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뉴욕 세계 박람회. 코닥은 이 거대한 축제의 현장에서 하나의 선언을 했다. 1달러짜리 카메라로 시작된 혁명이 이제 누구나 자신의 삶을 사진으로 기록할 수 있는 '모두의 시대'를 열었다고. 그 전까지 사진은 전문가의 영역이었다. 무거운 장비, 고가의 재료, 위험한 화학 약품, 그리고 숙련된 기술. 이 모든 조건이 갖춰져야 겨우 한 장의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코닥은 그 복잡한 과정을 단돈 1달러짜리 검은 상자 하나로 압축했다. "You press the button, we do the rest." 버튼만 누르면 나머지는 코닥이 다 알아서 했다.
예술가의 도구가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용품이 된 순간이었다. 이제 카메라는 어머니가 아이를 찍고,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가족사진을 남기고, 연인이 데이트 가방에 챙겨가는 물건이 되었다. 사진은 더 이상 특별한 날의 행사가 아니었다. 그냥 일상이 되었다. 그것이 진정한 낭만의 시작이었다. 박물관은 비싼 카메라를 박제한다. 라이카, 롤라이플렉스, 하셀블라드. 금속 바디에 정교한 렌즈, 장인의 손길이 깃든 명기들은 유리장 안에서 조명을 받으며 신전처럼 빛난다. 관람객들은 그 화려함에 감탄하고, 그것은 넘볼 수 없는 역사가 된다.
반면 1달러짜리 플라스틱 카메라들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서랍 구석으로 밀려나고, 재활용 쓰레기봉투에 담기며, 먼지 쌓인 창고에서 잊힌다. 용도가 다하면 가차 없이 버려진다. 하지만 이 흔해 빠진 플라스틱 카메라들이야말로 진짜 낭만의 기록자들이 아니었을까. 뒤뚱거리는 아이의 첫걸음, 수줍게 웃던 연인의 얼굴, 크리스마스트리 앞 가족의 웃음소리. 박물관 유리장 너머의 박제된 예술이 아니라 우리 집 식탁 위, 골목길 햇살, 소풍 가는 길에 머물던 진짜 삶이 거기 있었다.
나는 지난 20년 동안 이 작고 보잘것없는 카메라들을 모아 왔다. 우연한 기회로 시작해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모인 것이 어느덧 1,200대를 넘어섰다. 예지동 카메라 골목, 런던 벼룩시장, 뉴욕의 빈티지 숍, 이베이 경매까지 닥치는 대로 뒤졌다. 멀쩡한 것도, 고장 난 것도 가리지 않고 성실히 모았다. 수백 대가 될 때까지도 내가 왜 모으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이제는 안다. 이것들이 우리 문명의 가장 정직한 편린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박물관이 보존하는 역사는 대개 권력자와 승자, 혹은 예술가의 것이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들이 식탁 위에서 찍은 사진, 아버지가 소풍날 남긴 기록은 누가 기억해 주는가. 1달러짜리 플라스틱 카메라가 사라지면 그 소박한 기억들도 함께 소멸할지 모른다는 강박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나는 지금 문명의 성실한 관찰자로서 그 조각들을 기록하고 기억하려 한다. 1,200개의 서로 다른 디자인과 1,200개의 각기 다른 셔터 소리. 이것은 단순한 기계의 집합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1,200개 일상의 증거다.
당신도 카메라 한 개쯤은 가져본 적 있지 않은가. 어머니 서랍 속에, 아버지 책장 모퉁이에, 할머니 장롱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을 그 작은 상자 말이다. 당신의 첫걸음과 연인의 미소, 가족의 시간을 지켜보았던 그 카메라. 이제 그 1,200개의 문을 하나씩 열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