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철도원 삼대> p61~p78, 3-1
“커다란 입에 퉁방울 같은 큰 눈이 머리 양쪽 끝에 달린 놈은 크고 긴 입을 죽 찢더니 아버지를 향해 웃어 보였다. 그는 섬찟 놀랐지만 숨을 가다듬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미 날이 저물어서 사방이 어두웠을 텐데 아버지가 취중에 잘못 보았을 거라고 식구들마다 말했지만, 이백만은 나중에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아마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온갖 이상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기 마련이니까.”(p64)
*****모든 크고 작은 역사는 예상을 뒤엎는다. 우리의 일상이 그렇고 우리의 인연이 그렇다. 하지만 그런 의외가 결국 역사의 물결을 이루고 그 속에서 헤엄치는 개인의 인생이 흘러가는 것 같다. 그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또는 살아남기 위해 그들 나름대로 거친 물결 속에서 헤엄치는 방법을 터득한다.
“푸줏간 주인은 어안이 벙벙해서 이러한 광경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하역장 강심장이라면 부두 인부들을 쥐락펴락하는 그야말로 힘깨나 쓰는 장사인데 이렇게 조그마한 사람에게 쩔쩔매는 꼴이 기이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누구에게나 임자가 따로 있는 법이다. 만이 아저씨가 아직도 멍한 표정인 주인에게 말했다.”(p69)
*****일찍 상처한 이백만의 아버지는 공판장의 잡어들을 얻어와서 소소한 푼돈을 모으다 마지막 날 받은 물텀벙이를 보고 세상을 떠났다. 철도 공작창에서 일하던 이백만은 아버지의 문상을 온 만이 아저씨의 눈에 띄어 그 집 사위가 된다. 그는 아들이 철도학교를 졸업하고 철도관사에 함께 살게 되었다, 하지만 아내 주안댁이 일군 버드낭구집을 잊지 못해 돌아와 살았다. 그들은 철저한 계획에 의해 그들의 삶을 만들어 가진 않았다. 그냥 살아내는 사람들인 것이다.
“손자 이지산은 자라면서 아버지 이일철이 할아버지 이백만을 따라서 한강으로 물 구경 나가던 일을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었고 증손자 이진오도 그것을 전해 들었다. 샛말은 물론이고 한강 일대가 오 년 동안이나 홍수가 졌다는 이야기였다. 누구든 들으면 어떻게 오 년 동안 홍수가 지느냐고 믿지 못할 테지만 그건 엄연히 그들 가족이 겪은 일이었다.”(p76)
*****참, 없던 시절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오 년 동안 홍수로 한강에 물 구경까지 나가던 삼대의 삶은 그들이 바라보던 한강의 물줄기는 어떤 의미였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하지만 한강의 물처럼 그 시절을 도도히 살아낸 사람들이 있기에 지금의 한강도 흘러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