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철도원 삼대> p100~p133, 4
“뭐야, 와글와글 갑자기 몰려들 왔잖아. ‘깍새’ ‘진기’ ‘영숙’ ‘주안댁’ ‘금이’. 그렇게 이름을 붙여주고 보니 모두 죽은 사람들이었다. 큰할머니와 할머니, 깍새가 옛날 이름들이라면 영숙과 진기는 근년에 그가 알았던 이름들이었다. 그는 이름을 쓴 병들을 소변 담은 페트병 무리에서 떼어다가 따로 난간에 매어놓았다.”(p106)
*****굴뚝 위 홀로 있는 이에게는 산 자와 죽은 자의 방문이 이어진다. 산 자는 목소리로, 죽은 자는 꿈인 듯 허방을 짚은 듯 그를 그때의 시간으로 데려간다. 어쩌면 그들은 지금 이진오가 굴뚝 위로 오르게 했을 수도 있다. 생각은 행동을 만들어 가니까.
“하기는 고공 농성자들이 거의 일 년씩 넘기는 게 상례였고 그런 정도가 되어야 사측에서 겨우 협상에 나서는 듯한 시늉을 했으며 여론도 눈길을 주기 시작한다. 참지 못한 이들은 중도에 투신하기도 했지만 열사의 이름이 붙으면서 수많은 사진 속에 섞이고 세월과 함께 묻혀갔다.”(p112)
*****외로운 듯 외롭지 않은 듯 고공 농성자들은 세월에 묻혀갔다. 심지어는 그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외치는 구호는 기억되지 않는 것들이 더 많다. 누구는 영웅심리에 취했다고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다수의 고통을 함께 지고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렇게 묻힌 목소리와 숨소리는 씨앗이 되고 천천히 변화를 가져온다. 그들의 행동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만들었다.
“선반부와 주조부가 치수와 주형의 착오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다투다 보면 우리끼리 인심 사나워질 테고 싸움이 커지면 누군가가 해고될 게 뻔하지 않소. 조선도 그렇게 해서 망한 거요. 여우 같은 일본은 그런 식으로 조선 백성을 가지고 노는 거요.”(p122)
*****아버지를 따라 철도공작창에 들어온 이철은 훗날 자신과 함께 일을 도모하게 될 방우창을 만난다. 작업장에는 고용인과 피고용인은 분명히 구별된다. 최소한 같은 처지의 우리 민족 피고용인끼리는 다투지 말자는 방우창의 생각이다. 조그만 일에도 시시비비를 정확히 가리기를 좋아하는 현시대에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준다.
“이진오는 머리가 커서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그로부터 꼼짝달싹도 못할 정도로 자신의 미래가 노동자 이외의 다른 존재로는 살아갈 수 없게 한정 지어졌다고 그는 억울하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월북했고 아버지는 그를 따라갔다가 부상당하여 반공포로가 되어서 돌아왔다. 그리고 일찍이 그의 작은할아버지는 공산주의자로 일제 강점기에 해방을 맞지도 못하고 옥사했다. 할아버지의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던 것이었을까. 증조부 이백만의 무덤덤하고 표정 없는 중립주의마저 오래전에 정해져 있던 것이었을지도 몰랐다.”(p133)
*****이진오의 가계에 흐르는 많은 이야기와 일들은 그를 노동자로서 굴뚝 위까지 올라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 주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싶다. 그들은 척박한 삶에 매몰되지 않는 우리네 삶을 보여 준다. 일본이 나라를 먹고 꼼짝 못 하게 해도, 노동자의 절규를 귓등으로 도 듣지 않는 사측의 태도가 있다 해도 기꺼이 그들은 숨 쉴 구멍을 찾아 사회주의를 찾아내고, 굴뚝 위에도 오르는 것이다. 주안댁이 죽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삶이 그들의 내면에 면면히 흐르고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