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용 카메라가 교과서가 되었다
대학 2학년이었다. 사진학 수업에서 수동카메라로 과제를 하다 필름을 몇 번 날려먹고 나서 자동카메라를 하나 샀다. 젬뱅 같았던 수동카메라 기술에 대한 보험용이었다. 그것이 Canon Autoboy 2 였다. 수십 년이 흘러 나는 제품디자인을 강의하는 선생이 되어서 교재 삼아 오토보이 시리즈를 사게 되었다. 오토보이 1, 2, 3을 나란히 놓고 나서야 보였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까지 일본 산업디자인의 성장기가 그대로 보인다. Autoboy 1은 각지고 투박하다. AF 모듈을 밀어 넣느라 기능이 형태를 지배하던 시대. 루이스 설리반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가 문자 그대로 구현된 제품이다. Autoboy 2는 조금 다듬어졌다. 기술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고, 파인더 안에 픽토그램으로 촬영 정보를 표시하는 등 인터페이스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Autoboy 3에 이르러 캐논은 비로소 둥글어진다.
1986년이다. 바로 그해 캐논은 베를린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공기역학을 공부한 디자이너 루이지 콜라니(Luigi Colani)와 협업해 T90을 내놓는다. 가우디 이후 가장 독보적인 곡선의 디자이너, 자동차에서 비행기까지 자연의 형태를 산업에 옮긴 사람이다. 그의 바이오다이나믹(biodynamic) 철학에 의하면 카메라는 인간의 손과 눈 사이에 있는 것이니 양쪽 모두 에르고노믹스(인간공학)가 있어야 한다는 것. 이 철학을 캐논 경영진에 2년간 설파한 끝에 탄생한 카메라다. T90은 캐논 카메라 역사를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분수령이 되었다. 그런 철학이 가장 대중적인 자동카메라 Autoboy 3까지 동시에 흘러들어간 해가 1986년이다. 난 그해 대학에 들어가 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했다.
캐논은 오랫동안 라이카와 콘탁스 같은 독일 카메라를 베끼며 성장했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을 것이다 — 우리는 무엇을 만드는가. 콜라니를 데려온 것도, 파격적인 T90을 내놓은 것도, 그 고민의 흔적이다. Autoboy 3의 둥근 곡선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중용 자동카메라 렌즈 둘레에 기능과 아무 상관이 없는 빨간 링을 두른 것도. 그 레드 링은 훗날 캐논 프리미엄 렌즈 L 시리즈의 상징이 된다. 이처럼 아이덴티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단순히 디자인을 바꾸는 게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만드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시대의 흔적이다.
하지만 이 카메라의 진짜 의미는 따로 있다. 그 모든 고민과 철학이 결국 도달한 곳은 의외로 단순하다. 셔터만 누르면 된다는 것. 디자인의 민주화가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카메라를 사진관 아저씨의 손에서 엄마의 손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노출도 초점도 몰라도 된다. 모두의 어머니들이 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게 되었다.
Canon Autoboy 2 (AF35M II) | 1983 | Japan
LENS: Canon Lens 38mm f/2.8 (4군 4매)
FILM: 35mm (135 format)
NOTE: Red ring lens identity — first appeared on Autoboy series, later became Canon L-series signature. Licensed production in Korea as "Geumseong Canon" (1987).
FROM: 청계천 카메라 골목, 서울 (예장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