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철도원 삼대> p79~p99, 3-2
“주안댁이 언덕 가녘에서 살피다가 서슴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자 밧줄이 풀려나갔다. 그녀는 무리 지어 떠내려오는 수박덩이를 목표로 헤엄쳐 가더니 몇 덩이를 그러모아 투망에 뒤집어씌우고 외친다. 그녀는 물가로 잠깐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서 참외며 오이 등속을 그러모아 나왔고, 어느새 물질에 이골이 나서 닥치는 대로 걷어들였다.”(p84)
*****슈퍼우먼 ‘주안댁’은 단순한 이 소설의 등장인물로만 생각할 수 없다. 격동기를 살아낸 우리의 어머니들 모습이다. ‘머릿수건에 몸빼차림’은 나의 어린 시절에도 주변 어머니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조금 더 진화해서 뽀글 머리에 억센 음성, 부끄러움을 모르는 활극도 마다하지 않는, 제3의 성으로 불리는 ‘아줌마’다. (나 역시 그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도 새침하게 눈을 흘기는 소녀 시절이 있었다. 분명히.)
“아무도 그녀의 결정을 말릴 계제가 아니었다. 주안댁의 뗏목은 그야말로 쏜살같이 당산리 쪽으로 미끄러져갔다고 한다. 삿대질이 어찌나 빠르고 거세었던지 물속을 팍팍 찍는 동작이 춤추는 것 같았다고 그랬다. 공작창의 지붕만 남아 있었는데 주안댁은 정확하게 사람들이 모인 곳에 뗏목을 대었고 그들을 실어다 원당산 언덕 기슭에 부렸다.”(p87)
*****남편의 박봉만 바라보지 않고 장사를 나갔던 주안댁은 날씨가 좋지 않으면 장사를 접고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했다. 그녀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홍수로 물이 차오르는 거리를 아이들을 데리고 나무 함지박을 끌고 나간다. 지대가 높은 옹기말 언덕에 옮겨 놓고 뗏목을 만들어 남편을 구하러 가기까지 한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살아 내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먹는 병으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다.
“그런데 문제는 막음이 고모 혼자 주안댁의 도움을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니고 한쇠까지도 엄마가 왔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한쇠는 그에 보태서 엄마가 무럭무럭 김이 나는 팥시루떡을 하나씩 주어서 맛있게 먹었다고 그랬다. 그걸 뗏목 위에서 먹은 게 아니라 엄마가 나중에 나타나서 공회당 밖으로 불러내어 자기와 아우에게 주어서 비를 맞으며 먹어치웠다고 한다.”(p94)
*****가족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그녀가 죽은 뒤에도 여전히 나타난다. 홍수에 잦은 침수를 겪은 집을 걱정하며 수리를 부탁하고, 위험할 수 있는 일철의 기차에 대신 화목을 던져 넣는다. 여름날 으스스한 분위기가 연출될 만한 이야기지만 그녀를 아는 가족, 책을 읽는 나마저도 공포가 아니라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녀의 마음은 절대 공포가 될 수 없다.
“쇠막대를 던지고 화구 앞으로 뛰어들려는데 뭔가 시커먼 사람이 앞을 가로막더니 화구가 벌겋게 열리며 삽질을 시작했다. 그것은 옆으로 서서 춤추듯이 몸을 뒤로 돌려 삽으로 탄을 펴서 앞의 화구 속에 던져 넣는 동작을 계속했다.(중략) 일철은 그것이 주안댁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머릿수건 쓰고 몸빼 입은 평소의 차림 그대로였다.”(p98)
*****한강의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할 수 있을까?’라는 말이 개인의 삶에도 대비시킬 수 있다면 이런 경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쇠 일철이 죽은 어미 주안댁이 자신의 죽음 직전에 정말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아버지 이백만의 말대로 ‘세상에는 온갖 이상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일철이 죽음 앞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은 주안댁의 물려준 삶의 방식이 아닐까 싶다. 그건 위기와 위험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먼저 숨을 쉬고 살아 있음을 확인해 내는 일이다. 화구 속에 탄을 퍼 넣는 주안댁이 일철을 살린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