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정 최달영, 혹은 야마시타

황석영 <철도원 삼대> p285~p317, 9

by 김혜진

“최달영은 아마도 그 말을 하려고 일부러 상의를 벗었는지도 몰랐다. 일철은 속으로 놀라기는 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는데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아우 이철의 얼굴이었다. 최근에 아우에게 긴장할 일이 생겼다고 하던 아내의 말을 기억하고 있던 터였다. 또한 그가 데려온 신여성과 함께 지낼 살림집까지 구해준 일도 있어서 일철은 앞에 앉은 최가와 잘 사귀어둘 필요가 있다고 마음먹게 되었다.”(p289)


*****최달영은 돼지를 키우는 가난한 집 아이였다. 몸에서 하수구 냄새가 난다고 일본인 담임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그와 함께 해준 이가 일철이었다. 보통학교를 겨우 나온 친구가 경찰에서 일하는 것이 미심쩍었지만 그는 아우 이철을 위해 그에게 시간을 내준다. 집안의 맏이답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학교를 나와 남들 보기에 번듯한 직장을 가진 그는 세상을 보는 눈은 남다르다. 위험한 일을 하는 동생에 대한 마음 씀, 비록 상관의 불법으로 자신에게 떨어진 이익을 마다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아랫사람과 균등하게 나눈다.




“사실 최달영이 순사 보조에서 정식으로 순사 발령을 받은 것은 불과 몇 달 전이었다. 그가 총독부 경무국이 인정하는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김형선이 체포되던 그날 방우창의 합숙소에서 며칠 동안 잠복하다 그를 미행했던 정탐이 바로 최달영이었다. 순사 보조라고 아무나 고등계에 소속되어 정탐 노릇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십 대 때부터 자청하여 일본 경찰의 끄나풀이 되었다.”(p292)


*****이철을 위험에 몰아넣은 김형선의 검거는 최달영의 잠복 미행 덕분이었다. 최달영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감당해야 할 가족을 위해 돼지를 직접 잡고 남몰래 내다 팔았다. 발각되자 스스로 형사를 데리고 밀주하는 집으로 데려가 밀고한다. 그에게 밀고는 도덕적 정의를 가리키는 가치가 아니라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통로였다. 자신의 동족들의 발목을 잡으며 그는 승진하고, 올라온 자신의 위치에 오히려 자부심까지 갖는다. 원래 주인보다 마름이 더 잔인하다. 일제의 마름 노릇을 했던 그들은 자신의 동족에게 누구보다도 더 잔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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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직임이라도 얻어 보려고 해마다 이십 대 일의 경쟁을 통과했으니 들지 못한 자들까지 잠재적인 앞잡이로 본다면 그 숫자는 수십만이 될 것이다. 한쪽에서는 가산과 가족까지 버리고 목숨을 바쳐 일제와 싸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적의 앞잡이가 되어 몇 푼의 생활비와 작은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 그렇게나 많았던 것이다.”(p306)


*****빼앗긴 나라는 여전히 빼앗김을 당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 땅의 사람들에게서. 개인 밀정을 지원하는 사람이 그렇게나 많았던 사실은 독립을 위해 싸우다 가신 분들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운 맘까지 든다. 일제는 그들을 아주 요긴하게 이용했다. 그들은 또 하나의 권력이 되어 갔다. 어쩌면 그들의 이웃이었을지도 모르는 이들은 조선인 밀정들의 발아래 밟혀갔다.




“활동가들의 회고록에는 갖가지 기상천외한 고문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가장 가벼운 고문 정도가 수동전화기의 전선을 물 뿌린 젖은 손가락에 감은 다음 발전 손잡이를 돌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고문은 나라가 해방된 뒤에도 정적들에게 수십 년 동안 자행되던 일제의 유산이었다.”(p314)


*****청산되지 않은 일제의 유산은 어둡고 차가운 곳에서 그 악랄함은 오래 계속 이어졌다. 그것들 역시 일제의 밀정에 앞장서던 자들이 그대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며 자행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권력 유지에 반기를 든 사람들은 그들의 발아래 아프게 유린되었다.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어쩌면 그 그림자는 아직도 우리의 사회 전반을 넘나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유가 무엇일까? 손에 든 잘못된 권력은 그만큼 생각을 마비시키는 존재이며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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