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볼 일 없던 내가, 별을 본 순간

2. 그녀와 그

by 달리면서

때로는 나쁘지만, 때때로 죽이 잘 맞는 그녀와 그는 무늬만 부부다. 그녀는 그보다 해로는 9살이 많다.

그녀는 딸부잣집, 나의 아버지 기준으로 많지 않은 다섯. 집안에서는 나름 영특한, 그래서 심부름시키기 딱 좋은 아이로 낙점된 셋째다. 초등학교 4학년 짜리 책가방 속 고사리 손으로 말린 지네를 꺼내 오일장에 팔아본 그녀다. 현재 여든여섯의 나의 아버지는 고아로 자라 멋모르고 노래부르시 듯 나온 후렴구 정도였을 게다. 양보는 미덕이라. 내 것 먼저 챙기는 건 양심이 없는 거라. 착하고 예의 바르게 인사 잘하고 바르게 크거라 하고.

아버지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전학 이후, 올망졸망한 그녀들 속 나의 존재감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래야 그나마 평화로운 밥상을 마주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셈법을 빠르게 익힌 듯하다. 그때의 나는 아버지의 기준에 비춰 반사회적 아이가 될 수는 없었다.

1986년생 그는 1남1녀 중 둘째다. ESTP의 그의 삶에서 그녀는 과잉행동장애나 ADHD를 의심해 본다. 여기쯤 읽은 혹자는 쯧쯧 혀를 끌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나의 심정도 그러하다 후~.

나와 모든 면에서 정반대인 그다. 미덥잖은 천덕꾸리기 아들을 번 돈만큼 평가하겠다는 그의 아버지. 부창부수 그의 어머니는 약아야 잘 산다. 한 대 맞으면 두 대 때리라 가르치셨다고.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미담이 꼬꼬무다. 각자가 지향하는 바대로 사랑과 아낌은 사치이기 때문에 시장에 가서 물건을 싸게 살 노하우를 전수하기 바쁘다. 그 외의 대화는 침묵이다. 물론 모든 재산의 명의는 그로 하라는 단속도 잊지 않으신다.

그렇게 자란 그녀와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산다. 그녀는 엄마인지 아내인지 모를 어쩌면 엄마보다 더한 모성애로 살아왔기에 잠시 쉼을 선언한다. 상 이에 질 수 없는, 늘 부족하다는 그도 이제껏 참아온 양 따가운 말을 쏟아낸다. 돈 좀 아껴 써. 돈은 나 혼자 벌었다. 남들은 눈물 젖은 빵이라지만, 나는 눈물로 반죽한 빵을 먹었다. 그의 무소 논리는 그러하다. 세상의 가장 무서운 논리는 억지 아닐까? 그래 살아본 만큼만 얘기하면 그렇다고 받아주자. 그런 그를 향한 내 어깨는 힘껏 굽어있고, 마음은 요즘 날씨만큼이나 공허하다. 10여 년의 시간과 세월, 미분의 상황들과 적분의 감각으로 항상 옳음이 없는 부부의 세계에서 침잠해 본다. 어디서부터 어긋난 걸까? 거꾸로 거꾸로 OX 치며 살다 보면 그곳에서는 훔훔한 나를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