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운명이야!

사랑을 주는 법도, 받는 법도 아는 아이

by 나원

“우린 어릴 때부터 꼬옥 붙어 다녔대”




우리 자매를 어릴 때 봤다는 친척분이 내 동생에게 저 말을 건넸다고 한다. 동생은 나에게 다람쥐마냥 쪼르르 달려와 환하게 미소 지으며 그 말을 그대로 나에게 얘기해 줬다. 그러고서는, “우린 운명 아닐까? 가족인 것도 운명인데 친하기까지 해. 이것이 운명 아니면 무엇?”






우리에게는 운명인 것이 있고 운명이 아닌 것이 있다. 또한 우리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게 있고 선택할 수 없는 게 있다. 사람은 운명대로만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선택만으로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운명과 선택 둘 다 갖고 살아간다. 생(生)의 순간, 가족이라는 점은 분명 운명적이다.





삶 속의 예기치 못한 운명 속에서, 우린 가벼운 농담으로 함께 웃으며 이겨내 보려 하기도 했다.





때로는 한없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한때 나는 무언가를 잃는 순간의 아픔이 싫어 삶에 소중한 존재를 더는 들이지 않는 선택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런 나에게 동생은 “나는 무서워도 소중한 것을 만들고 그와 함께하고 싶어. 우리도 안 친할수록 나도 나중에 덜 아프겠지. 그렇다고 언니랑 거리 두고 지내? 그건 상상하기 싫어!”라고 했었다. 그 말을 듣고는 묘하게 설득당하곤 했다.




나는 다치고 아픈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동생은 현재를 사랑하며 아픔을 직면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가을이 지나 겨울의 문턱에 다다른 어느 날 저녁이었다. 외할머니를 하늘에 보내드린 지 얼마 안 되었던 때였다.




동생이 먼저 입을 뗐다. “외할머니 가실 때, 나는 그런 말을 들었어. ‘너에게는 이런 순간이 안 올 것 같으냐?’라고... 그런 생각 안 하려 한다고 답했었는데 어쩌면, 그건 회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말도 맞아. 정말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순간이 우리에게도 올 거야. 그렇지만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슬픔 때문에 현재의 확실한 행복을 포기해 가면서 미리 슬퍼하는 건 바보짓이고, 그만큼 있을 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해“





미래에 맞이하게 될 죽음을 떠올리자니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만 같았다. 상상과는 달리 실제로 상을 당했을 때는, 시야가 까맣기보다는 뿌옇게 변했었는데... 뭐가 어떻든 다시 겪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것을 동생이 겪는 게 더 싫었다.




“언젠가 우리도 둘 중 하나가 먼저 세상을 뜨겠지.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겠지만, 가능하다면 네가 먼저 가… 내가 남아서 더 슬퍼할게. 네가 슬픈 것보다 내가 슬픈 게 나아.”



“언니 완전 엄마 같아. 근데 언니 말 맞아. 난 언니 없는 세상이 상상이 안 돼. 혼자 남아 있을 자신이 없어.” 뒤이어 나를 안아주며 동생은 한 마디 덧붙였다.





“지금은 그런 생각하지 말자”





이처럼 언니인 내가 감정적으로 지나치게 많은 무게를 지고 있는 듯할 때 동생은 그 무게를 덜어주곤 했다. 내가 슬픔이라는 짐을 홀로 짊어지며 앞장서는 게 나의 사랑 방식이었다면, 동생의 사랑 방식은 짐을 나누어 들고 옆에서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길을 걸어가는 것이었다.






내게는 아직도 동생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기에 여전히 동생을 ‘우리 애기’ 라고 칭한다. 어릴 때는 눈물도 겁도 많았던 동생이 정말 아기 같아서 지켜주고 싶고, 보호해 주고 싶었다. 그랬던 내 동생이 어느새 이렇게 예쁘게 잘 커서 내 옆에 있으며, 나를 보듬어 주고 안아 준다. 나에게 동생은 여전히 땡그란 눈을 하며 말한다.






“우린 운명이야!”




우리는 서로를 선택했다. 삶이 나를 이끄는 것은 운명, 내가 삶을 이끄는 것은 선택이다.




Carpe diem(카르페 디엠) - 현재를 붙잡고, 지금을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