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철도원 삼대> p318~p349, 10
“앞에서 오는 형사들은 매서운 눈길로 이재유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지나갔다. 뒤에서 쫓아오던 형사들도 지척에 다가와 있었다. 이재유와 그들이 막 엇갈려 지나는 순간에 양편의 형사들은 직감적으로 그가 자기들이 쫓던 인물임을 알아차렸다. 조선인 형사가 몸을 획 돌려 이의 목을 뒤에서 휘감으며 끌어안고 함께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형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그의 팔다리와 목을 잡고 눌렀다, /당신 이재유지?/”(p335)
*****국제선이었던 김형선이 잡히고 이재유는 도피의 시간이었다. 홍과 부부처럼 위장했지만 포위의 시선들이 좁혀져 오고 있었다. 먼저 붙잡힌 장만수가 고문 속에서도 시간을 벌어 주었지만 그는 결국 장만수와 만나기로 했던 중림정 전차 정류장에서 잡히고 만다. 그는 ‘조선 사람들에게 한 조선 사람이 잡혀간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소리친다. 하지만 주위에 있던 모든 조선 사람들은 겁을 먹은 채 비켜서 지나갔다. 일제의 공권력 앞에 몸이 잡힌 이재유도, 마음이 두려움에 잡힌 주위의 조선인들도 무력해지고 있었다. 그건 사실 비극이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잘 걷지도 못하는 그가 이토록 삼엄한 감시 속에서 또다시 탈출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다시 한 달이 지난 사월의 어느 늦은 밤이었다. 이재유는 철통 같은 감시망을 뚫고 드디어 두 번째의 탈출에 성공한다.(중략) 그의 탈출 경과는 나중에 밝혀졌는데, 담당 검사 측의 기록과 해방 이후 활동가들의 회상이 조금씩 다르게 알려졌다.”(p339)
*****이재유는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형사가 잠든 틈을 타 탈출에 성공한다. 하지만 피해 들어간 곳은 미국 영사관이었고 경찰에 다시 인계된다. 하지만 그에게 두 번째 탈출의 기회가 생긴다. 두 가지 설이 있다지만 두 번째가 더 신뢰가 간다. 그의 담당 형사는 모리다라는 젊은 청년이었다. 그는 민주주의 사상을 가졌으며 공산주의에도 흥미를 가진 사람이다. 이재유와의 대화를 통해 그는 사상적으로 인간적으로 이재유에 매료된다. 흡사 안중근의 옥중 모습을 보는 듯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는 진심이 닿는 곳이 있다. 그가 누구이든.
“/나는 밖에 나가고 싶소, 옳은 일을 하며 자유롭게 살고 싶소./ 모리다의 얼굴에서 일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러고는 진지한 말투로 대답했다.”
“밖에서는 활짝 피어 있던 벚꽃도 이곳에만 들어오면 시들어 버립니다. 그러나 시들지 않고 피어나는 꽃을 누가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친구가 가버리면 외로워지겠지요. 그렇지만 소란을 피우지 않을 겁니다. 차 한잔이 식을 때까지는.”(p342)
*****진심이 통하는 사이의 대화다. 이재유의 결연한 한마디에 모리다의 진심은 시가 되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일면으론 모리다의 순수한 성품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둘은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기꺼이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경찰 끄나풀인 조선인의 손에 붙들려와 조선인들에게 고문을 받은 이재유는 일본인 모리다의 섬세한 도움을 받는다. ‘시들지 않고 피어나는 꽃’인 이재유를 위해 그의 삶을 건지도 모른다. 비극 뒤에도 아름다움은 있다.
“미야케의 아내 히데가 남편이 연행되어 갔다는 소식을 전하자마자 이는 그 집을 빠져나와 낙산을 넘어 종로 6 정목 방면으로 도주했다. 미야케의 자백으로 형사대가 그의 집을 덮쳤을 때 은신처로 사용하던 마루 밑 토굴에는 이재유가 먹다 남긴 밀감만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고 한다. 이후 미야케는 치안유지법 및 범인 은익죄로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삼 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다. 옥중에서 그는 ‘감상록’이라는 성명을 내고 전향한다.
*****두 번째의 탈옥에 성공한 이재유는 경성제대 교수 미야케의 집에서 은신한다. 마루 판자를 뜯고 흙을 파내어 기거할 수 있는 토굴을 만든 것이다. 감옥에서의 모리다 형사처럼 이 절체절명의 시기에 이재유의 손을 잡아 준 사람은 일본인 교수 미야케이다. 집 밖은 이재유를 잡으려고 혈안이 된 경찰과 조선인 앞잡이들이 날뛰고 있었다. 미야케는 한발 더 나아가 국제선 그룹의 사회주의 사람들과 더불어 활동하기도 한다. 모리다와 미야케의 모습은 우리가 역사를 단면으로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 한다. 세상은 씨줄과 날줄의 얽힘 속에서 우리가 내민 손을 예기치 않은 사람들이 잡아 주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