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바티칸의 음모
알 파치노, 다이앤 키튼, 탈리아 샤이어 등 출연자들의 계약이 잇따라 체결되었다. 알 파치노의 개런티는 1편의 35,000 달러에 비할 수 없이 증가하여 800만 달러를 받고 출연에 동의했다.
톰 헤이건 역할의 로버트 듀발은 600만 달러 이상의 개런티를 요구하여 출연이 무산되어 죽은 것으로 처리하고 대신에 그와 비슷한 역할을 맡을 배우로 조지 해밀턴(George Hamilton)을 출연시켜 패밀리의 고문 변호사 B.J 해리슨 역할을 맡겼다.
마이클의 장성한 딸 메리 역할을 맡을 배우로 내정된 배우는 원래 줄리아 로버츠(Julia Roberts)였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스케줄과 조정하기가 어려워 하차하고 말았고, 엉뚱하게 마돈나가 메리 역할을 하겠다는 제의가 들어왔지만 코플라 감독은 너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정중하게 거절했다.
오랜 진통 끝에 코플라의 딸 소피아가 메리 역할로 낙점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연기력도 연기력이지만 여동생 탈리아 샤이어에 이어 딸까지 등장시킨다는 주변의 비판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빈센트 역할을 맡은 배우로 처음 물망에 오른 배우는 알렉 볼드윈(Alec Baldwin)이었지만 최종적으로 선정된 사람은 앤디 가르시아(Andy Garcia)였다.
빈센트는 연회장에서 마이클과의 인터뷰를 희망하던 여기자 그레이스 해밀턴과 동침하던 중에 조지 자자가 보낸 괴한에게 습격을 받았지만 괴한을 죽이고 위기를 벗어난다.
그레이스 해밀턴 역을 맡은 배우는 브리짓 폰다(Bridget Fonda)이다.
연기 경력이 일천하여 단역 출연에 그쳤지만 그녀의 출신 배경은 어마어마하다. 할아버지가 헨리 폰다, 아버지는 피터 폰다, 이모는 제인 폰다이다.
헨리 폰다를 모른다면...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지만...
폰다 가족이 받은 아카데미 주연상만 3개나 된다. 헨리 폰다 1개, 제인 폰다가 2개이다.
원래 브리짓 폰다가 맡은 역할은 단순한 기자 신분이 아니라 조니 폰테인과의 애인 관계 혹은 마이클의 아들 앤소니의 여자 친구로 나오는 뉴스 리포트 역할을 맡을 예정이었다.
그리고 원래의 대본은 빈센트가 습격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앤소니와 동침하다가 조지 자자가 보낸 킬러에게 습격을 당한다는 설정이었다.
길데이 대주교(Archbishop Gilday)와 만난 마이클은 증발해 버린 바티칸 은행의 자금 7억 6,900만 달러를 해결해 주는 대가로, 바티칸이 보유한 부동산 전문 기업 이모빌리아레의 지분 25%를 인수하여 합법적인 사업가로 변신을 시도하기 위해 흥정을 한다.
이곳은 성 패트릭 성당이다. (St Patrick's Cathedral, 5th Avenue (btw 50th and 51st Street) Manhattan)
대주교와의 대화 중에 금액을 흥정하다가 멋진 대사가 나온다.
“Friendship and money … Oil and water”
위 사진에서 마이클 뒤에 앉아있는 사람은 마이클의 변호사 해리슨(B.J. Harrison)이다. 1970년대 톰 하겐으로부터 역할을 이어받은 마이클 패밀리의 법률 및 재정 고문이다.
하지만 그는 시칠리아 출신이 아니었고 톰 하겐처럼 가족관계도 없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고문, 마피아 조직의 콘실리에리’(Consigliere)의 역할은 아니었다. 이 영화에서 조직의 콘실리에리는 오히려 마이클의 여동생 코니가 맡고 있는 듯하다.
영화에서 톰 하겐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고 있기 때문에 그가 언제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아들 앤드류(Andrew, John Savage)가 신부 서품을 받기 전 대략 1979년 경이 었던 것 같다.
지분 인수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마피아 전적 때문에 곤란을 겪은 마이클은 알토벨로를 만나 위원회에 관해 의견을 나눈다. 마이클이 ‘대부 2’에 말한 명대사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Keep your friends close, but your enemies closer”…의 실천이다.
두 사람이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곳은 뉴욕 맨해튼(152 West 44th Street, Manhattan)에 있는 BBQ 점에서 촬영한 것이다. 아직도 운영 중이다.
바티칸에 도착한 마이클은 다시 한번 길데이 주교를 만나고, 또 이모빌리아레 이사회에도 참석을 하지만 이들은 뉴욕 주주총회에서 결의한 내용을 교황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라테라노 조약을 내세워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교황은 위중한 상태…
라테라노 조약(Patti lateranensi)은 1929년 베니토 무솔리니와 교황 비오 11세가 맺은 조약을 말한다. 조약의 내용은 바티칸의 독립과 교황령의 재산 문제에 관한 것이 주요 골자이다.
교황은 신생 이탈리아 왕국을 승인해 주고 기존 교황령의 영토를 포기하는 대신 이탈리아 정부는 바티칸 및 라테라노 궁전과 그 부속 토지를 포함하는 독립국가 – 바티칸 시국을 인정하며 그 대가로 보상금 7억 5천만 리라를 일시금으로 연간 5% 수익을 보장하는 이탈리아 공채 10억 리라를 받고 향후 모든 세금을 면제받는 조건이었다.
1984년 조약이 일부 수정되어 이탈리아 측에서 바티칸에 지급하던 보조금이 폐지되고, 개인이 직접 납부하는 종교세로 대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