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없는 커플
몇 달 전, 중 고등학교 동창 예진(가명)이 연락을 해 왔다. ‘6공주’ 중 한 명이었던 예진. 그녀는 6공주 모임에서 어느 순간 떨어져 나간 아픈 손가락 같은 친구다.
나는 중곡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 지역에는 중학교 바로 옆에 고등학교가 있다. 이변이 없는 한 중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그 옆 고등학교를 다니는 거다. 그래서 다들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게 좋겠다는 암묵적인 룰이 흐르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6공주’는 중학교 2학년 때 결성되었다. 그때 학교에서 개교 몇십 주년 기념 공연을 하기로 해서 각 반에 몇 명씩 착출 되었다. 우리는 스위스 민속춤과 부채춤을 방과 후 학교 운동장에 남아 연습을 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던 우리들은 그 꼴을 기꺼이 감당했다. 대표로 뽑혔다는 것에 대한 우쭐함이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우린 열심히 했다. 그때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퍼걸러 밑에서 폴라포를 먹다가 도원결의를 했다.
“그냥 우리 6공주 하자.”
쉽사리 조직명을 정하지 못하자, 예진이 그런 의견을 냈다. 그런데 우리는 우습게도 그러지 뭐, 하고서 그 쉽고도 간명한 조직명을 받아들였다.
6공주는 각자 다른 대학에 다녀도 수시로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 모임에 예진은 자주 빠졌다. 입학하자마자 복학생 선배와 사귀더니, 대학 졸업하자마자 그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다음 해에 첫째를 낳았다. 그리고 몇 년 후 둘째를 낳았다. 연애를 하느라, 결혼 생활을 하느라, 육아를 하느라 모임에 빠진 예진을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챙기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예진의 인생 사이클과 남은 공주들의 삶은 다르게 흘러갔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창 결혼을 해야 하니, 말아야 하니 하고 있을 때 예진은 두 아이의 엄마였고, 우리가 아이를 낳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할 때 예진의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해외여행, 밀당, 썸, 경력 단절, 적금, 주식… 이런 단어들로 이야기를 꽃피울 때 예진은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마치 ‘고생이 많네.’ 하는 얼굴로. 자연스럽게 예진을 뺀 공주들은 예진이 없는 카톡방을 만들어 일상을 공유했다. 예진이 있는 카톡방은 추석과 설에만 반짝 생기가 돌았다 사그라들었다.
그런 예진이 나에게 연락을 먼저 해 온 것이다. 나는 당연히 조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 있어?” 묻는 내 말에 예진은 “너 혹시… 용한 점집 아는 데 있어?” 하고 물어왔다. 나는 또다시 무슨 일이냐고 묻게 되었는데, 평범한 사람이 점집을 찾는다는 건 답답한 일이 있을 때뿐이기 때문이다. 예진은 “그냥… 남편한테 부적 좀 하나 해주려고. 좀 있음 승진할 수도 있는데, 안 될 까봐 불안한 가봐. 인터넷에도 팔긴 하던데… 그건 좀 그래서.” 나는 당연히 알아봐 준다고 했다. 예진은 고마워하면서 오랜만에 만나서 수다도 좀 떨자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어디가 좋을까… 고심했다. 예진의 친정이 중곡동이니까… 아이를 친정에 맡긴다고 했으니까… 간만에 동네에서 만나면 어떨까? 괜히 먼 데서 만나 길에서 시간 버리지 말고… 난 좀 설렜다. 그날의 스케줄을 이렇게 짰다. 중곡동 긴고랑의 20년 정도 된 점집에서 한 시간 정도 상담을 받고 아차산역 쪽의 신토불이에서 떡볶이를 먹고 근처 새로 생긴 디저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기로.
3년 만에 만난 예진이는 조금은 살이 붙어 있었으나, 예전 그대로였다. 중학교 때부터 고민거리였던 주근깨도 레이저로 지지지 않았고.
“유정(가명)이 결혼식 때 이후로 처음인가?”
예진이 자연스럽게 내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나는 마음과는 달리 어색하게 구부린 팔을 신경 쓰며 걷고 있었다.
“나 예전에… 오빠랑 궁합 보러 간 거 빼고는 점집 처음이야. 좀 떨린다.”
예진의 말에 나는 긴장할 거 없다고 말하고는 손등을 가볍게 쳐 주었다. 긴고랑에 위치한 점집은 도로에서 보면 칼국수 집처럼 보이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주택으로 이어진 곳이다. 점집은 그 주택 2층에 자리하고 있다. 벨이 없어서 직접 무당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왔음을 알렸다.
긴고랑의 무당은 60대로 대신할머니를 몸주신으로 하는 경력 30년의 무당이다. 그녀를 편의상 명보살이라고 부르겠다. 명보살은 편한 일상복 차림으로 우리를 맞이했지만 곱게 빗어 넘긴 머리는 단정했고, 화장기 없는 얼굴엔 윤기가 흘렀다. 그 나이 또래의 여자에게 흔히 볼 수 있는 눈썹 문신도 아이라인 문신도 없으니 훨씬 인상이 순해 보인다. 그녀의 푸근한 인상에 예진도 긴장이 풀어진 것 같았다. 늘 그렇듯이 점상 앞에는 예진이 앉고 나는 한참 떨어진 쪽에 앉아 명보살 쪽을 보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답답해?”
명보살은 예진에게 그렇게 물었다. 예진은 “별로 답답한 건 없는데… 남편한테 부적하나 해주고 싶어서요…” 명보살은 남편의 사주를 묻고, 그다음 예진의 사주도 물었다. 두 사람의 사주를 보자마자 명보살은 부채 방울을 흔들지도 않고 대뜸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에 향기가 없네.”
예진은 한 동안 말이 없다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두 사람 사이에 향기가 없다고. 무슨 뜻인지 몰라?”
예진은 슬쩍 내 쪽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결혼한 지 꽤 됐는데, 안 날 수 있죠.”
“그렇게 말하면 나도 할 말은 없고.”
하… 난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은 되돌릴 수 있다. 나는 슬쩍 말을 얹었다.
“보살님, 그… 이 친구 남편… 승진을 앞두고 있다고 해서요, 부적을 쓰려고 왔는데.”
“알어, 예약할 때 얘기 했잖어. 그런데 보니까 문제는 다른 데 있는데 뭐.”
예진은 한숨을 푸욱 내쉬면서 말했다.
“그래서 뭐… 바람이라도 피워요?”
“그럴 위인은 아니고.”
“그럼 됐는데, 왜요?”
“부부 사이에 향기가 없어도 괜찮아?”
“괜찮아요.”
“그렇지가 않을 텐데.”
“진짜 괜찮아요.”
“얘들도 있을 거 아니야.”
“있어요, 둘.”
“너는 너, 나는 나… 이렇게 살고 있는데 뭐. 진짜 향기가 없어.”
향기, 향기, 향기… 무슨 꽃향기를 맡아야 힘이 나는 꼬마 자동차도 아니고, 향기가 뭐 그리 대수냐 싶었지만 명보살은 계속 향기 타령이었다. 내가 있어서 말을 제대로 못하나 싶어서 자리를 비켜줄까 의중을 물었지만 예진이 한사코 만류했다. 나는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제발 빨리 부적을 써주겠다고 말이나 하시지 왜 저리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금이라도 빨리 다른 데를 예약하거나 가까운 점집에 문을 두드리면…
“부부 사이에 향기가 없으면 안 돼. 부부 사이에 냉한 기운이 돌면 아이들 정서에도 안 좋고. 지금은 괜찮다 싶지만… 나중에 분명히 사달이 난다고.”
이후, 명보살은 부부상담가로 변모했다. 꼿꼿이 앉아 있었던 예진의 자세가 흐트러졌다. 자꾸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보살님, 저희가 다음 일정이 있어서요. 일어나야겠어요”
나는 다시 예약을 잡겠다고 이야기를 한 후, 예진을 데리고 무당집을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예진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무당집을 다시 한번 쳐다봤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끌고 도로변으로 나갔다. 그제야 예진은 참고 있었던 말을 폭발적으로 쏟아냈다. 정리하자면 이런 거다.
“저 무당 뭐야, 미친 거야?”
예진의 울분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짜 놓은 일정은 진작에 무너졌다. 그냥 눈에 띄는 가까운 커피숍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마주 앉았다. 예진은 커피가 나오자마자 원샷을 때리더니 “돌겠네…”로 말을 시작했다.
“야, 결혼한 지 10년이야. 그런데 무슨 향기? 진짜 기분 더러워서. 내가 진짜 무당한테 그런 얘기까지 들어야 해? 그게 뭐가 문제인데! 못 하고 사는 게 아니라 안 하고 사는 거야. 안 하고 싶으니까! 안 해도 문제가 없으니까. 문제가 없는데, 그게 문제라고 하는 게 더 싫은 거야, 나는. 알아?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서 아침 준비하고 애들 밥 먹이고 학교 보내고 남편 출근 시키고 집안 정리하고 알바 갔다가 애들 학원 데리러 가고 저녁 준비하고 저녁 먹이고 치우고 애들 재우면 열 시, 열한 시야. 침대에 누우면 오 분도 안 돼서 곯아떨어진다고! 그런데도 남편 바람날지도 모르니까 없는 마음에 굳이 굳이 불을 지펴서 살아야 해? 아까 봤지? 저 무당 나 불쌍하게 보는 거. 내가 불쌍하냐? 내가 괜찮다는데 왜 지랄이지? 나 남편 사랑해. 사랑해도 안 하고 싶어. 나는 뽀뽀랑 손만 잡아도 좋다고. 그거면 된다고. 남편 생각 안 하냐고? 해! 하는데, 오빠도 나랑 같은 마음이야. 우린 그냥 각자 침대에 누워서 쉬는 게 좋다고. 한창나이인데 아깝다고? 뭐가 아까운데? 도대체들 왜들 못 해서 야단이야? 몇 살까지 못하면 아까운 거고, 몇 살까지 하고 살면 주책인 건데? 인터넷 기사에서 한 번씩 섹스 안 하는 여자들이 자궁암 걸릴 확률이 더 높다는 기사 같은 거 뜰 때마다 정말 깜짝깜짝 놀래. 이런 기사를 이렇게 버젓이 올린다고? 이렇게 편견에 가득 찬 기사를?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거 같애.”
못 본 사이 예진은 꽤나 전투적인 여인이 되어 있었다. 학창 시절 자주 가던 떡볶이 집도 가지 못했고,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밀린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았어도 나는 예진을 그전보다 가깝게 느꼈다. 늘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지 않고, 듣기만 하던 예진이었기에 그랬다. 너도 평범함 속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었구나. 그까짓 향기 따위 풍기지 않으면 어떠리.
“아… 진짜… 너 앞에서 쪽팔린다.”
예진의 말에 나는 빙긋이 웃으며 말해주었다.
“유정이 말이야… 걔네는 결혼 준비하면서부터 향기가 없어.”
“뭐, 진짜?”
“신행 때도 그냥 왔대. 풀빌라까지 갔으면서.”
“오, 마이, 갓… 난 몰랐어.”
그래, 몰랐겠지… 너를 뺀 단톡방에서만 오고 갔던 이야기니까. 하지만 너도 엄연히 6공주가 아니던가. 앞으론 우리만 아는 이야기를 너에게도 들려주리라…
“요즘엔 넷플이 남친이지.”
내 말에 예진이 맞장구를 친다.
“맞아.”
“냉동실 들어갔다 나온 맥주면 다 필요 없고.”
“그러니까.”
예진이 창밖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가끔은 내가 나이가 아주 많이 먹은 할머니 같아.” 그러더니 곧 두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근데 좋아. 고요하니까.” 내가 모르는 인생을 훌쩍 살아버린 내 친구가, 그 순간 너무 예뻐 보였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부적은 그냥 인터넷에서 사는 걸로. 승진 안 되면 어떠냐, 내 남편 귀여워 여전히.” 싱긋 웃는 예진에게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물었다. “그럼 오랜만에 신토불이 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