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철도원 삼대> p157~p191, 6
“유동지는 늘 말했어요. 우리는 결코 해외에 나갈 수 없다고, 죽어도 조선에서 죽고 최후까지 국내에서 활동하리라고. 여기 이 땅에 우리 조선 인민이 살아가고 있으니 그들의 삶이 바로 우리의 현장이요 현실이기 때문이오. 바깥의 누군가가 우리의 혁명을 대신해주지는 않습니다. 가난하고 초라한고, 미흡하지만 우리는 조선 인민의 힘을 믿을 수밖에 없지요.”(p165)
*****‘가난하고 초라한고, 미흡하지만 우리는 조선 인민의 힘’ 바로 무지랭이 민초들의 힘, 나라의 존립 이유, 떠나지 않고 살아남아야 하는 곳. 이철에게 사상적으로 깊은 영향을 끼친 유동지의 말이다. 누군가 부귀영화를 약속한 것도, 권력을 쥐여 주겠다고 한 것도 아니지만 그들은 그들이 태어난 나라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품고 있다. 코민테른이나 국제 혁명조직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 ‘내 나라’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꺼이 위험과 죽음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일 수 있다.
“이들은 일제의 압박 속에서 꿈틀거리며 살아가려고 일어서는 조선의 근로대중을 놓고 서로 자기 조직이라면서 운동선을 중복시키고 주도권 다툼을 해왔지요. 이런 사람들이 밖에서 배웠던 조선에 대한 지식은 국내에 들어와 운동하는 데 현실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p166)
*****외국에서 공부를 한 사람은 학문적 기반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되풀이하지만 결국은 그들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외국의 사상을 이용한다. 어쩌면 그 엄혹한 시절 그래서 이유 없이 나라는 더 아픈 상황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결국은 그들의 권력욕이 나라의 분단을 만들고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데에 분명히 한몫을 하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제발 힘을 합치라구’의 외침은 우리나라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비 온 뒤 풀처럼 메아리친다. 무조건 힘을 합치는 맹종이 아니라 충분한 논의 뒤의 단결은 어느 시대에나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 못한 결과의 아픔은 무슨 일인지 알지도 못하는 대다수 일반 백성의 몫이다.
“지방의 관청이나 경찰에서 일본인 또는 조선인 업자들에게 두당 얼마씩의 수수료를 받으며 동조하여 시골의 소녀들을 모집했고, 단돈 십여 원에 팔려 온 이들은 육 년에서 십 년의 계약으로 한번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었다. 이들은 각자의 운세에 따라서 사창가나 공장으로 팔려 갔다. 이러한 일본 관청의 경험은 관례가 되어 나중에 전쟁 시기의 징용과 정신대 동원에 활용되었다.”(p173~174)
*****‘우리 집에 왜 왔니?’라는 어릴 적 놀이하며 부르던 노래의 모티브라는 말이 있다. 그렇게 굶주린 소녀들이 작은 일을 하여 집안을 돕게 되는 일을 할 줄 알고 그들이 내민 손을 잡았지만, 다시 오지 못할 나락으로 떨어져 갔다. 일본은 당연히 돈을 받고 자발적으로 군의 정신대에 들어온 창녀들이라고 주장한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국제사회에서도 정의나 진실은 당연히 묵살되고 왜곡된다.
“금이는 어두컴컴한 유치장을 벗어나 경찰서 면회실로 들어갔는데 유리창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등지고 앞에 검음 것이 우뚝 서 있었다. 얼굴도 보이지 않았지만 순사가 약혼자라고 말했을 때 금이는 어쩐지 그가 한쇠 이일철 일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들은 입회 순사를 옆에 두고 마주 앉았다.(중략) 금이는 순간 이 사람에게 시집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때에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알았다. 나는 이 사람의 지킴이가 될 것이다.”(p174~175)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어도 사람의 인연은 아름답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는 힘을 또 얻는 것이지도 모른다. 자신의 배필이 될 것을 직감한 신금, 속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남자의 진심이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경찰서 면회실에서 빛난다. 그리고 강한 여자, 자신의 운명 속으로 씩씩하게 걸어 들어갈 줄 아는 여자 신금은 그를 지켜주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