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ympus µ[mju:]

내 손안에서 사라지는 카메라

by 박물지 선생

사무실 옷걸이에 늘 카메라가 하나 걸려 있었다. 코트도 아니고, 가방도 아니고. 은색 카메라가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대학 시절 내가 일하던 은사님의 디자인 사무실의 생경한 풍경이다. 필름도 늘 들어 있었고, 필요하면 누구나 집어 들었다. 말로는 업무 기록용이었지만 연구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을 핑계 삼아 '셀풍경' — 자신이 멋지게 일하는 셀프 카메라 사진 — 을 찍어댔다. 사실 찍으면 현상소 가고 사진 보고, 필름 보고, 추가 인화 하던 시절이라 찍긴 했는데 기억도 안 나는 사진들이 수두룩하다.


그 카메라가 Olympus µ[mju:]였다. 아마도 디자인 전공 교수님이시니 그 은색의 오묘한 디자인에 매료되어 사셨을 것이다. 그래도 난 니콘이나 콘탁스 같은 무지막지한 카메라에 마음을 뺏긴 터라 교수님의 은색 카메라는 늘 소 지나가는 닭 보듯 했다. 80년대 이후까지도 콤팩트 카메라 시장은 박스 형태 일색이었다. 필름 매거진이 어디고 렌즈통이 어디서 나오느냐에 따라 외형이 결정되는, 기능이 형태를 지배하는 시대였다. 루이스 설리반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 그대로 진솔하게 형태를 구현하던 시절, 카메라는 그저 기계였고, 그 기계의 기능은 오직 훌륭한 박스가 진리였던 시절이었다.



그 끝자락에 올림푸스의 스즈키 타츠야(鈴木達哉)라는 사람이 그 박스 형태를 의심하고 거부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직선의 추방이었고 본체 전체를 복곡면(compound curve)으로 감쌌다. 위에서 봐도 곡선, 옆에서 봐도 곡선, 자동차도 직선이 있던 시절에 그의 카메라 디자인은 어느 각도에서도 직선이 없었다. 스즈키는 후에 이렇게 회고했다. 빛을 일직선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광학 기기의 내부 구조는 직각일 때 가장 효율적일 수밖에 없는데, '둥글고 지물지물'한 형태를 구현한다는 것은 참으로 곤란한 일이었다고. 그는 결국 외형을 먼저 유선형으로 확정하고 기계 내부를 그 곡면에 맞춰 채워 넣는 방식을 선택했다. 당시 설계 표준으로는 극도로 비효율적인 역설계였다.


그의 앞에서 공학의 당위는 무너져 내렸고 손바닥의 아치(arch)와 완벽히 동기화되는 낯선 표정의 카메라가 등장했다. 카메라사를 통틀어 최초의 전체 복곡면 몸체를 가진 카메라가 만들어졌고 그 카메라는 손에 쥐면 빈틈없이 손바닥에 달라붙는다.



이 디자인의 진짜 난제는 슬라이딩 커버였다. 곡면 위에서 움직이는 렌즈 커버 슬라이더가 틈새 없이 본체와 밀착되면서도 경쾌한 반동을 줘야만 했다. 파도처럼 휜 몸체 위에서 다른 곡면이 정밀하게 미끄러져야 한다. 미세한 곡률 차이가 유격을 만들고, 유격은 싸구려의 느낌을 만들기 쉽지만 스즈키는 수백 번의 금형 수정을 거치며 이를 극복해 냈다. 당시 일본 사출 금형 기술이 도달할 수 있는 끝을 보여준 결과였다. 보이지 않는 정밀함을 위한 보이지 않는 사투였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뮤의 커버를 닫으면 뮤는 사라진다. 렌즈도, 버튼도, 돌출부도 없다. 손 안에 쥔 것이 카메라인지 지갑인지 모를 정도로. 카메라를 카메라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것 — 이 '사라짐'이 스즈키가 만든 새로운 디자인 언어였다. 뮤II에서 정점을 찍은 샴페인 골드 도료도 같은 맥락이다. 플라스틱에 금속의 질감을 입혔다. 빛의 굴절에 따라 복곡면의 입체감이 달라진다. 각도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일본에서 뮤가 단순한 보급기가 아니라 정교한 공예품으로 인식되는 것은 이 오묘한 컬러 전략도 한몫했다. 뮤가 일본의 국민 카메라가 된 것은 그냥 얻어진 게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젝트를 하며 나도 업무를 기록할 일이 종종 생겼다. 학창 시절 지도 교수님의 뮤를 떠올리며 나는 검은색 뮤를 샀다. 생각보다 빨리 그 기능을 디지털 카메라와 핸드폰에게 내어주었지만 이 검정 뮤는 지금도 가벼운 답사길이나 긴박하지 않은 출장길에 종종 동행한다. 그리고 그 은색의 뮤는 은사님 책장에서 장식물로 박제가 되어 있다. 그땐 몰랐다 이 작은 카메라에 디자이너의 치열한 디자인 서사가 담긴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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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ympus µ[mju:] | 1991 | JapanLENS: Olympus Lens 35mm f/3.5FILM: 35mm (135 format)NOTE: First full compound-curve body in compact camera history. Sold 5 million units. Designed by Tatsuya Suzuki, chief designer at Olympus.FROM: 남대문 카메라 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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