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대의 적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
[인생망치는 것들]
1. 남자의 인생을 망치는건 성욕
2. 여자의 인생을 망치는건 측은지심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를 멸망시킬 뻔한 것들은 대부분 외부에서 왔다고 생각하기 쉽다. 공룡을 멸종시킨 소행성, 흑사병, 전쟁... 하지만 정작 개인의 인생을 가장 확실하게 망치는 것들은 우리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 그것도 아주 교묘하게 '본능'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달고서 말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두 가지 무기가 있다. 남자의 인생을 박살내는 '성욕'과, 여자의 인생을 좌초시키는 '측은지심'이 그것이다. 물론 이는 극도로 일반화된 관점이니, 예외는 언제나 존재한다는 점을 먼저 밝혀둔다. 하지만 통계와 경험이 말해주는 바에 따르면, 이 두 가지는 정말로 인생의 '치명적 버그'라고 할 만하다.
성욕이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메커니즘을 보면 정말 신기하다. 남자의 뇌는 평소에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다가도, 성적인 자극이 들어오는 순간 마치 컴퓨터가 블루스크린에 빠지듯 모든 기능이 정지한다. 이때 뇌의 지휘권은 몸의 다른 부위로 넘어가게 되는데, 문제는 그 부위가 사고능력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역사상 수많은 영웅들이 이 함정에 빠졌다.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파리스, 왕국을 잃은 안토니우스, 탄핵당한 클린턴...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뛰어난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아래쪽 뇌'가 '위쪽 뇌'를 압도했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이런 현대판 성욕 재해 사례들은 더욱 정교하고 다양해졌다. 먼저 직장에서의 성희롱을 보자. "그냥 칭찬한 건데요"라는 변명과 함께 수십 년 경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성욕이 사회적 센서를 마비시켜 상대방의 불편함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한민국 권력형 성범죄의 대표 사례로는 정치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를 빼놓을 수 없다. 차기 대권주자로까지 거론되던 그가 수행비서에 대한 성폭행으로 정치생명이 완전히 끝났다. 30여 년간 쌓아온 정치적 커리어가 성욕 하나로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이다. "합의에 의한 관계"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범죄로 판단했다. 권력에 취해 상대방의 거부 의사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전형적인 사회적 센서 마비 상태였던 셈이다.
불륜의 함정도 마찬가지다. "한 번만"이라는 유명한 마지막 말과 함께 가정이 박살나고 재산의 절반을 잃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 많이 봐왔다. 특히 요즘은 디지털 흔적이 남아서 은밀함도 보장받지 못한다. 온라인 성범죄 역시 심각한 문제다. 몇 초의 쾌락을 위해 평생 성범죄자 낙인을 받게 되는 경우들 말이다. "클릭 한 번"이 인생 전체를 바꿔버린다.
그리고 도박형 연애라고 부를 수 있는 경우들도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무리한 투자를 하다가 경제적으로 파탄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지만, 실상은 성적 욕망이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킨 결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욕의 경제학적 분석을 해보면 더욱 흥미롭다. 성욕은 단순히 개인적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성산업의 규모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는 거대한 경제 시스템이다. 문제는 이 시장에서 대부분의 남성들이 '호구'가 되기 쉽다는 점이다. 성욕에 사로잡힌 뇌는 비용-편익 분석 능력을 상실한다. 몇 분의 만족을 위해 몇 개월치 월급을 지불하고, 가상의 만남을 위해 현실의 관계를 포기하며, 순간의 쾌락을 위해 장기적 행복을 담보로 잡는다.
측은지심의 진화적 배경과 현대적 딜레마를 살펴보면, 이 감정이 원래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발달시킨 고귀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도우려는 충동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필수적이었다. 특히 여성은 출산과 양육의 과정에서 이 능력이 더욱 발달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이 착한 마음은 종종 악용당한다. 측은지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기 때문에, 경계를 설정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나만 참으면 돼", "이 사람도 사정이 있겠지"라는 생각이 결국 자신을 희생양으로 만든다.
측은지심이 만드는 현대적 비극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독성 관계의 굴레에 빠지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상대방이 변할 것이라는 희망 하나로 학대적인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다. "그 사람도 어릴 때 상처가 있어서 그래"라며 자신을 설득하지만, 결국 함께 무너진다.
직장에서의 과로문제는 심각하다. 동료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계속 일을 떠안다가 번아웃에 빠지는 경우들이다. "나 아니면 누가 하겠어"라는 생각이 자신을 소모품으로 만든다. 가족 간의 경제적 착취도 마찬가지다. 가족이나 친지의 금전적 요구를 거절하지 못해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다. "가족인데 어떻게 모른 척하겠어"라며 무한 ATM이 되어버린다.
특히 사기꾼들의 먹잇감이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각종 사기나 다단계, 종교적 착취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상대방의 절박함이나 선량함을 연기하는 모습에 속아 넘어간다.
측은지심의 역설, 즉 도우려다 망치기라는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측은지심으로 인한 도움이 때로는 상대방에게도 해롭다는 점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조력자 증후군'이 바로 이것이다. 계속해서 도움을 받는 사람은 자립 능력을 잃게 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구원자' 역할에서만 찾게 된다. 결과적으로 양쪽 모두 건강하지 못한 의존 관계에 빠지게 된다.
흥미롭게도 남자의 성욕과 여자의 측은지심이 만나면 더욱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다. 이때 발생하는 피해는 단순한 개인적 손실을 넘어서 사회적 문제로까지 확산된다. 독성 관계의 완벽한 레시피를 보자. 성욕에 눈먼 남자와 측은지심 많은 여자의 조합이다. 남자는 "네가 날 구원해줄 수 있어", "너 없으면 난 정말 망가질 거야"라는 달콤하면서도 절박한 말로 여자의 측은지심을 자극한다. 여자는 "내가 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야", "사랑으로 치유해줄 수 있을 거야"라며 파괴적인 관계에 빠져든다. 이런 관계에서 남자는 자신의 성적 욕구나 감정적 필요를 채우기 위해 여자의 구원자 콤플렉스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경제적 착취의 완벽한 공식도 이와 비슷하다. 로맨스 스캠의 심리학을 보면, 온라인에서 만난 매력적인 남성이 갑작스런 위기 상황을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전형적이다. 병원비가 필요하다거나, 사업자금이 급하다거나, 가족 문제로 곤란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성적 매력을 미끼로 던지고 측은지심을 후크로 사용하는 완벽한 사기 수법이다. 피해자는 "사랑하니까", "이 사람이 정말 힘들어하니까"라는 이유로 자신이 당하고 있는 착취를 정당화한다.
호스트바나 룸살롱의 비즈니스 모델도 같은 원리다. 고객의 성적 환상을 자극하면서 동시에 "언니, 제가 정말 힘들어요"라며 측은지심을 유발하는 전략이다. 많은 여성들이 "이 아이가 정말 어려워서 그런 일을 하는구나"라며 거액을 지출하게 된다.
직장 내 성희롱의 새로운 패턴도 나타나고 있다. 단순한 권력형 성희롱을 넘어서, "나 요즘 정말 힘든데 당신만이 내 마음을 이해해줘"라며 여성 직원의 측은지심을 이용하는 경우다. 이를 감정 조작형 성희롱이라고 부를 수 있다. 피해자는 "상사가 정말 힘들어 보이는데..."라며 불편한 상황을 참게 되고, 가해자는 이를 "합의"로 착각한다.
불륜 관계의 삼각구도를 보면 더욱 복잡하다. 남자는 성적 욕구에 이끌려 외도를 시작하면서 "아내가 날 이해 못해", "너만이 진짜 나를 알아줘"라며 상대방의 측은지심을 자극한다. 상대 여자는 "이 사람이 정말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구나", "내가 위로해줘야겠어"라며 불륜에 깊이 빠져든다. 결과는? 두 가정 모두 파괴되고 아이들까지 피해를 본다.
종교적, 정신적 착취의 메커니즘도 마찬가지다. 사이비 종교나 자기계발 단체에서 교주나 리더가 성적 매력을 바탕으로 신도들의 측은지심을 자극하여 헌신을 유도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나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고통받고 있다"며 자신을 희생자로 포장하면서, 동시에 카리스마와 성적 매력으로 신도들을 현혹한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착취 형태도 등장했다. SNS를 통한 감정 조작이 대표적이다. 매력적인 외모의 인플루언서가 개인적 고민이나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후원을 요청하는 경우다. 팔로워들은 성적 호감과 측은지심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으로 지속적인 후원을 하게 된다. 온라인 게임 내 관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가상현실에서 만난 이성이 현실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게임 아이템이나 현금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다. 가상의 로맨스와 현실의 측은지심이 결합되어 상당한 금전적 피해를 입게 된다.
물론 이 두 가지 특성이 완전히 나쁜 것만은 아니다. 본능의 순기능도 분명히 존재한다. 성욕은 종족 번식과 관계 형성의 동력이고, 측은지심은 사회 결속과 문명 발달의 원동력이다. 문제는 이 둘이 현대 사회의 복잡함을 따라잡지 못할 때 발생한다. 균형 잡기의 기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이런 본능적 충동을 완전히 억압하기보다는 현명하게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성욕의 경우를 보면, 건전한 출구를 찾고, 장기적 관점에서 판단하며,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 핵심이다. '안희정' 사례에서 보듯이,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적 접근은 결코 '합의'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측은지심의 경우에는 경계 설정을 배우고, 진짜 도움과 가짜 도움을 구분하며,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을 구원할 수도 없고, 구원해서도 안 된다는 깨달음이 중요하다.
인생을 망치는 이 두 가지 무기는 사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성욕이 없다면 사랑도 없을 것이고, 측은지심이 없다면 따뜻함도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본능들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들과 현명하게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완벽한 이성적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불완전한 감정적 존재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목표일 것이다.
결국 인생을 망치는 것도 인간이고, 그 망가진 인생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도 인간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 더 현명해지고, 조금 더 성숙해진다. 실패하기 때문에 인간이고, 실패를 딛고 일어서기 때문에 또한 인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