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철도원 삼대> p134~p156, 5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영등포에는 신세대 주의자들이 막노동운동을 시작하고 있을 때였단다. 선배 세대가 매번 요릿집이나 카페에서 당을 선언만 해놓고서는 잡혀가고 깨지고를 반복하니까, 그 사람들은 아예 각자 공장에 들어가서 조직을 만들어 밑에서부터 시작하려구 했대. 맨 뒤에 이 아무개라는 전설 같은 활동가가 있었지. 느이 할아부지도 그때는 그 사람 얼굴도 못 보았던 시절이다. 그러구 선이 한둘이라야 말이지. 제각기 조직을 만든다구 국제당의 선을 자처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우리네야 모두 입을 모아 말했지. 제발 힘을 합치라구. 조선사람들 사는 꼴을 보라구.”(p138)
*****신금이가 손자 이진오에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생각하면 독립운동만 생각할 때가 많다. 근대화와 맞물린 우리나라의 그 시절은 또한 사상의 전쟁터였다는 것을 깜빡하게 된다. 마치 대학 시절 군부 독재에 맞선 학생 노동운동의 활동을 보는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독재에 맞선 사상적 고뇌가 불법이었던 시절이 우리나라다. 그 뿌리는 근대화를 일본이 우리나라에 큰 은덕을 베푼 것처럼 선전하던 일제강점기까지 올라간다고 생각하니 다시 생각이 많아진다. 아무리 우경화를 부추겨도 마음과 눈이 살아나는 우리는 그런 민족이다.
“이철은 공장에서 모든 공원들이 기계를 멈추고 앞마당에 모이던 그날 아침을 언제나 잊지 않았다.(중략) 공장의 안쪽 끝에 모여 있던 아버지의 선반기를 바라보았다. 물이 서서히 빠지듯 전원을 끊은 여러 기계가 멈추면서 공원들이 차례로 통로를 걸어 나오기 시작할 때에 이백만의 기계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기계도 멈추었고 아버지는 한참이나 작업대 앞에 앉아 있었다. 이백만이 기계들 사이에 통로를 천천히 걸어 나왔다.”(p138~139)
*****한평생 철도 금속일 밖에 한 것밖에 없는 아버지 이백만이 마지막까지 기계가 멈추는 것을 보고 밖으로 걸어 나온다. 그의 삶의 문이 닫혀 버린 거나 마찬가지이다. 그 시대나 지금이나 회사는 일개 노동자의 사정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은 사측의 결정에 따라 죽고 사는 소모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을 터이니 까 말이다. 이 역시 지금까지도 우리 옆의 힘없는 노동자들이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로 이어지고 있다. 그건 이진오가 굴뚝 위로 올라간 이유가 되었듯이 말이다.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학교 문전은커녕 자기 집 담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아버지가 정해주는 남자에게 시집갈 날만 기다리는 수많은 자기 또래의 조선 처녀에 비해서 과감하게 자기 인생을 개척해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던 존재들이었다. 따라서 공장의 남자 직공들보다도 선진적이었다.”(p145)
*****주안댁이 죽어서까지 자신의 가족을 보듬고 지켜가는 것처럼 우리의 어머니들은 세상이 바뀔 때에 어쩌면 가장 기민하게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남자들로 대변되는 대의의 세상 뒤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살아내는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다. 아무에게도 기댈 곳이 없는 그들은 자신의 손으로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날 이철이 뇌리에 새긴 것은 서두르지 말되 급변하는 상황을 놓쳐서도 안 된다는 것과 노동대중의 자율성과 지도력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활동가는 대중을 도우면서 끊임없이 대중의 지도를 받는 존재라야 했다. 청엽정 언덕에서 만났던 유 씨를 이철은 그 후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p155)
*****이철의 이 생각은 칠팔십 년 전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언뜻 보기에 세상은 걸출한 지도자 한 두 사람의 손에 이루어져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지도자의 활동 배경이 되는 것은 대중이다. 그들을 이해하고 소통하지 못하면 그들은 온전한 지도자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이철의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회 전반의 리더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결국 세상을 이끌 힘은 다수의 대중에게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