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과 심리학 서적들, 그 사이에서.
내가 읽었던 몇몇 트라우마 극복에 관련된 책들을 보다가 잠시 멈추고 다시 읽고, 몇 달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고 다시 읽게 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나는 심리학 전공자도 아니며 그런 관련 직업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나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림책 작가로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나의 독서 습관은 벌써 15년째 이어져 가고 있다. 스스로를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살면서 어떤 일을 하든지 무척 중요한 일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의지를 가지고 키보드에 천천히 나의 마음을 남겨두는 것도 적지 않는 생각과 그로 인한 결심들이 모여서 이뤄진 것이다. 조금 더 정직해지고 의미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렇게 내가 쓰는 글과 그림들이 분명한 방향을 가지고 이뤄지는 작업이고 싶다.
아마도 이런 글을 조금씩 이렇게 쓸 수 있게 된 것은 나의 어떤 부분이 조금은 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트라우마 가득한 유년시절을 보냈고 불행히도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했다. 혼자서 곪아가는 상황으로 너무 오랜 시간을 스스로를 미워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금의 나는 '그런 나'에 대해 조금씩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부터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심리적으로 오랜 시간 고통을 겪어본 사람들에게 내가 찾아보았던 이런 책들이 나에게 처럼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무척 개인적인 것이고 일반적이지도 않은 그런 이야기 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기대하고 있다. 단 한 사람일지라도 내 글과 그림을 보고 약간의 위안을 얻을 수 있기를.. 그리고 자신의 한계에 대해서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기를..
그런 바람을 가지고 조금씩 내가 보았던 글과 내가 쓰는 글을 나누어 본다.
입시가 지나가고 대학시절 실내건축 인테리어를 전공했다. 취직이 잘 된다는 말을 듣고 결정한 학과였고, 결과적으로 졸업 전에 작은 인테리어 회사에 입사했고, 그다음 회사는 웅진에서 만들어진 리빙 브랜드, [뷔셀]이라는 수입가구 회사에 전문영업직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겨우 23살이었고 영업직을 하기에는 성격은 엄청나게 내성적이었으며 입사 후 영업실적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엉망이었다. 스트레스로 일 년 만에 살이 십 킬로가 넘게 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영업실적을 두고 그래프를 그려가며 월요일 아침부터 혼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무실적이 6개월이 이어지자 중년의 국장은 나의 무뚝뚝한 얼굴에 서류 다발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그 국장도 사무실에 사람들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나의 무심함에 다들 질려있었다. 동기들이 하나둘 퇴직을 결정할 때도 나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두 번째 회사였다.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그만두어 버리면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힐 것 같다는 두려움이 내 안에 있었다. 절대로 이상태로 그만들 수는 없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가고 조금씩 늘어가는 영업실적과 함께 나는 나의 일부분이 점점 변해가는, 동시에 사라져 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 회사에서 근무하는 삼 년 동안 나는 책을 읽지 않게 되었고, 영화도 잘 보지 않았다. 좋아하던 라디오도 듣지 않았다. 그런 것들이 사는데 필수적이지 않다는 것을 삶으로 성실하게 실행 중이던 시기였다. 하루 종일 많은 사람들과 끝도 없는 이야기를 시간을 들여서 나누고 명절이든, 새벽이든 고객에게 연락이 오면 일어나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기차를 탔다. 뇌 속에는 가구를 하나라도 더 팔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가끔씩 일찍 퇴근하는 날에는 혼자 티브이를 켜 두고 앞에 누워서 바라보다가 알 수 없는 허무함이 몰려왔다. 아무도 없는 곳에 떨어진 기분이 들 때가 이따금씩 찾아왔다. 그런데도 사태의 심각성을 나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웅진은 재밌는 회사였다. 한 달에 한 번씩 큰 호텔을 빌려, 시상식을 열기도 하고 실적이 좋은 직원들을 모아 제주도로 해외로 여행을 보내주기도 했다. 직원들의 심리상태에 관심이 많아서 일 년에 한 번씩 직원들의 성격과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했었다. 마지막 해에 나는 외향형으로 성격이 바뀌어 있었고, 나는 직원에서 리빙 매니저로 승진해 있었다. 월급도 늘어나고 나이에 비해 저축도 성실하게 하고 그다지 모난 것 없는 평범한 젊은 소시민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스트레스 지수 테스트지는 다르게 말하고 있었다. 한 부분, '정체성' 부분에서 나는 큰 스트레스 지수를 보이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스스로를 이해하는 능력이 아주 미숙했었기 때문에 테스트지의 그래프를 보고 나서야 내가 이 직업을 불편해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 사람인가.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일까.
나의 무의식 속에서 스스로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는데도, 25살에 나는 소같이 일주일에 일곱 번씩 회사일을 하며, 번번이 가장 늦게 사무실의 불을 끄고 나오는 인생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도 나는 커다란 노트북 가방 속에 가구 브로슈어를 챙겼다. 명함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특별히 목적지가 없는 날이었지만, 무조건 나가야 했다. 영업직은 그런 일이었다. 사무실 근처에 맥도널드에서 어디로 가야 가망고객을 만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옆 테이블에서 한 할머니와 중년의 남자가 하는 대화가 들렸다. (그때는 그랬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를 다 엿들었다. 일종의 직업병이었다.) 내가 기다렸던 인테리어 현장의 대화였다. 자신의 집을 짓고 있는 할머니가 주방 가구를 고르고 있었다. 나는 익숙한 상황에 브로슈어와 명함을 들고 그 둘의 대화 중간에 조금은 다급하게 끼여 들었다. 내가 가구 영업사원이며, 한번 우리 가구점에 들러서 같이 둘러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깐깐해 보이는 할머니의 눈이 불쾌해 보였다. 대화 중간에 들어온 내가 거슬렸던 것이다. 나에게 대화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다시 더 이야기해보자고 하고 둘은 그렇게 삼십여 분간 더 공사를 의논했다.
특이한 분위기의 할머니였다. 첫인상에서 매나 독수리 같다고 혼자 생각났다. 깊게 쌍꺼풀이 진 커다란 눈 위로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었고, 그 안경테가 기억이 잘 안 나는 것을 보니 분명 뿔테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얀 머리는 아무런 펌이나 염색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짧은 쇼트커트였다. 기다리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말투는 정중했지만 무척 단호했다. 나는 조용히 할머니를 기다렸고, 드디어 대화가 다 끝나자 할머니가 내 브로슈어를 들며 나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우리는 주방가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그 할머니는 내가 근무하는 갤러리에 실재 샘플을 보러 왔다. 그리고 다음날, 자기가 철재 펜스를 보러 경기도로 가는데 나에게 같이 가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나는 가망고객에게는 시간을 아낌없이 쓰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다음날도 할머니를 만났다. 그리고 그날, 오가는 전철 속에서 우리는 가구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 할머니는 나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몇 살이에요?
-25살입니다.
-남자 친구는 있어요?
-아니요.. 그런데 1년 전에 헤어진 사람이 있는데 미련이 남았는지 계속 생각이 나요. 다른 사람을 사귈 생각이 잘 안 들어요.
-아가씨 나이면 어떤 사람을 만나서 배우자가 되는지가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될 거예요.
-그렇죠.. 그런데 소개를 받는 다든지 그럴 의욕이 잘 안 생겨요..
-아가씨가 조금 우울증이 있는 건가.. 이런 이야기할 사람은 있어요?
-보통 친구들하고 이런 이야기 하죠.. 그런데 진지하게는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우울한 이야기는 별로 다들 안 좋아하잖아요.. ㅎ
- 친구들하고 말고.. 좀 더 전문가하고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가족이나 친구들이 어찌 보면 아가씨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많이 있거든요.. 혹시 책 읽는 거 좋아해요?
-아니요.. 솔직히 최근에 책 읽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추천해 주시고 싶은 책 있으세요?
- 종교가 있나요?
-집이 기독교예요. 교회 잘 나갑니다. (영업직에게 종교 활동은 필수적이다.)
-그럼 거부감이 덜하겠네요.. M.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이라는 책이 있어요.. 그거 기회 되면 꼭 읽어봐요.. 아.. 난 여기서 내려야 해요. 내일 갤러리에서 또 만나요.
할머니가 급하게 내렸고, 내손에는 구깃구깃한 종이에 책이름이 써져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까운 서점에서 그 책을 샀고, 생각보다 꽤 두꺼운 책의 두께에 조금은 질려버렸다. 하드커버에 어림잡아 두께가 4~5센티는 돼 보였다. 나한테 이런 걸 읽으라는 말인가... 신문 사설하나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나에게..
하지만 무슨 일인지 그날따라 나는 그 책의 한두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고, 삼십여분 정도 지나자 나는 그 책에 빠져들어가기 시작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나는 그 책에 나오는 사례 하나하나를 집중해서 읽기 시작했다. 25년을 살면서 아무도 아무도 나에게 해주지 않은 말들, 무엇보다 아무도 나에게서 듣고 싶어 하지 않은 많은 말들이 그 책 안에 아무렇지도 않게 쓰여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말해도 되는 걸까 싶었던 사건들이 거리낌 없이 스캇 펙 박사의 글을 통해 소개되고 있었다. 나는 그날 밤을 새 버렸다. 그 책을 읽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 책에 관해서는 할 이야기가 너무 많다. 후에 몇 년 후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책꽂이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 오랜만에 찾아간 대학교 은사님의 책장에서 이 책을 또 만났다.
분명한 건, 이 책이 내 인생을 뒤흔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스캇 펙 박사가 정신과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며 얻어진 내용들이다. 이 책은 많은 실제 사례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부분 실명언급을 피하기 위해 가명을 사용하고, 간결하게 내용이 변경된 것도 있다고 서문에 언급되어 있다. 나는 이런 종류의 책을 처음 접해본 것이었다. 각 환자들의 사례는 나와 다른 듯 닮은 구석이 있었고, 그들의 인간적인 결함들과 실수로 얼룩진 삶들, 그리고 다수의 원인이 되었던 사랑받지 못한 유년시절이 박사와의 인터뷰에 고백되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에는 이런 환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쏟아내는 모습들에 놀랐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다니, 그리고 위로를 받을 수 있다니..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다니.. 얼마나 용감한 사람들의 이야기 인가.
동시에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나같이 비뚤어진 인간이 나 하나만은 아니라는 안도감.
아무도 나에게 저런 이야기를 같이 나누지 않았었다. 나도 그 누구에게도 나의 마음 상태에 대해서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았었다. 이야기하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존재로 취급받을까 봐 두려웠다.
절대로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고 내 마음속으로 스스로 자물쇠를 걸어 잠근 지 너무 오래된 일들이었다.
환자들의 상담내용을 읽으면서 나는 못되게도 그들의 불행한 삶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 혼자만 잘못된 인간은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
그 책을 읽고, 2일도 안 지나서 나는 6년 가까이 내려두었던 그림의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다. 한 일러스트레이션 학원의 광고 이메일을 열어보다가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등록을 했고, 강남까지 찾아가서 인터뷰도 보았다. 그리고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년 가까이 버티고 버텼던 나의 영업직 생활을 정리했다. 그 여름이 가기도 전에..
소지품 박스를 들고 나오면서 내가 입었던 파란색 반팔티와 청바지가 기억난다.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것이..
아직도 가야 할 길 378p
행운을 가져다주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과 관련하여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초능력이라는 현상이다.
웹스터 사전에는 초능력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귀중한 것을 뜻밖에 찾아내는 재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에는 몇 가지 숨겨진 요소가 있다. 그중 하나는, 초능력을 재능이라고 정의함으로써 어떤 사람은 이것을 가지고 있는데 또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여지를 준다. 우리는 지금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가치 있고 바람직한 것'을 의미하는 은총에 관하여 논한 바, 은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은총을 붙잡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중략- 사람들이 은총을 놓치게 되는 까닭과 은총을 붙잡지 못하는 이유 등에 관한 것은 '은총에 저항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다루겠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은총이 주는 혜택을 누리는 데 실패하는 것이 그 실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임을 지적하는 선에서 그치도록 하자. 다시 말하면, 우리는 스스로 애써 구하지 않아도 주어지는 것의 소중함을 모른다는 것이다. 어던 선물이 원하지도 않는데 주어졌을 때 그 선물의 가치를 제대호 알기가 어렵듯이 말이다. 바꿔 말하면 초능력적인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지만 우리는 그것이 초능력과 관계가 있는 것임을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런 사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한 고객의 추천도서였을 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책의 은총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받는 스트레스에 대해서 조금씩 더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기억하기로는 6살 근처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누가 그리라고 한 것도 아니었고, 내가 혼자서 볼펜을 끄적거리며 그렇게 그리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내내 상장을 탔었다. 그림 그리는 것이 그냥 재밌었고, 미술학원 가서 배우는 것보다 좋아서 혼자 그렸고 '넌 재능이 있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그림 그리는 게 얼마나 좋았는지 3일 정도 잠도 자지 않고 낙서를 한적도 있었다. 그 시절에 내 왼손 중지는 부정할 수 없을 만큼 크게 휘어져 가고 있었다. 굳은살과 함께..
그런 그림을 19살부터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나는 7년간 그리지 않았다.
일부러 더 그리지 않았다. 좋아하던 만화도 영화도 잡지들도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내 안에서 듣고 싶었던 말이었기 때문일까.. 저 글을 읽고 나는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들었던 달란트 설교도 그 당시에는 다르게 들렸다.
출처 -https://blog.naver.com/hong0691/222187121251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자기가 받은 달란트를 그냥 땅에 감추어 두고 그 어떤 이윤도 남기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잘못과 게으름을 주인의 탓으로 책임 전가를 하고 있습니다. 24절에 나온 ‘굳은’으로 번역된 ‘스클 레로스’는 땅 등이 딱딱하여 말라 있는 것을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다른 말로는 죄로 굳어진 마음에서 나오는 강퍅하고 완악한‘(유 1:15) 혹은 ’ 이해하기 힘든‘(요 6:60)에 사용된 단어로, 한 마디로 주인의 성격이 ’강퍅하고 완강하며 가혹하고 냉정한 ‘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그의 주인을 인정머리 하나 없는 인색하고 냉정한 사람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즉 투자를 적게 해 놓고서 거기에서, 많은 소득을 얻어 보려고 종들에게 채찍질하는 인색한 영감 정도로 치부해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요즘에 너무 발견할 수 있는 삶에 대한 태도라 볼 수 있습니다. 자기의 인생을 운명론에만 빠져 자기의 적은 능력을 더 이상 개선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개발과 발전은 포기하면서 자기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하늘과 세태를 원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받은 것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욱 남과 비교하여 보잘것없다고 여겨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또는 나의 능력 없음을 한탄하며 원망하는 삶을 살아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고 헌신해야 합니다(롬 12:3). 그리하여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나라 확장에 기여해야 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중요한 것은 받은 달란트의 크기 혹은 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어떤 삶을 살았느냐? 그 책임에 따른 결과로 칭찬과 책망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출처] 달란트 비유, 2020년 나의 결산? 마 25:14~30|작성자 써번트
그렇게 25살 나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내 일생에 그 어떤 시기보다 많이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나에 대해서, 내가 가진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똑바로 마주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