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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27,2022

by 한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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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 장고가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억지로 끌어안거나 싫어하는 부위를 만지면 어김없이 ‘야옹’ 하고 호통을 치는 녀석인데 어제는 텅 빈 눈으로 저항도 하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 평소에 수다가 많은 편이어서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너무도 이상했다. 근래 들어 밤새 더 심해진 울음소리에 잠도 못 자고 힘들었는데, 마치 인어공주처럼 목소리를 잃은 듯한 장고의 모습은 더 심해진 울음소리보다 몇 천배는 걱정스럽고 힘들었다. 그렇게 부동자세로 멍 하게 있는 장고의 모습에 내 모든 마음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2007년 늦겨울과 이른 봄 사이 아직은 바닥에 살얼음이 얼어있고 매서운 추위가 한창이던 어느 날 밤 골목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앳된 얼굴에 배가 불룩했던 진한 고동색의 줄무늬를 가진 어미 고양이 연이. 연이는 다행히도 고양이에 대한 경험이 있던 친구의 집에서 무사히 건강한 새끼 세 마리를 출산했다. 그리고는 젖을 먹일 만큼 먹이더니 날이 따듯해질 때쯤 새끼들을 두고 다시 거리로 나갔다. 그리고 연이를 가장 쏙 빼닮은 첫째 새끼 고양이 장고가, 나와 함께 살게 되었다. 고양이에 대해 무지했고, 반려묘로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정보가 정말 없던 시절 그렇게 서투른 동거가 시작되었다. 한참 놀러 다니기 좋아했던 어린 나는 장고를 방안에 혼자 두는 일이 잦았다. 머릿속은 늘 새로운 일로 가득했고 세상은 새롭고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해서 집에서는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자연히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 집에는 장고가 혼자 있었다.

그리고 몇 년 뒤 세상 아무것에서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었고 사람도 만나고 싶지 않고 오로지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날들 속에서 항상 집에 있었던 장고는 옆에서 묵묵히 위로했다. 조용히 무릎 위에 올라와 그릉그릉 소리로 안정시켜 주고, 방황하는 나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주었다. 눈빛으로 다정함을 건네는 장고와 한참을 불 꺼진 방에서 부둥켜안고 울었다. 이런 위로에도 불구하고 다음날이 되면 눈뜨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에도 장고는 옆에 와서 등을 맞대고 체온을 나누어주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이 녀석을 두고 절대 이곳을 떠날 수가 없다는 사실을, 내 얼굴도 보지 않고 그저 가만- 등을 맞대는 것만으로도 장고가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모두 다 느껴졌다. 함께 살아보자고, 그냥 툭. 하고 우리는 살아가는 거라고 무심하지만 따듯하게 다독였다.

이런 일들을 알턱이 없는 몇몇 주변 사람들은 고양이이다. 슬슬 마음을 정리해라. 다른 동물을 키워보는 건 어떻겠냐 하지만, 그냥 고양이가 아니다. 은인이다. 장고는. 그리고 이제 노묘가 되었다. 20년을 넘게 사는 고양이도 요새는 꽤 있다지만 노화는 막을 수 없다. 전처럼 뛰어놀 수 없고 손을 건네주는 것도 힘들어질 것이다. 어제처럼 가끔은 나를 잊을 것이고, 때때로 눈이 텅 비어 그저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장고에게 내게 받았던 것들을 모두 다 돌려주어야 한다. 그의 앞에서 죽음을 운운했던 날들이 너무도 미안하다면, 잘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간의 것들을 갚아야겠지. 그러려면 더 더 더 오래 나와 살아주어야 하는데...... 다 돌려주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 것 같다.

그러니 장고야. 조금만 더, 조금 더 오래 나랑 살아주라.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맙고 사랑한다. 우리 장고. 오늘은 하루 종일 나랑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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