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아 낸다는 것

황석영 <철도원 삼대> p192~p213, 7

by 김혜진

“그는 패딩 코트와 방한화를 벗고 두꺼운 털양말을 신고 털모자 쓴 채로 침낭 속으로 들어가 누었다. 바람 소리는 텐트 자락을 열고 밖으로 나서면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처럼 들렸고 안으로 들어오면 바닷가의 묵직한 파도 소리가 되었다. 때로는 속이 빈 굴뚝을 맴돌고 지나가는 바람이 우웅, 하는 소리를 냈다. 진오는 머리맡에 놓아둔 진기 페트병을 생각했다.”(p165)


*****한겨울 굴뚝 위의 살풍경이 그대로 전해진다.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진오의 자리는 하늘과 바로 맞닿은 우주의 일부가 된 듯하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자리, 죽은 자가 무시로 드나드는 자리이다. 그곳에서도 계절은 어김없이 다가오고 바람은 혼자서 견디는 그를 동무하는 우주의 소리가 된다. 그는 우주 가장자리에서 살기 위해 옷의 지퍼를 목까지 끌어올리는 우주 비행사 같다. 많은 상념이 오가는 시간에 그를 방문한 또 한 사람이 있다. 같은 해고 노동자로서 일 년 간의 고공농성 끝에 자살했던 진기였다.




“그래두 오늘 살아 있으니 할 건 해야지.”

“그러나 이제 그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절망이었고, 그것은 일상이라는 무섭고 위대한 적에 의해서 조금씩 갉아 먹힌 결과였다. 집회에서 헤어지면 그들은 모두가 혼자가 되었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도 그들 각자가 혼자가 되었다. 세계란 원래가 우주처럼 무심하다. 괴괴하고 적막하고 고요하다. 무료하고 가치 없는 일상이 그들 모두를 무너뜨렸다. 해고는 살인이다.”(p202)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일인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어쩌면 대의라고 생각하며 동료의 격려를 받으며 그 길로 들어서지만 정작은 아무도 손잡아주지 않는 공간에 홀로 서고 말 것이다. 함께 뜻을 같이하지만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명분은 빛을 발하고 심지어는 많은 이들에게 잊혀진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이 자살이라는 허방을 짚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자신의 꺼진 빛을 안타까워하며 우주 속으로 명멸하듯 스스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다른 계절에 매일 두세 차례씩 해오던 운동을 이제는 팔 굽혀 펴기와 앉았다 일어서기로 축약해서 점심 이후 오후 시간에 실행하고 있었다. 이 모든 노력들에 의미가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증조할아버지 이백만에서 할아버지 이일철과 아버지 이지산을 통해 그에게 전해진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삶은 지루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지속된다는 믿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늘을 살아낸다.”(p206~207)


*****굴뚝 위 이진오의 삶은 오늘도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매일 하는 간단한 운동, 세끼의 식사, 그리고 험한 날씨를 견디는 것. 우리의 삶은 이진오와 무엇이 다를까? 장소가 다르고 일 또는 행동과 이름이 다를 뿐, 살아낸다는 그 중대한 명제에 충실한 것은 같다고 생각한다. 이진오는 그들의 선대가 그랬듯이 오늘을 충실히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굴뚝 위의 삶이 자신의 것임을 온전히 인정하고 열심을 다해 먹고 숨 쉬며 살고 있는 것이다. 굴뚝 위의 삶과 더불어 풀냄새 땅냄새 가득한 지상에서의 삶도 동일하게 흐르고 있다. 굴뚝 위로 찾아온 신금이 할머니는 말한다. 너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저어기 하늘에 별들 좀 보아. 수백 수천만의 사람이 다들 살다가 떠났지만 너 하는 짓을 지켜보고 있느니’ 그래서 이진오도 우리도 오늘을 또 살아낸다. 사실 오늘을 살아낸다는 것은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한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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