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가 아니어서 택시를 타고 가야만 되는 헤어숍이 있었다. 몇 년 다녔던 곳이다. 그 원장님을 기억한다. 나의 서글픈 감정을 다독여 주었던 분이다. 나도 몰랐는데 그분 말로는 내가 한 일 년쯤은 말이 없었다고 한다.
유독 그 헤어숍에는 아주 다양한 심리 관련 책들이 많았다. 베스트셀러도 있었고, 소설도 있었다. 예약을 했지만 나는 내 차례가 될 때까지 그 잠깐 동안에 또는 다음 시술을 기다리면서 심리 관련 책들을 주로 읽었다. 클래식 음악에 차분해지고, 또 책을 읽으면서 잠깐이라도 마음을 다스릴 수가 있어서 그 헤어숍을 좋아했었다. 특히 원장님이 특별했었다.
원장님은 매일 고객들을 위해서 커피잔에 끼우는 컵 홀더에 손글씨를 썼었다. 나는 그 짧은 문장이 퍽 마음이 들었다. 나지막한 울림이 있었다. 그래서 그 컵 홀더만 갖고 와서 내 화장대 위에 보기 좋게 올려놓았다. 지금도 있다.
- 본인 생각만 해요. 남들 생각하지 말고
- 어제의 나쁜 일을 생각하느라 행복한 오늘을 망치지 마세요.
- 솔직하게 말해주는 이가 진정한 친구예요.
지금도 때로는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는데 한참 힘들 때는 나를 많이 위로해 주었다.
어느 날 물어보았다.
"왜, 이렇게 책이 많아요? 유독 심리책이 많아요?"
"내가 다 읽은 거예요."
나는 깜짝 놀랐다. 머리를 만지는 분이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줄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대개 여성잡지만 즐비하게 준비되어 있으니, 나는 원장님이 책을 좋아하고 그 책들은 본인이 다 읽은 책이라는 생각을 못했었다. 그날 알게 되었다. 고객들의 상담자는 아니었지만 고객들의 상처, 아픔의 말을 진실로 잘 들어주고 맞장구를 잘 쳐 준 이유를. 그 원장님이 맞장구를 쳐줄 때면 속이 시원했었다. 그녀는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온전히 다 꺼내지는 않았지만 은근슬쩍 힘들었던 일들을 꺼낼 때가 있었다. 아, 그녀도 결혼생활 동안 너무도 힘들었던 적이 있었구나. 그래서 아는구나. 아, 그녀도 직원 문제로 어려움이 있었구나. 그래서 아는구나.
원장님은 나보다 6살 어렸지만 나의 언니 같은 점이 있었다. 멋쟁이였는데 지금도 그녀의 네일이 떠오른다. 마치 가수 화사의 손톱처럼 길게 뾰족하게. 머리를 만지는 원장님인데 그녀는 그 네일이 그녀만의 시그니처라고 했었다. 그 손톱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준다고 했다. 용하게도 그 손톱 때문에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뿐이다. 머리를 감길 때였나? 뒤통수에 살짝 스친 것 같았는데 나중에 그 상처 때문에 항생제를 며칠 먹게 되었다. 좀 고생을 했었다.
그 후로 지금의 헤어숍으로 옮기게 되었지만 그 원장님이 가끔 기억난다. 굳이 이렇게 예쁘게 해 주세요, 그런 말을 안 해도 그녀는 아이롱드라이를 해주었다. 아주 정성을 다해서. 나의 기를 살려주는 엣지 있는 헤어스타일로 하루종일 그리고 그다음 날까지도 행복하게 해주었다. 나는 그 아이롱드라이를 한 헤어스타일이 나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그녀의 네일처럼 나 역시 잠시나마 불안과 긴장의 연속선상에서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선물이 되었다.
그 헤어숍은 간식도 고급스럽게 나왔다. 견과류, 비스킷 등이 맛이 좋았는데 나에게는 한 개씩 더 줄 때도 있었고, 내가 고마워하면 직원들이 한 두 봉지씩 더 넣어주었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 어떤 직원은 내 손에 향이 좋은 마사지 크림으로 마사지도 해주었다. 따로 팁을 준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좋은 말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나에게만 그런 마사지를 해주어서 기분도 좋았고 감사했었다. 힐링이 많이 되었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몇 번 아주 맛있게 먹은 김밥과 유부초밥, 떡볶이를 간식으로 갖고 갔었다. 그리고 스페인 여행에서 기념으로 사 갖고 온 로컬 꿀 1통, 베트남 여행에서 기념으로 사 온 견과류를 선물로 주었다. 직원들에게도 헤어에센스를 1개씩 선물로 주었다.
그녀의 책도 빌려서 읽고 갖다 준 적도 있었는데, 고마운 그녀에게 그녀의 시그니처인 네일한 손톱 때문에 못 간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화사와 같은 네일을 한 손톱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