹으며 귀신의 존재를 확인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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