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도깨비

by 말랑 쿤데라

계절이 바뀌었다. 지금 눈이 오고 있다. 오랜만에 글을 쓴다. 한동안 글을 쓸 겨를이 없었다. 시간은 많았지.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짧은 시간 동안 모르는 새 무언가 들이 바뀌었다.


무언가 無言歌. 가사가 없는 노래. 이 글의 앞부분에는 상투적이고 눈길을 끌지 않는 말들을 쓰고 싶다. 조금만 더 채워보자.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몇 되지 않는 내 얄팍한 언어들을 쥐어짜 내보자.


얄팍해졌다. 고등학생 때는 물리 화학 등에 관심이 많아 책도 많이 읽었다. 10년 정도 지났는데...... 그 새 과학은 꽤나 많이 발전한 듯하고. 종종 생각한다. 생각했다. 세상은 연속적인데 우리의 언어는 불연속적이므로, 인간의 불행은 그것으로부터도 온다고. 플랑크 길이와 플랑크 시간이라는 것이 있다. 공간과 시간의 최소단위. 불과 10여 년 전쯤 까지만 해도 이론에 불과했던 것 같은데 요새 유튜브 쇼츠같은 것들을 우연히 보면 어느 정도 증명이 된 것 같더라. 그러니 우리의 언어와 더불어 세상 역시 불연속적이 되었나. 그럼에도, 세상이 시뮬레이션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생각과 언어와 감정은 아무리 플랑크가 증명되었다 하더라도 아직까지는 그 불연속성에 가닿지 못하므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닐까. 아직까지는.


이 정도 채웠으면 됐나? 구월엔 참 좋지 않았다. 좋은 건 뭐고, 또 안 좋은 건 뭐냐 마는. 꽤나 오랜만에 내 생은 과거로 돌아갔고, 그러므로 나는 마비되었다. 정반합에 의해 나는 살아있으려면 바보가 되어야 했고 내 정신의 날카로움은 결국 무덤덤함으로 진동 후 수렴하게 되었다.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가. 결국 우리의 정신은 개미 발톱 때 만큼의 화학물질에 휘둘리고...... 세상이라는 꽤나 추상적인 개념 안에서 우리는 폭풍우 속의 데이지 꽃 한 송이.


이전에는 일관성에 집착했다. 지금은 그것 역시 키치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아빠를 옆에 태우고 운전을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아빠가 병원에 출근하는 것을 내가 데려다주는 길이었는데, 아빠는 집에서 병원에 가는 길이 결과적으로 내리막이고, 반대가 오르막이니 출근할 때는 연비가 좋고 퇴근할 때는 연비가 나쁘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말은 정확한 언어가 아니라고, 그렇게 말할 거면 정확히 반대로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에서 병원에 가는 길이 내리막이고, 차로 병원 출퇴근 외의 운전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병원에 도착했을 때 연비가 가장 높을 것이고, 반대로 집에 도착했을 때 연비가 가장 낮을 것이니 아빠처럼 연비가 좋다, 나쁘다라고 말할 거면 정확히 반대로 말해야 한다고 나는 말했다. 여기서 좋다, 나쁘다라는 표현은 순간에 대한 표현이 아닌가.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세상에 '순간'이라는 게 있나? 비슷한 이야기를 또 했다. 역시 아빠랑 했던 대화인데, 과속단속 카메라가 순간 속도가 아닌 일정 구간 속도의 평균을 측정한다는 말이었다. 아빠가 내게 했던 말인데 나는 또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순간속도라는 것은 그 정의에 의해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고. 최근에 또 쇼츠에서 시간은 사실 존재하지 않고 인간이 편의에 의해 만들어낸 개념이란 말이 있던데 전혀 이해 못 했고 귀찮아서 설명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지만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순간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추상이 아닌가. 플랑크 길이와 플랑크 시간에 의하면 어쩌면 모든 것은 그저 멈춰있는 것이 아닌가.


일관성. 역시 추상적인 개념이다. 이상이고, 스펙트럼의 극단. 그것에 집착했다. 사람은 일관적일 수 없다. 아무리 플랑크가 어쩌고 하더라도 나는 생각을 하고 있고, 글을 쓰고 있고, 고로 우리는 추상 위에서 춤춘다. 인간에겐 어떠한 순간이 있을 뿐이고, 사람과 상황과 생은 계속해서 변한다. 일관적인 게 이상한 거야. 그게 비정상이라고.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는 일관성은 키치다. 일관성은 어쩌면 선이 아니고 오히려 악이다. 바람. 바람은 불행을 부른다.


좋은 것은 무엇일까. 역시 바람이 아닐까. 결국 나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고 싶은 대로 본다.




이 사악한 세상에

어느 누가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

슬픔의 나무에서

하염없이 꽃잎이 떨어진다.


헤르만 헤세, 『슬픔』 중에서




아직은 눈이 조용히 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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