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시간 활용_4
오늘 언니랑 다섯 번째 운전 연습을 나갔다. 진짜 실전 연습. 주차장은 다른 차가 많아서 언니가 차를 빼주고 도로에서부터 내가 운전하기로 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막상 주차장에 가보니 언니 차 양 옆으로 차가 없었고 텅텅 비어있었다. 고민하다가 주차장부터 내가 운전하기로 했다. 시작하자마자 손에 땀이 차고, 차 안도 추워서 손가락이 덜덜 떨렸지만 핸들을 꽉 붙잡고 천천히 움직였다. 목적지는 김포 아라뱃길. 일단 네비를 찍고 나왔다. 나가는 순간부터 불안 불안했는지 시작부터 언니의 잔소리를 들었다. ‘아니! 너 지금 너무! 아. 옆 좀 봐. 후..’ 이건 하루 종일 겪었던 일의 미리 보기, 프리뷰 수준이었다는 걸 일찍 알았다면 그만두고 언니가 운전하는 차만 얌전히 탔을 텐데…. 미래를 볼 수 없어서 그대로 내가 운전했다. 그리고 혼자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초보자가 그럴 수도 있지. 주차장처럼 좁은 곳 운전은 처음이었는데 너무해. 무튼 그렇게 힘겹게 주차장을 빠져나가서 도로로 향했다.
나는 지난 4번의 운전연습 동안 도로 위의 따뜻한 순간들은 많이 느꼈다. 사고가 날 뻔한 순간도 배테랑 운전자들의 노련한 센스로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제일 조심해야 해지만 나보다 다른 운전자들을 믿고 도로를 달렸다.
그랬는데…. 바로 직전 연습까지만 해도 따뜻한 운전자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냉정한 운전자들을 많이 만나서 멘탈이 가락가락 갈렸다. 좌회전 신호에 속도를 내지 못했을 때 뒤에서 클락션을 울리던 그 차. 누군지 모르지만 당신 너무했어요. 초보라고 써놨는데 느릴 수도 있잖아요. 속도 내는 게 다가 아니잖아요! 그러다 사고 나면 책임은 내가 지는데! 지금이야 이렇게 생각해도 그때는 빵빵거리는 소리에 멘탈이 갈렸다. 내가 멘탈이 갈리는 걸 언니도 눈치챘던 것 같았다. 바로 옆에서 잔소리로 조각조각 잘린 멘탈을 가루가 되도록 빻아줬다. ‘네가 그렇게 천천히 가면 뒷 차는 신호 놓친다. 저 차 가려다가 너 때문에 못 갔어.’ 너무 맞는 말이라서 괜히 더 속상했다.
초보자가 속도를 내지 못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차 없는 도로만 달릴 수도 없고…. 언니의 잔소리를 듣고 한 가지 마음먹었다. ‘오케이 빵빵거리면 달려.’ (실제로 이러면 큰일 난다. 빵빵이와 관련 없이 교통법과 신호법을 준수해야 한다.)
그렇게 언니의 추가 멘트로 멘탈을 갈면서 가다가 유턴의 순간이 찾아왔다. 첫 운전대를 잡은 날부터 해왔던 유턴, 자신 있었다. 유턴 차선에 집중해서 천천히 들어갔다. 너무 천천히 갔는지 뒤에서 또 클락션 소리가 들렸다. 순간 무너진 멘탈에 급하게 유턴을 시도했다. 진짜로 거짓말 안치고 신호가 바뀌고 유턴을 해버려서 사고가 날 뻔했다. 옆에서 언니의 소리가 또 들렸다. 뭐해? 신호 안 봐? 너 지금 택시랑 부딪힐 뻔했어! 나도 안다... 내가 잘못한 거 아는데 호통만 치는 언니가 너무 미웠다. 그래서 운전 5번째. 언니랑 싸움 아닌 싸움을 했다. 너무 억울해서 ‘나도 잘하고 싶지... 나도 사고 안 나게 조심히 운전하고 다니고 싶은데, 클락션 소리 무시하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되냐고….’ 말했다. 초보 인적 없었다는 듯이 하는 언니에게 너무 서운했다. 울컥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집에 도착해 주차를 할 때쯤이 되니깐 조금 진정됐다. 언니가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얘기했는지 이해가 갔다. 사고 나지 마라고 하는 말인데 내가 너무 감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생각에 화해 신청을 했다.
웃긴 건. 도로 위에서 나 운전하는 거 보고 힘들다 하고 잔소리 엄청 심하게 해 놓고는 항상 집에 오면 잘했다고 한다. 아무리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언니는 잊는 속도가 6G인 것 같다. 5G를 뛰어넘는 속도로 잊어버리고 항상 ‘왜 너 잘하던데 잘했어.’ 한다. 나는 도로 위에서의 언니의 잔소리를 잊지 못하고 심장 벌렁벌렁 손에 땀 주룩주룩 달고 운전하는데...
지금은 운전이 무서워서 포기했다. 언니도 그냥 차사고 연습하라고 해서 연습 안 하고 있다…. 차를 언제 살지 모르겠지만 벌써 장롱면허됐다. 차 사면 베스트 드라이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