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큰형의 사생아 빈센트
<대부 1, 1972년>과 <대부 2, 1974년>가 연이어 히트하자 파라마운트 픽처스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대부 3>을 만들고 싶어 안달이었지만 감독 프란시스 코플라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이미 1,2편을 통해 꼴레오네 가문의 모든 이야기가 끝났다고 여겼던 것이다.
스튜디오의 사장 마이클 아이스너(Michael Eisner)는 작가를 고용하여 마피아 조직이 CIA와 협력하여 코스타리카 독재자를 공격하고 마이클의 아들 앤소니가 조직을 물려받는 것으로 스토리를 만들기도 했다.
결국 1978년 마리오 푸조가 25만 달러를 받고 스토리 트리트먼트(story treatment, 시놉시스 다음 단계이자 시나리오의 전 단계) 완성하자 딘 리스너(Dean Riesner)가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시나리오의 구체적 내용은 마이클의 아들 앤소니가 CIA 요원으로 성장한 후 남미의 코스타리카 독재자를 처단하는데 마피아 패밀리를 동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앤소니 역할은 존 트라볼타(John Travolta)가 내정되기도 했지만 제작은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1985년, 애틀랜틱 시티에서 꼴레오네 패밀리와 아일랜드 마피아 간의 전쟁을 다룬 내용으로 시나리오가 만들어졌으나 최종적으로 부결되고 말았다.
그리고 영화 제작 검토 단계에서 전편 영화의 출연진들 대다수가 높은 개런티를 요구하고 있었고 파라마운트는 프란시스 코플라가 감독을 맡지 않으면 제작을 할 수 없다는 원칙을 정해 그동안 논의되던 3편 제작은 모두 중단되었다.
결국 1988년, 코플라 감독은 개인적인 재정위기를 벗어나고자 개런티 600만 달러와 수익의 일부를 받는 조건으로 <대부 3>의 감독과 각색을 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드디어 1989년 5월, 최종 초안이 완성되었다.
연회장으로 뜻밖의 인물이 등장한다.
마이클의 큰형 소니의 내연녀 루씨(Lucy Mancini)가 사생아인 아들 빈센트(Vincent)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 빈센트는 이미 31세의 청년이었고 뉴욕의 한 지역을 관리하고 있었다.
연회장에는 빈센트와 뉴욕의 같은 구역에서 사사건건 부딪히고 있던 조이 자자(Joey Zasa)와 그의 심복 앤소니 스키길라(Anthony Squigliaro)도 참석하고 있었다.
조 만테냐(Joe Mantegna)가 연기한 조이 자자(Joey Zasa) 캐릭터는 여러 명의 실제 마피아를 복합적으로 만든 인물이다. '조이 자자'라는 이름은 프란시스 코플라 감독이 작명했는데, 그의 친할머니의 처녀 시절 이름이 '자자'였다고 한다.
예를 들면 존 고티(John Gotti)는 마피아들 사이에서도 화려하고 멋진 정장 차림으로 유명했고, 조셉 콜롬보(Joseph Colombo)의 경우 마피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집회를 열기도 했다.
조셉 콜롬보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민권 연맹을 통해 "마피아"나 "코사 노스트라"라는 단어가 이탈리아인들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하며 <대부 1>의 제작을 중단하라고 협박을 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제작 중단 압력을 행사한 몇 달 후 이 영화가 촬영되고 있던 엘리자베스 스트리트에서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연설을 하던 중에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조이 자자의 심복 앤소니 스키길라(Anthony Squigliaro)는 영화에서 별명이 '개미'인데 총알을 독극물(cyanide, 청산가리)에 담갔다가 사용한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는 인물이다.
이 캐릭터는 실제 감비노 패밀리의 히트맨이었던 "Sammy the Bull"로도 알려진 살바토레 그라바노(Salvatore Gravano)를 모델로 한 인물이다.
마이클의 집무실에 조지 자자가 마이클이 메우치 협회가 선정하는 "올해 최고의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선정되었다고 상패를 전달한다.
메우치는 실존의 인물이다. 본명이 Antonio Santi Giuseppe Meucci(1808년~1889년). 무대 기사이자 발명가로 1850년에 이탈리아를 떠나 미국에 왔다.
그는 1854년 알렉산드 그레이엄 벨보다 21년 전에 전화기를 발명했지만 영구적인 특허에 등록할 수 있는 돈이 부족에 매년 10달러를 지불하여 갱신하는 일시적인 특허를 얻었다.
하지만 1876년 메우치가 특허 비용이 부족해 갱신을 미루는 틈을 이용하여 벨이 메우치의 전화기에 대한 특허를 취득하였다.
이후 메우치는 즉각 소송을 제기했지만 영어를 제대로 하지 못해 소송을 진행하기가 어려워지는 틈에 당국은 기계식 전화기는 메우치가, 전기식 전화기는 벨이 발명했다고 판단해 벨에게 특허를 확정했다.
2002년 미국 하원에서 메우치의 전화기 발명에 대한 공헌을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전화기 시제품을 정립한 발명가) 이마저도 2003년 상원에서 부결되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에게는 이것이 영원한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때 코니가 빈센트를 데리고 와서 마이클에게 정식으로 소개한다. 하지만 조이 자자를 만난 빈센트는 그가 자신의 구역을 더럽히고 있다고 힐난했고 빈센트와 조이 자자는 충돌 직전까지 가지만 마이클의 중재로 억지 화해를 한다.
가족사진을 찍을 때 마이클은 무슨 생각인지 빈센트를 오라고 해서 같이 사진을 찍게 해 준다.
엄마 루시의 감동하는 표정을 보면 처음으로 빈센트를 가족으로 인정하는 것 같다. 소니가 죽은 후 그녀는 빈센트를 데리고 루이지애나, 네바다 등의 지역을 전전했었다.
딸 메리와 함께 대부의 테마곡 Nino Rota의 ‘The Godfather Waltz’에 맞추어 춤을 추는 마이클, 아마 이 영화 全篇에 걸쳐 마이클이 가장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