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시간 활용_3
벌써 세 번째 운전연습을 하게 됐다. 평소랑 같은 코스로 운전 연습하다가 영종도로 넘어가기로 했다. 보통 길을 찾아가는 방법은 언니가 지도를 켜 두고 방향을 보면서 인간 내비게이션이 되어 나를 조종한다.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니 고속도로 타고 나가자는 언니의 의견이었다. 집에서 청라까지 언니가 운전했고, 청라에서 영종도까지 내가 운전하기로 했다. 집 주차장에서 밖으로 빠져나가는 건 무서워서 시도도 못했다. 괜히 나섰다가 옆 차, 벽 언니 차까지 다 긁을 까 봐…. 청라 인천 체육 고등학교 근처를 돌았다. 역시나 차가 없었다. 가볍게 저쪽부터 저어어어어어쪽까지 돌아보자.라고 말하는 언니 말에 오케이하고 운전석에 앉았다. 운전대를 잡고 달리면서 계속 물어봤다. 더 가? 어디까지 가? 여기보다 더? 더? 계속 물었고 언니는 응 더. 더. 더 갈 거야 했다.
처음 운전 연습하러 나왔을 때가 떠올랐다. 이때도 세 번 밖에 안 됐지만…, 처음에는 비 오는 날 운전대를 잡았다. 집중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느라 30분 만에 진이 다 빠져서 집으로 가자고 했다. 언니는 옆에서 신나서 재밌지? 하고 몇 번을 되묻는데 전혀 재밌지 않았다.
두 번째 운전대를 잡은 날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였는데 도로주행 전전날이었다. 이 날은 언니한테 된통 속아서 운전했다. 분명 차 없는 도로를 계속 반복해서 달리는데 언니가 이번에는 조금 더 길게 가보자! 했다. 나도 이렇게까지 차가 없으면 더 갈 수 있겠다. 해서 믿고 직진했다. 아무것도 없었던 도로였는데 갑자기 차들이 하나 둘 많아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차도까지 들어갔다. 그때부터 몸에 열이 확 올랐다. 지하차도도 처음이었는데 바로 직후에 언니가 저기서 유턴해! 했다. 눈앞이 깜깜한 와중에 급하게 유턴 잘했지만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손발이 후덜 거렸다. 다시 지하 차도로 들어가 차 없는 도로로 돌아가려 했다. 그 과정에 언니가 갑자기 야! 너!! 하고 소리쳐서 눈물이 줄줄 흐를 뻔했다. 언니는 이렇게 해야 빨리 는다고 했다. 빨리 느는 건 좋은데… 살면서 처음으로 눈앞이 깜깜해지고 머리가 새하얘지는 경험을 했다.
야! 너! 하고 외쳤을 때 놀라서 차선이 마구 흔들렸다. 그 외에도 3차선에서 2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하려고 할 때 2차선에 있던 택시와 승용차 2대가 1차선으로 옮기면서 길을 비켜줬다. 속도가 빠르지 않아서 잘못하면 부딪힐 수도 있었는데 클락션 한 번 울리지 않고 스무스하게 차선을 변경해서 가셨다. 특히 버스가 내 뒤에 있을 때 제일 신경 쓰이고 걱정됐는데 천천히 기다려주셨다.
언니랑 운전 연습하면서 입에 붙이고 있던 말이 있다. 바로 ‘지금이야?’, ‘나 가도 돼?’이다. 내가 하는 판단을 믿을 수 없어서 차선을 변경하거나 신호 이후에 움직일 때 좌회선 우회전, 유턴할 때도 계속 물어봤다. 근데 인터넷에 운전 연습할 만한 곳 검색하다가 발견한 블로그에서 이런 것조차 물어볼 거면 운전하지 말라고 장난스럽게 쓰여 있었다.
느리게 가지만 클락션 한번 울리지 않고 기다려준 내 뒤차들을 보고 운전 베테랑들의 넓은 아량과 도로의 따스함을 느꼈다. 날은 영하로 떨어져서 추웠는데 도로는 따뜻했다.
그렇게 청라에서 영종도까지 내가 직접 운전해서 카페로 갔다. 언니는 영종도 톨비가 왕복 6천 원 들었다고 나에게 한탄하지만, 영종도 카페에서 먹은 음료 2잔과 조각 케이크 하나에 2만 원이 나왔다. 언니도 백수 나도 백수인데 차 빌려준 게 고마워서 내가 샀다. 백수한테는 일일 자동차 보험료 + 운전자 보험만도 부담스러웠다. 분명 달달한 딸기 케이크를 먹은데 입안이 씁쓸하다. 쓴 맛을 감추기 위해 더 열심히 케이크를 먹었다. 언니보다 더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