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열살의 여름 날
첫 만남에서 자신을 스스로 ‘경험주의자’라고 소개했다. 이전에 그런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어서 신기했다. 무엇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경험주의자라는 단어로 설명하게 한 걸까? 어떤 시간의 흔적들이 그 사람을 스스로 무언가를 알아내기 위해 ‘직접 박치기 해보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게 만든 걸까?
잠시, 어느 여름날로 돌아가 본다.
열 살이었다. 친구들은 대부분 자전거를 탈 줄 알았다. 나는 한 번도 자전거를 타본 적이 없었다. 오빠가 어딘가에서 낡은 자전거를 얻어왔다. 내가 타기에는 다리가 살짝 바닥에 닿지 않는 어른의 자전거였다. 보조 바퀴 같은 것은 당연히 달려있지 않았다. 우리 집은 내리막길이 시작하는 사거리에 있는 다세대 주택 중에 하나였다. 그 날은 늘 그랬듯 집에 아무도 없었고, 나는 자전거를 끌고 초록 대문 밖으로 나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더 멀리 갈 수는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무거웠다. 자전거 안장에 한 번에 올라가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다리가 한쪽만 바닥에 닿았고 계속 뒤뚱 뒤뚱 거리기는 모습이 우스웠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았다.
해가 따갑게 쨍쨍 내리쬐는 낮이었고, 나는 청바지에 반팔 티를 입고 있었다. 자전거에 겨우 겨우 두 다리를 쭉 펴고 서서 중심을 잡아 보려고 한다. 두 발은 쭉 뻗다 못해 쥐가 날 것 같았다. 하늘을 보았다. 눈이 부셔서 제대로 뜨기가 어렵다. 다시 두 손이 있는 손잡이를 바라본다. 페달 왼쪽에 왼발을 얹어본다. 다음 순간, 자전거는 망설이지 않았고, 왼쪽으로 바로 엎어진다. 으아. 내가 보는 세상이 왼쪽으로 둥글게 빠르게 휘어진다. 시멘트 바닥 위에서 눈을 뜬다. 팔꿈치가 까져 있었다. 피가 맺히기 시작한다. 호호 불어서 먼지를 불어 버린다. 힘을 들여서 다시 자전거를 힘겹게 세운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자세히 보니 청바지의 무릎 왼쪽이 살짝 찢어져 있었다. 너무 오래 서 있으면 더 힘들어 지겠지. 자전거는 나에게 이미 충분히 무거워 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망설이면 더 빠르게 지치겠지, 그러니까 다시 왼쪽 페달에 발을 올린다. 그리고 이번에는 발에 힘을 실어 내리 찍어본다. 쾅! 다시 왼쪽으로 엎어진다. 같은 시멘트 바닥이 보인다. 이런, 이번에는 청바지의 무릎이 완전히 찢어져 있었다. 완벽한 구멍이었다. 핏자국이 배어난, 완벽한 구멍.
집은 가까웠다. 조금만 걸어가면 집안은 해도 내리 쬐지 않고 물도 있는데. 들어갈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시 일어나 왼쪽 페달 위로 발을 얹는다. 다시 바퀴를 돌려보려고 발을 아래로 내려 힘을 준다. 왼발이 드디어 왼쪽 페달 위로 무사히 얹어졌다. 잠시 몸이 중심을 잡은 걸까, 고무 바퀴는 바닥에 분명히 닿아 있지만 잠시 공중에 붕 뜨는 느낌이 든다. 아주 잠시 였지만. 그 날의 이야기는 같은 이야기를 계속 지루하게 반복해야 할 것이다. 그 날, 하얗게 햇빛이 내리 쬐는 시멘트 길 위에서 나는 몇십 번을 엎어졌을까? 이상했다. 나중에는 팔꿈치도 무릎도 따갑지 않았다. 그날의 나에게 따가운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 내가 인생 처음으로 자전거를 탈지도 모르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왼쪽 페달과 오른쪽 페달에 발을 동시에 올리고 몇 초간 버틸 수 있었다. 잠시 중심을 잡고 서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내리막길 골목으로 자전거의 방향을 틀었다. 골목길의 끝은 시멘트 벽돌로 투박하게 쌓여진 담이었다. 담의 높이는 어른키로도 넘기가 살짝 힘들 정도로 충분히 높았지만, 경사진 사거리 위에서 보이면 그 너머가 보였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모여 있는 작은 숲이 거기에 있었다. 숲이라고 하기에는 소박한 크기 였지만, 공장지대와 주택가를 경계짓는 나무 들이 담장 너머에 있었다. 우리 집에서 그 내리막길의 끝, 담벼락 까지는 대략 30미터 정도 였다. 그 거리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까웠다. 순식간에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고 내리막길을 타고 내려가 담벼락에 가서 바로 푹 돌벽에 박혀 버린 것이다. 담장 근처에 잡풀 위로 넘어져서 다행히 무릎이 더 까지지는 않았다. 자전거와 함께 대자로 누워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면서 뜨거운 하얀 하늘을 잠시 보았다. 이렇게 덥다니. 이러다가 얼굴이 터져 버리는 것 아닐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직 뜨거운 낮이다.
다시 일어나 자전거를 끌고 내리막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등은 땀으로 다 젖은지 오래였다. 목이 마르지만, 집으로 들어가 물을 마셔야 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니까.
왜냐고? 조금만 더 타면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가 손에 잡힐 것 같다. 무언가? 뜨거운 공기의 흐름이 바뀌는 것. 더는 겁을 내거나, 망설이거나, 위태롭게 흔들리지 않는 순간. 손에 잡히지 않는 뜨거운 바람을 타는 것. 자유롭게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을 손으로 금방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그날 나는 그 오르막길을 몇 번이나 다시 거슬러 올라갔을까?
다음날, 나는 그 자전거 뒷자리에 친구를 태우고 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 돌 수 있었다.
자세한 것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 다 까져버린 팔꿈치와 손등, 찢어진 청바지와 무릎, 발의 복숭아뼈를 보았다. 바지 상태를 보니 엄마한테 크게 혼날게 분명 하므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마당에 수돗가로 달려가서 상처를 씻어버리고 집에 있는 빨간약을 대충 바른다. 팔등에 살껍질이 빨갛게 익은게 보인다. 그때쯤 여름이 끝날 때마다 등과 팔의 살껍질이 항상 벗겨졌었다. 학교가 끝나고 해가 질 때까지 집에 붙어있지 않고 뛰어나가 내내 놀았다. 그 날 오후는 유난히 피곤하고 나른했다. 칠이 다 벗겨진 그 갈색인지, 빨간색인지 모를 낡은 어른 자전거를 바라본다. 용케도 망가지지 않았다. 분명히 많이 다쳤고 아찔한 순간이 있었지만, 만약 나에게 같은 여름날의 시간이 되돌아온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담벼락으로 달려 가서 나와 자전거를 내리꽂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 뜨거운 여름날은 절대 잊지 않는다. 잊을 수가 없다.
후회하지 않는다. 몇십 번이나 넘어지면서 청바지가 찢어지도록 자전거를 타보려고 했던 것을. 상처의 흔적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충만함을 온전히 느끼는 하루가, 자주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날 나는 뜨거운 바람을 타고 잠시 하늘을 날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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