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철도원 삼대> p599~p616, 18-2
“미군 장교 옆에 앉은 한국군 심사관이 지산에게 물었다. /당신은 서울 영등포가 주소지로 되어 있다. 석방된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이지산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집으로 가야죠./ 지산이 영등포 샛말로 돌아와 두어 달 지나서였다. 사실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박헌영과 남로당 간부들이 체포되었다는 평양 방송의 발표를 남한의 방송과 신문에서 크게 보도했다. 이튿날인가, 이백만이 그에게 막걸리 한 되를 받아오라고 했고, 김치와 두부를 놓고 할아버지와 손자는 처음으로 술을 마셨다. 이백만은 아무 말 없이 막걸리만 마셨다. 됫병들이 술병을 다 비워갈 즈음에 이백만은 그저 한마디 했다. /한쇠는 잘 있는지……/”(p603)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는 상황에서 기관차를 운전하던 지산은 터진 폭탄에 다리를 잃고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석방된 그는 집으로 갈 것을 결정했고 불구의 몸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얼른 돌아와’, ‘엄마한테 가거라’라는 부모의 말은 그 위험한 상황에서도 그가 생명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단으로 가는 나라에서 북에 있는 한쇠 일철은 돌아오지 못한다. 말 없는 할아버지 이백만의 막걸리는 끝나지 않는 비극이 계속 이어질 것을 예고한다.
“그는 수시로 말을 걸었던 빈 페트병이 나란히 붙들어 매어져 있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소리를 내어 페트병의 이름을 불러 본다. /깍새 꼬마야, 진기 쪼다 놈아, 영숙이 누나야, 주안댁 구신 할머니, 신통방통 신금이 할머니이./ 이제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가 지상의 산 사람들 영역으로 돌아간다는 걸 저들도 다 알고 있을 테니까. 그들을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버릴 수는 없었다. 진오는 털썩 주저앉아서 주머니칼로 이름자 부분을 도려냈다. 그 조각들을 하나씩 거두어 호주머니에 소중히 간직했다.”(p606)
*****주안댁과 신금이 할머니가 꿈결에 찾아와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고 말한 뒤 노사 합의 타결 소식을 휴대폰으로 전해 듣는다. 진오는 천막과 텐트를 걷고 농성 살림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버릴 수 없는 것이 있다. 그의 외로운 굴뚝에 무시로 찾아와 주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이름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가 버티고 견딜 수 있게 해 준 이들이다. 진오가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그들의 삶은 지금의 진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냥 조금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마음이 이끌어 간 곳은 척박하고 외롭고 거칠었다.
“화가 치민 그들이 본사에 전화했지만 직급이 높은 자와는 통화할 수가 없었다. 일반 직원은 곧 신입직원을 모집하여 내려보낼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보라고 같은 소리를 몇 번이나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들은 허탈하게 웃기도 하고 서로 싸움질도 했다. 더러는 떠나고 몇 사람은 남았다. 폐허를 떠나 고속버스 정류장 앞에서 각자 헤어지기 전에 그들은 소주를 나누어 마셨다. 마지막 남은 세 사람은 서로의 눈길을 피하며 소주잔만 들여다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김형이 진오를 바라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다시 올라가자. 이번엔 내가 올라가겠어./”(p612)
*****진오가 굴뚝에서 일 년 만에 내려왔지만 끝나지 않은 싸움이었다. 사측은 폐허가 된 옛 공장에 복직시키고 아무 답이 없다. 진오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질기게 굴뚝 위에 있었을까? 눈속임 같은 복직에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철저한 기만이다. 문제의 해결점이 부당한 해고를 당한 노동자에 있지 않았다. 대중들의 눈을 돌리기 위한 교묘한 수법에 지나지 않았다. 진오와 동료들은 다시 쓴맛의 술을 마시며 다시 척박한 시간으로 발길을 돌려야 함을 깨닫는다. 옛날 신금이의 말처럼 새로운 세상이 금방 오지 않고 ‘감질감질’ 천천히 오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오긴 오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이 시기의 노동운동 자료들을 살피면서 식민지 시대 이후 조선의 항일 노동운동은 너무도 당연하게 사회주의가 기본 이념의 출발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방 이후 분단되면서 생존권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은 ‘빨갱이’로 매도당했고, 한국전쟁이 터지고 세계적인 냉전체제가 되면서 수십 년 동안의 개발독재시대에 모든 노동운동은 ‘빨갱이운동’으로 불온하게 여겨졌다. 우리가 기나긴 분단시대를 거쳐오면서 애초의 출발점부터 북한에 대하여 민족적 정통성을 주장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지만, 남한 민중이 근대화의 주체가 되어 산업화를 이루고 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피와 땀으로 정통성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아직 부족하고 미흡하다는 점에서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남과 북의 정통성 논쟁은 자제해야 할지도 모른다.”(p615~616) -작가의 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