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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나쁜 것

by 이수연

밤 열한 시 근처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정작 하고 싶고 듣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인데.

직원분이 찾아와서 마감이라고 이제 문 닫아야 한다고 하셨다.




이런 게 세상에서 가장 나쁘다.

책상 하나 중간에 두고 몇 시간 동안 속에 있는 이야기 겁도 없이 하는 거.

자신이 직접 쓰고 그린 그림책 선물 주면서 앞에다가 조금 긴 문장으로 속마음 담아서 글씨 써서 소포 보내는 거.

십몇 년 전에 주었던 책 다시 주면서 그 안에 면지에 글 새롭게 적어서 사람 울리는 것.

그래서 그 책 표지 볼 때마다 계속 울리는 것. 어떻게 읽으라고.

상상도 못 할 단어로 사람을 묘사하는 것.

또는 그런 단어로 자기 자신을 불러 달라고 말하는 것.

꽃다발 안에 짧은 메모 넣어 주는 것.

사람 자꾸 놀라게 하는 것.

자신이 직접 쓴 몇백 페이지짜리 소설책, 별거 아니라는 듯이 봉투에 둘둘 말아서 조용히 주는 거.

마음껏 누리라고 그래도 된다고 말해주는 거.

내 황당한 이야기 다 들어주고 같이 읽어주는 것.

그리고 대충대충도 아니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그 글을 읽고 거의 외울 정도로 읽는 것.

심지어 그걸로 무언가를 해 볼 수도 있다고 같이 희망하는 것.

같이 책 보고 그 책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 나누는 것.

책 빌려주면서 표지가 무안할까 봐 가죽 북커버 씌어서 빌려주는 것.


굳이 알필요도 없는 서로에 대한 것 그냥 다 알고 있는 것.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그 마음들 알 것 같은 것.

세상에서 가장 나쁘다. 진짜.


사는 거 다 바쁜 거 아는데 그러지 마라.

진짜.


저 정말 과장이 아니고

심장이 아프단 말입니다.



#대화

#세상에서 제일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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