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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Jul 11. 2024

나는, 55세에 나의 삶을 찾기로 했다

"마시고 차 한 잔 하실래요."


머리에서 발끝까지 완벽 풀 착장을 한 그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처음 본 날, 화이트 바지에 카라가 임팩트한 핑크 재킷을 입었다. 오늘은 작은 깃털이 재킷 전체에 달린(봄을 싣고 온 듯한 옷이다) 꿈을 머금은 듯한 초록빛 트위드를 입고 초록빛 귀걸이, 에르메스 로고가 있는 초록빛 뱅글 팔찌, 들고 다니는 명품 핸드백, 재단 이사장님 포스가 느껴지는 그녀다. 한 틈 빈틈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얼굴 한가득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게 나다. 그녀에게도 그렇게 대했다. 3번 봤다. 매주 금요일 오후 12시 40분에서 14시까지 여성 작가가 들려주는 동시대 미술을 수강하고 있다.


그녀는 나를 백화점의 회원들이 이용하는 라운지에 데리고 갔다. 라운지로 들어가는 입구 주변에는 리빙제품들이 있다. 고급 식기류, 가구들, 조명들, 침구들, 봄이 오기 전 겨울 그 주변을 남편과 천천히 둘러보면서 주말 일상을 보내며 스친 곳이었는데,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쳐 온 곳에 백화점 라운지가 있었다.


그녀가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 탄산수, 몇 봉지의 초콜릿을 갖고 왔다. 갈치색의 봉지는 고급스러워 보였다.

"나이를 물어봐도 돼요?"

"직업이 뭐예요?"

"목소리가 울려요. 성악가 아니에요?"

"두성을 쓰고 있어요."


첫 시간에 내 옆 자리에 앉은 그녀에게 의상이 멋지다고 했었다. 그녀는 내게 뉴욕 여자 같아요,라고 했었다. 그날 나는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카락에 아이롱드라이를 해서 파도가 넘실대듯 물결치는 스타일을 하고 짙은 그레이 투피스형 원피스를 입었다. A라인 원피스였다. 상의 카라에 긴 블랙리본을 해서 여성적인 분위기지만 트렌드 하게 보이기도 했다.(여성브랜드 마네킹에서 그런 비슷한 스타일이 많았다.) 지난겨울에 장만한 새 옷들을 입고 다녔었다. 


이런 칭찬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그녀의 칭찬이 부끄럽지만 솔깃했다.

"아, 아니에요."

멋쩍게 웃으며 나는 손사래를 쳤다. 그녀는 대학에서 강의하는 색채학 교수님이었다. 그래서 카리스마가 느껴졌구나, 나는 국어논술강사라고 소개를 했었다.

그녀는 내 직업보다는 내 나이를 듣고 너무 놀라워했다.

"와~!, 비결이 뭐예요? 나보다 한참 어린 줄 알았는데, 40대 초반으로 알았어요."

역시다. 대체로 사람들의 이런 반응을 나는 살짝 즐긴다. 열심히 성실하게 홈케어를 하고, 자신을 사랑한 나만의 노력은 정직했다. 내 눈에는 그녀도 40대 중반 정도로 보였었다. 그녀도 젊어 보였다.


나는 음치고, 박치예요,라는 나의 말에 그녀는 일대일로 코칭을 받으면 노래를 잘할 수 있게 될 거라고 했다. 벌써 오래전에 내가 꿈꾸고만 있었던 일대일 노래코칭을 스스럼없이 말해주고 있어서, 그날 나는 노래코칭에 대해서, 약간의 자신감이 들었다. 내가 두성을 쓰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확신하듯이 설명해주고 있다.


그렇게 그녀와 차를 마시고,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수업 시간에 나는 그림에 대한 감상을 스스럼없이 던졌다. 홈런이었다. 

그동안 숨기고 살았던 호기심이 빵, 빵, 폭죽처럼 터졌다. 

"바다를 주로 그린 화가는 누구인가요? 알고 싶어요."

"이 화가는 그림값이 얼마인가요? 이 화가는 어떤 평가를 받나요? 화가도 급이 있잖아요. 레오나르도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A급의 A인 것처럼요."

회원들은 

"호기심이 많네. 좋겠다."

질문도 많고 감상도 거침없이 하는 나를 부러워하듯 말했었다.(지금은 그때 즉흥적이었던 나의 감상이 일일이 다 생각이 나지 않지만 회원들은 나의 상상이나 나만의 스토리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나의 반응이 회원들한테는 신선했는 것 같다. 그동안은 주로 강사님의 이야기를 듣는 수업이었다고 한 회원이 말했었다. 강사님도 나의 피드백이 마음에 들었는 것 같았다. 수업에 활기가 생겼다고 했었다.)

"손을 작게 그렸네요. 손을 그리다 말듯 했네요. 왜 그렇게 그렸을까?"

"어, 그러네."

"이 화가는 손을 유독 크게 그렸네요. 이 사람에게는 손이 중요했나 봐요."

"관찰력이 좋다. 우리는 그냥 봤는데."


"와, 이 그림은 사람들의 관음적인 부분을 자극하네요. 연인끼리 왔을 때  보고 싶은데 보기에는 좀 그렇잖아요. 얼굴은 고개를 돌렸는데 눈은 왠지 그쪽으로 살짝 가게 되잖아요. 사람 심리가 그렇잖아요. 예술적으로 편하게 보게 하려면 전시할 때 오드리 헵번 사진 같은, 그런 그림을 옆에 걸면 되겠다. 오드리 헵번 그림을 보는 것처럼 보면서 살짝 보게."(다 같이 한바탕 여고생들처럼 웃었다.)

그때 그녀는 내게 

"큐레이터 같아요. 그림을 잘 팔 것 같아요."

그냥 누드 그림을 보면서 편한 대로 감상을 이야기하듯이 말했는데, 수강 회원들은 솔깃해하고 내 말에 집중해 주고, 또 생각하지도 못했던 칭찬까지, 뭔가 모를 자신감이 몽글몽글, 맛있는 삶은 감자처럼 행복해졌다.


칭찬을 많이 받았던, 동시대 미술, 현대미술사 수업이었다. 칭찬은 자신감의 물을 주었고, 미술 작품은 나의 뇌를 활성화시켰다. 기다리는 수업이 되었다. 내 예상대로 그림은, 미술은 나를 치유해주고 있었다.


나는 미술 세계로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주간보호센터 무덤에서 미라처럼 잠자고 있었던 죽은 나의 뇌가 살아나서 꿈틀거렸다. 


강사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나라면 멘트를 이렇게 시작했을 것 같다. 나라면 이렇게 기승전결 해서 강의를 할 것 같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의 나로 돌아가 상상을 해본다. 나는 가르치는 게 좋았었다. 학생들의 글이 달라지는 게 좋았었다. 


지난 4년 내내 탈출을 꿈꾸었다. 새가 되어 훨훨 멀리멀리, 이혼을 꿈꾸고, 자유를 찾은 나를 꿈꾸었다. 남편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환경도, 사람도, 시간도, 공간도, 정신도.

남편을 만나기 전의 나로 돌아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누구의 구속도 간섭도 받지 않는 황야로 나아가고 싶었다. 


이 넓은 우주 안에, 하늘 아래, 이 땅에 홀로, 나만 있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나는 혼자다. 나의 안전, 나의 꿈, 내가 책임져야 한다. 내가 나를 지켜야 한다. 

이곳에서 벗어나야겠다. 환경과 사람을 바꾸어야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다시 시작할 용기가 생겼다.


2023년 10월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복잡한 마음을 억누른 채, 벼랑 끝에서 퇴사를 결심했었다. 12월에 퇴사가 마무리되었다.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예술가로 살 거예요." 나도 모르겠다. 무슨 근거로 내가 예술가로 살 거라고 말했는지, 앞 길을 모르지만, 나는 예술가로 살 거라는 생각이 그냥 들었다. 


색채학 교수님의 성악가인 줄 알았다, 이후로도 나는 이런 말들을 들었다. 백화점의 여성브랜드에서 "디자이너세요?" 디자이너 같아요." (작년에 백화점에서 50% 세일할 때 구입한 핑크 슬랙스 정장 한 벌을 입었다. 안에도 핑크색 스트라이프 셔츠를 입었다. 그리고 최근의 트렌드인 연보랏빛이 감도는 방도스카프를 목에 둘렀다. 신발은 6cm 굽의 화이트 옥스포드화를 신었다.) 나는 이 옷과 저 옷의 스타일을 이렇게 해서 입으면 될 것 같다, 이 옷은 이렇게 입어도 될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스타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직원은 자꾸만 내가 디자이너가 아니냐고 물었다. 또 그 후에도 화요일반 라인댄스 강사 선생님은(대학에서 무용을 가르치시는 교수님이시다.) 나에게 몇 살이냐고 물으시고, 나이를 듣고는 최강 동안이라고 깜짝 놀라셨다. 그리고 나에게 직업이 뭐예요? 미술을 전공하시는 분 같다,는 말씀도 하셨다. 

전시해설사 도슨트 양성 수업에서도 몇 분이 "예술가 같다. 분위기가 예술가다.", "30대인 줄 알았다.", "진짜 한 턱 내야겠다." 


전시해설사 도슨트 양성 첫 수업 때, 도슨트 협회의 사무국장이시고, 강사로 오신 선생님은(전직 도슨트 님이기도 하시다.) 나에게 교재에 있는 도슨트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인터뷰한 간단한 내용을 읽어보라고 하셨다. 나는 예전에 동화구연 수료를 위해 2년 남짓 수강을 했었다.(학생들에게 재미있고 설득적으로 전달하고 싶어서 동화구연을 배웠다.) 진행자 같이 편안하게 악센트를 줄 때는 주면서 편안하게 읽었다. 강사 선생님은 직업적인 도슨트 같다고 칭찬해 주셨다. 마음이 왠지 벅찼다. 


그다음 수업에서는 현직 도슨트 님이 강사로 오셨다. 수업이 끝난 후, 질문을 하라고 하셨다. 

나는 두 가지 질문이 있다고 하였다. 하나는 강사님이 생각하시는 현재의 한국의 예술과 일본의 예술에 대한 동향에 대해서, 또 다른 하나는 대상이 다른 관람객에게 전시 설명을 처음 시작할 때 어떻게 몰입하게 하시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간단하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하였다. 그 이후의 수업에서도 나는 늘 질문을 했다. 수강생들은 내가 하는 질문에 대해 이런 말들을 해주었다. 질문의 내용을 보면 미술에 대해 뭔가 많이 아는 사람 같다. 내게는 칭찬으로 들렸다. 


나는 나에게 시간의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동안 너무 쫓기듯이 바쁘게 살아왔었다.) 나를 알아가기 위해서 나에게 기회를 많이 주고 싶었다. 

몇 달, 나를 알아가는 그 기간에 나를 만난 사람들에게 들은 말들은 나를 설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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