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설거지 봉사>

- 나는 설거지해 주는 남편과 삽니다.

by 김현정

내 남편은 설거지를 잘합니다.

신혼 초부터 남편은 집안일을 잘 도와주었습니다. 식사 준비를 할 때도 무, 당근 같은 재료 썰기는 나보다 더 잘했습니다. 도마 위에서 칼질을 잘하는 남편이 신기하기도 하고 좋은 남편을 두었다,라는 자부심도 있었지요. 양배추도 세프처럼 칼질을 잘해서 샐러드를 만들 때는 남편에게 칼질을 맡겼습니다.

"나보다 더 잘하잖아요."

나는 왠지 미안한 마음에 칭찬을 듬뿍 해줍니다. 그런 나의 칭찬을 남편은 좋아했습니다.

"또 비행기 띄운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남편은 칼질을 잘하는데 음식의 맛을 내지 못합니다. 조미료를 넣어서 조절을 못합니다. 절대로 짤 일은 없어요. 조미료로 맛을 내지 못한다면서 아예 조미료를 넣지 않습니다. 남편이 식재료를 잘 다듬고 잘 씻고 잘 썰어놓으면 내가 나서서 세프처럼 요리를 합니다. 남편은 보조, 나는 세프.


요즘은 남자가 요리를 잘하고 집안일을 잘하면 금상첨화지만 내 신혼 때는 남자가 집안일을 도와주면 흉을 볼 때였습니다. 시아버님도 집안일을 잘 도와주셨고, 요리도 잘하셨다고 합니다. 며느리가 있으니 며느리 앞에는 하지 않으셨지만 남편의 말로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끓여주던 우거지탕이 참 맛있었다고 합니다. 시댁에는 남자가 여자의 일을 도와주는 게 문제는 안 되었습니다.


그렇게 흘러 지금의 시대에는 남자가 집안일을 잘하고 요리도 잘하고 돈도 잘 벌어주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텔레비전 화면에 음식을 잘하는 남편들이 서로 자랑을 하듯 맛있는 레시피를 보여줍니다. 앞치마를 입고 비장하게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레시피를 설명하고, 순서대로 설명을 하면서 음식을 하는 모습이 나오면 내 남편은

"저러니까 남편들이 고생을 한다. 음식까지 잘해야 되나니."


남편은 일찍 일어나는 편입니다. 일어나면 조리대 앞에 가서 물이 빠진 그릇들을 수납장에 차곡차곡 정리를 합니다. 그리고 저녁에 치우지 못한 그릇들을 정리하고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시작합니다.

"한 번 살아보겠다고."

나도 또 웃지요. 마주 보고, 또 그때 그 어르신이 생각나서요.




"한 번 살아보겠다고 나왔는데, 내 틀니를 가져가서 밥을 못 먹는다."

이상하게 그 말이 참 마음에 남아요. 어르신 말씀에 틀린 점이 하나도 없거든요. 한 번 살아보겠다고 집에 안 있고 센터에 나왔는데 내 부분틀니에 금이 있어서 그걸 본 직원이 욕심이 생겨 갖고 갔다는 어르신 말씀이 치매로 하시는 말씀이지만 왠지 논리가 서는 것 같았어요. 아무리 설명하고 설득을 하여도 어르신 마음에는 무서운 공포로 남았나 봐요.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한글 공부, 숫자 공부, 미술 공부를 하는데요. 그 어떤 시간에 어르신이 한 것을 칭찬하지 않고 "어르신, 이걸로 지우시고 다시 하세요." 아마, 마음이 상하셨나 봐요.


어르신의 마음을 돌리려고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하여도 한 달 정도는 더 다니셨는데, 어르신의 마음이 이미 떠나버려서 어르신은 다른 센터로 가셨어요. 남은 어르신의 그 말씀이 왠지 우리 부부의 삶에, 우리 부부의 인생에 "위트"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가끔 그 어르신의 미소도 웃음도 생각나고요.

"한 번 살아보겠다고 나왔는데!"

그 말이 참 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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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살아보겠다고."

설거지를 시작하는 남편 옆에 서성이는 게 왠지 미안해요.

나는 재빨리 사라집니다. 남편이 설거지에 집중할 수 있게요. 그래야 빨리 끝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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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한 숟가락과 달걀 프라이 두 개에 제 마음까지 올려서 남편의 아침식사를 준비합니다.

"와~ 오늘 아침은 근사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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