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5.2025
11월 1일이 되면 나의 일 년 중 가장 큰 호들갑이 시작된다.
의자를 밟고 올라가 구석에 박혀있던 이름 모를 상자 몇 개와 붉은 부직포 가방을 꺼낸다.
먼지가 부옇게 쌓여있는 상자 하나를 열면. 반짝이 가루를 떨어뜨리는 오너먼트가.
또 다른 상자를 열면 진초록줄의 똘똘 말려있는 전구가, 또 다른 상자에서는 조악한 산타가 있는 오르골이 나온다. 그리고 붉은 부직포 가방에서는 조화로 된 조립식 나무가 몸을 홀쭉하게 만들고 기다리고 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이 홀쭉한 나무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먼저 받침다리를 펼치고 아랫부분과 윗부분을 조립한 뒤, 풍성해 보이도록 빈틈없이 잎사귀를 펼쳐주면, 소나무잎과 전나무잎이 섞인 인조나무가 완성된다. 그 위로 전구를 가지 사이사이로 넣어 감아주고, 색이나 모양이 서로 겹치지 않도록 장식을 걸어주면, 크리스마스트리가 완성된다.
종교도 없이 크리스마스에 진심인 나는, 언젠가 내 키를 훌쩍 넘어 천장에 닿을 정도의 큰 트리를 집에 놓고 싶은 꿈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돈이 없어 빚은 지고 살아도, 겨울만 되면 집에는 항상 트리가 있었고, 엄마는 12월 내내 엘피로 똑순이 캐롤을 틀어주었다. 크리스마스트리는 꼭 온 가족이 모여 같이 만들었고 트리의 맨 꼭대기에 별을 다는 일은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었다. 다 완성하고 나면 집안의 모든 불을 끄고,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을 했고 손뼉 치며 좋아했던 유년 시절의 기억과 감정은 아직도 습관처럼 남아있다.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되고 본가에서 나와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도 이 의식? 은 계속되어야 했기에, 지난 주말 짝꿍과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다. 유튜브로 캐롤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두고 점등식을 하고 박수도 치고, 음악에 맞춰 어설픈 춤도 함께 췄다. 트리를 장식하는 일이 어색한 짝꿍은 연신 손과 옷 이마에 붙은 반짝이를 떼어내고, 나는 익숙한 듯 반짝거리는 트리를 보고 앉아있는데.
처음으로.
전혀 설레거나 기쁘지 않았다.
독립한 지는 꽤 오래되었기에 트리 만드는 멤버가 바뀌어서도 아니고, 트리는 더 예뻐졌고,
짝꿍과 춤추는 것도 재밌었고, 맛있는 초콜릿이 들어있는 귀여운 어드벤트 캘린더, 올라프 인형과 눈 내리는 오르골도 있는데...
이상하게 슬프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슬픔에 바닥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지나가는 것. 흘러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시간이 흐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그것이 때로 야속하고 서글프긴 해도 두려운 적은 없었는데,
나는 분명 무서워하고 있었다.
이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올해는 끝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새로운 해가 시작될 것이다.
이토록 준비 안 된 새해맞이가 있었는가, (나는 80% 이상의 순도 높은 J다)
한 해가 다 지나도록, 나는 여전히 1년 전 아직도 그 엄동설한의 겨울 한가운데 멈춰있고, 그곳에서 한 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렇게 날려버린 한 해를 추모할 새도 없이 새로운 해를 맞이해야 한다니, 이 새해마저 죽여버릴까 두렵고 무섭다.
하지만 두려운 건 두려운 거고, 무서운 건 무서운 거고, 그뿐이다.
그것들은 실체도 없고 힘도 없다. 실체와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의 의지와 행동뿐. 그리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고 무엇이든 바꿀 수 있는 건 ‘나’ 밖에 없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해 앞에 이번에는 다를 수 있을 거라는 무모한 다짐을 스스로 해야만 한다.
알고 있다.
알고 있어서 괴롭고. 알면서도 알면서도...
그래도.
무모해 지지지 않도록, 나보다 더 큰 내가 해낼 것이라고, 내년의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 때까지 믿고 걸음을 떼야한다.
두려운 건 두려운 거고.
올해의 추모는 짧게.
내년의 환영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