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철도원 삼대> p31~p60, 2
“이 좁은 원둘레는 지상의 일상과 시간을 벗어난 우주선의 조종실 같은 곳이다. 그는 죽지 않고 여기 살아 있으나 세상은 그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그는 남들에게는 언젠가 돌아올 여행 중에 있는 사람과 같았다. 아내조차도 그와 통화를 할 적에는 해외에 있는 사람에게 측근들의 소식을 전하듯 말했다. 이진오는 차츰 지상에서의 시간을 벗어났고 굴뚝의 일상은 이미 현실이 아니게 되었다.”(p33)
*****굴뚝 위의 원형의 공간이 자신의 삶이 되어 버린 이진오. 그가 생각하는 대의를 위하여 그곳에 올라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진오는 어느새 굴뚝 아래의 세상과 단절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바라고 지향했던 것들이 굴뚝, 그곳에 있을 때 이루어져 가고 있다고 생각했었을까? 그는 어느새 올라온 목적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일본 측은 철도공사장을 벌인 고장마다 관아에 찾아가 거의 망해버린 대한제국 관리를 겁박하여 침목과 석재의 조달을 요청했고, 조선인 노동력의 울력 동원을 각 지역 군현에 요구했다. 소와 말을 수송에 쓴다고 징발했고, 닭과 돼지와 양곡을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탈취했다.(중략) 조선인의 노력 동원에는 명절이나 제사를 가리지 않았으며 농번기라고 사정을 봐주지도 않았다. 수확기에 힘을 쓸 만한 마을 장정들을 모두 데려가는 바람에 곳곳마다 폐농지가 되었다.”(p53)
*****굴뚝 위 이진오의 큰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의 일제 강점기를 알고 있는 많은 일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낙후되고 처참한 조선인의 삶을 자신들이 변화시켜 주었다고. 당시로서는 우리 조선이 꿈도 꿀 수 없는 철도를 놓아주었다고. 왜 은혜를 잊어버리고 자꾸만 배상금 문제로 자신들을 괴롭히느냐고. 눈에 보이는 물질만 보면 그렇다고 쳐 줄 수는 있다.
“철도가 놓이면서 강제로 땅을 빼앗기고, 부역에 끌려 나와 고생하고, 가족이나 친척이 살해당한 조선 백성들은 전국 곳곳에서 열차 운행과 철도공사를 끈질기게 방해하기 시작했다. 이맘때에 국권을 빼앗기고 나라가 망하여 일어나게 된 의병들도 철도를 주요 공격의 목표로 삼곤 했다.”(p57)
*****일본 제국주의와 친일파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철도가 놓이게 되는 이면을 이 소설에서 보게 된다는 것이 상당히 흥미롭다. 물론 여지없이 그 속에 갈려 들어가는 우리네 민초들의 고통이 선혈이 낭자한 채 드러나고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나는 뒷전에 있다가 부상만 당하고 모면을 했지만, 주동했던 이들은 모두 체포되었지. 일본군 일개 소대가 급파되어선 모조리 잡아다가 헌병대에 수감했네. 거기서 먼저 갖은 고초를 겪었겠지. 급기야는 모두 재판에 회부되고 징역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배상금까지 물어서 집안이 아예 거덜이 나버렸다지. 그러니 어찌 철도가 조선 사람의 피와 눈물로 이루어지지 않았겠는가.”(p60)
*****“철도는 조선 백성들의 피와 눈물로 맹글어진 거다.”라고 말하는 큰할아버지. 기차를 보고 한눈에 반한 이진오의 할아버지 이백만. 나라와 민족이 암울한 상황에 처해지면 그 상처를 고스란히 겪어내는 것은 일반 백성들이다. 그 시대에 철도를 배경으로 한 가족사는 우리 민족의 힘겨운 역사와 맞물려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