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은 우리가 주인

황석영 <철도원 삼대> p214~p235, 8-1

by 김혜진

“일터에서는 일본인 한 사람이 있어도 조선어로 조선 사람끼리 대화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하야시가 폼을 벗어나 평지에서 더욱 높아 보이는 기관차의 철제 계단을 오르기 전에 일철에게 물었다. /자네 이게 무슨 기관차인지 알고 있겠지? /예, 마카도형 아닙니까?/ 음 대단한 괴물이지. 이거 미국에서 사다 쓰던 것을 우리 가와사키 조선소의 공장에서 개량하여 만들어냈지. 어떤가, 국산이란 말일세./”(p216~217)


*****대동아 공영권을 꿈꾸던 일제는 자부심에 가득 차 있다. 썩어가던 초가지붕과 빈궁한 조선의 들판에 철로를 놓으며 그들은 스스로 위대한 꿈에 부풀어져 있었다. 그 철로 아래 있던 우리의 꿈은 말을 잃고, 글을 잃으며 일본제를 국산이라 불러야 했다. 우리의 땅과 사람은 그들을 빛나게 할 연료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여기 일본 유곽에서 조선 사람 특색을 보이는 것이 동포에게 수치스럽다는 뜻이었을까. 이 아이는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을까. 춘궁기의 농촌에 가서 과년한 딸을 취직시켜 주겠다며 몇십 원 가불 해주고 데려왔을 것이다.(중략) 두쇠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민족해방은 이런 사람들에게까지 새로운 삶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일까.”(p228)


*****나라가 어려우면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여자와 아이들이란 말이 있다. 일철은 유곽촌의 조선인 소녀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그것은 그 소녀 개인에 대한 연민이기보다는 나라 잃은 민족을 바라보는 참담함이었을 것이다. 그 참담함 앞에 대의를 위해 애쓰는 동생 이철이가 생각나게 된다. 그리고 민족해방의 가치를 다시 떠올린다.




“/도둑이 내 집의 재물을 훔치러 들어오면서 담에다 사다리를 걸치고 들어왔네. 일본이 조선 사람을 위해서 철도를 놓았겠나. 일본은 처음부터 대륙으로 나가는 반도의 철도를 군용 철도라고 정했네. 그래서 마음대로 강압적인 징발 징용을 할 수 있었던 거지./(중략) /아, 그래도 기분이 좋아졌구먼유. 우리가 주인이라니께!/ 그래 지금은 곁다리로 남의 시중이나 들고 있지만 우리가 주인이지. 그걸 잊지 말자구./”(p234)


*****어쩌면 일반 백성들은 나라의 주인이 문제가 아니라 먹고살아야 하는 문제가 더 큰지도 모른다. 그리고 폭압에 슬며시 스며드는 패배감과 상실감을 인정하게 되는 지경에 까지 이른다. 일철은 화물차 탄부 김 군을 향해 말한다. ‘이 땅의 주인은 우리’라고. 단순한 듯하지만 결코 단순할 수 없는 말이다. 그걸 잊지 않고 살아야 되찾을 힘을 얻고 되찾을 수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일철은 자신의 정체성을 김군과 함께 분명하게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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