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람이 그렇게 까지 궁금하지 않습니다.

아니오. 참 궁금합니다.

by 이수연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외롭다.

그걸 다른 방법을 잘 찾아내서 이렇게 저렇게 해소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고,

지혜로운 방법을 잘 아는 사람이라 해도 어느 임계점이 넘어가면 해결이 잘 안 되기도 하고.

그런 게 사람이 아닐까.


너무 오랫동안 아이 둘 육아에 치였던 것인지, 또래들을 만나면 이야기가 대체로 아이들이 주된 소재이다.

물론 아이들이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난 이런 이야기 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친구들을, 지인들을 만나도 근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지만 오래 안 친구는 그런대로, 최근에 친해진 사람은 그 정도로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이가 40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사람이 서로의 일에 대해 너무 깊게 알고 있는 것도 무례한 거구나 생각해서 잘 질문하지 않는다. 그걸 허용하는 사람도 드물고, 그게 전혀 필요하지 않은 만남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제 동료작가님을 오랜만에 일대 일로 만났다. 서로의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가 아닌, 우리 둘이서 일대일로 카페에서 얌전히 이야기만 나눈 것이 마지막 만남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최소 8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일이다. 그분의 고민이 나의 고민과도 닮아있고, 독서모임에 나가는 근황을 듣고 반가웠고, 우리는 두 시간 정도 끊이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요일도 월요일도 뛰었고, 요즘 내가 왜 뛰는지,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 이야기하고 작가님은 건강과 최근의 작업 고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다 짧게 책방죄책감에 들러 한겨레 그림책/ 그래픽노블 스토리텔링 수업 결과물을 전시하는 것을 함께 보고 다 벽에 걸어진 그림들을 보고 기뻤다. 내년에 여기서 우리 둘의 전시도 1월과 2월에 열릴 예정이다.

따뜻한 연말 분위기와 그림들이 어우러져 더 좋았다. 연말 전시는 항상 꼭 해야지 싶다.


그리고 새삼 어제 깨달았는데 나는 전자담배의 냄새를 정말 무지무지하게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비 오는 날 거리로 우산을 들고 나왔는데 내 앞에 비둘기가 로드킬을 당해 처참하게 죽어있었다. 비둘기의 몸과 빗물이 섞여서 어지러울 정도로 무서운 피비린내가 났다. 나에게 전자담배는 그 풍경이 떠오르게 하는 비린내가 난다. 이런 괴상한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창문을 열고 환기를 잠시 했다.

(생각해 보면 이런 말을 해대는 나 자신도 참 별루다... )


그리고 한 달 만에 나의 개인 스터디 그룹 모임이 책방으로 찾아오셨다.

멤버는 총 3명인데 다들 직업군도 다르고 나이도 20대와 30대, 40대라는 나에게 황송한 구성인데 다들 지난 한 달간 발전시킨 글과 그림을 솔직하게 함께 나누어 주었다. 두 시간의 시간 동안 꽉 채워서 왜 우리가 이런 책을 만드는지 이 책들의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는 지난 몇 년간 의도적으로 이런 모임에 나가지 않았었다.

편집자에게도 조언을 잘 구하지 않게 된 지가 오래된지라 작업은 나에게 항상 고독한 것이었다.

지난 몇 년간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그래픽노블 작업이 감정적으로 힘들어서 다른 일을 하면서 몇 년간 미뤄두고 있었는데, 젊은 두 분의 의욕과 에너지를 힘입어 한 달간 나름대로 무언가를 만들어 갔다.

이 모음을 참여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글과 그림을 쓴다는 것을 가르친다는 게 맞는 것인지 생각이 많이 든다. 자기 안에 있는 것을 꺼내는 작업인데, 그 방법이 어떻게 다 같을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자라나고 다른 사랑과 말을 들으며 기억하고 성장하고 있다. 어떻게 같은 방법으로 이야기를 짓고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나름대로의 나의 방법에 대해 솔직하게 (용기를 내서) 풀어보았지만, 이게 두 분에게 좋은 방법을 아닐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책을 만드는 이유와 그분들이 만드는 이유가 시작점이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늘 작업실에 혼자 앉아서 제도판 위에서 혼자 하던 고민들을 살짝 나누고 이해가 잘 되는지? 감정선이 잘 따라가지는지? 그런 것들을 물어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두 분이 이런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집중해서 들어주시는 게 참 감사했다.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렸을 적 처음으로 어른이 별것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일곱 살의 나,

선생님이 나를 동정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계속 상을 주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자 집으로 돌아오면서 상장을 찢어버린 국민학교 시절의 나.

이런 이야기들은 평소에는 절대 나오지 않는 아주 오래된 기억의 한 조각 들이다.

머리가 좋지 않은데 이런 사소한 기억력이 있어서 작가가 되니 여기저기 쓰고 있다. 이런 이상한 이야기를 창작이라는 수단으로 표현하고 풀어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이게 잘 안 됐으면 마음에 병이 많이 들었을 사람이 분명하다.

그리고 어제저녁에는 그런 이야기도 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는데 생각보다 많은 질문을 주고받거나 알려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

모두들 서로가 그렇게 까지 궁금하지는 않은 걸까?

나는 누군가를 알게 되면 그 사람의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 나와 겹치는 책이 있는지 아닌지, 요즘에는 어떤 책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책이 마음에 들었다고 해서 주말에 주문을 해서 기다리고 있다던지, 내가 본 영화와 음악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어떤 동물이 좋은지,

하늘이 어떤 시간 어떤 계절이 좋은지, 며칠 전 새벽하늘이 얼마나 예쁜 오렌지색이었는지, 바람이 어느 정도 불 때는 추운 날이라는 기준이라던가,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고, 유년시절의 가족들은 어땠는지, 살았던 동네는, 지금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무엇을 나이가 들어서 꿈꾸는지.

살고 싶은 동네는, 거기는 왜 좋은지, 집은 어떻게 짓고 싶었는지 그런 아주 사소한 것부터

나이가 들어서도 성장욕구가 있는지, 한 사람의 의지와 에너지가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나는 다 알고 싶다. 나는 아직도 그런 질문들이 머릿속에 가득하고 물어보고 싶고 대답하고 싶고 나누고 싶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항상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그렇게 까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저는 참 궁금합니다.

사람은 왜 그렇게 행복하고 슬픈지,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는지, 다 묻고 듣고 싶습니다.


애석하게도 나의 이런 호기심이 아무에게나 발동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도 상대방이 이 호기심을 원하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을, 생각 보다 사람들은 그렇게 수다스럽지 않다는 것을 (다행히) 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어제와는 다르게 조용히 집에서 컴퓨터를 켜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나는 요즘 이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 중에 있다.

충일감

(充溢感)

명사 : 마음속이 가득 차는 듯한 뿌듯한 느낌.

예문: 나는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갑작스럽고 묘한 충일감에 가슴속이 뿌듯하게 찼다.

그래픽노블에도 이 감정을 풀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나 스스로에게도 이런 순간들이 언제 있었는지 기억해 내고 소중하게 대하기 위해서 이다.

어제 나는 잠시 충일감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고, 하고 싶었던 질문들과 대답을 통해 잠시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당분간은 어제의 대화들로 나는 마음속이 가득 차는 뿌듯한 느낌,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기분을 느끼며 기쁘게 감사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것 같다.


2024년도에 왜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유재하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