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를 잘 모르는 특허 업계 종사자 이야기 ①
새로운 회사로 이직하였다. 이번에 이직하는 회사는 내 직장 생활 중 세 번째 회사로 특허 검색 데이터베이스 제공, 데이터 가공 및 판매, 특허 빅데이터 분석 그리고 특허 교육 플랫폼을 운영하는 리걸테크 기업이다.
이 중에서 나는 특허 빅데이터 분석 직무로 입사하였고, 해당 직무로 입사할 수 있었던 계기는 평소 네이버 블로그와 링크드인을 통해 데이터 분석과 관련한 글을 몇 번 작성했었다는 경험과 특허법인 그리고 인하우스 특허팀에서 일을 했던 경력을 좋게 봐주신 덕분에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나 또한 기존에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하면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에 흔쾌히 입사 제안을 받아들였다.
입사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나는 하루에 몇 번씩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공존하며 업무를 해나가고 있다. 퇴사 생각이 드는 이유인즉슨 기존에 내가 해보지 않았던 업무이기도 하였고 나는 관련 분야의 전공자도 아니었기 때문에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라는 압박감과 부담감이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이유는 어찌 되었든 나는 성장을 하고 싶었고, 성장을 하려면 내가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매일 오락가락하는 나의 심정을 눈치라도 챈 것일까? 하루는 같은 팀 내 상사분과 회사 옥상에서 잠시 스몰 토크를 하던 중 회사 상사분이 문득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OO씨는 하고 싶은 게 뭐예요?"
간단한 질문 같지만, 쉽사리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아 "음…. 글쎄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했다.. 이제 막 입사한 사람으로서 적극성을 보여주기 위해 뭐라도 답변하고 싶었지만, 떠오르는 것이 없어, 그냥 솔직하게 말해버렸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과거 내가 특허 업계에 들어오게 된 계기부터 현재 누구보다 평범한 특허 업계 4년 차 직장인이 되기까지의 기억을 되새기며 앞으로의 미래를 계획해 보고자 한다.
1. 내 인생 첫 공모전
학부 시절 기계공학을 전공했지만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학생의 본분이었던 학업에 소홀히 하게 되었고 취업 준비를 해야 할 졸업 학기에 방황하던 중 부모님 지인의 권유로 기술 경영학 석사과정에 지원하여 입학하게 되었다.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학과 연구실 선배가 학교 게시판에 붙어있던 공고문을 가리키며 연구 논문을 쓰기 전에 저런 공모전에도 한 번 나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였고 그렇게 내 인생 첫 공모전을 치르게 되었다.
해당 공모전은 한국발명진흥회에서 주관하는 "2020년 캠퍼스 특허 유니버시아드"라는 공모전으로 현업에서 발생하는 특허 실무와 관련된 주제를 대학생 그리고 대학원생 관점에서 분석해 보고 인사이트(예…. 특허 분석+사업화 전략 도출 등)를 도출해야 했다. 물론 특허라는 도메인이 학생 입장에서 생소하고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에 팀별로 멘토님이 주기적으로 공모전 준비를 잘하고 있는지 관리를 해주셨다.
하지만 특허를 직접 조사 및 분석하고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몫이었고 특허라는 녀석(?)을 해당 공모전에 참가하면서 처음 맞닥뜨린 상태였기에 특허 문헌에 담긴 용어들은 봐도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중도에 그냥 포기를 해야 하나? 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담당 멘토이셨던 변리사님께서 가이드를 잘 해주셔서 어찌저찌 마감일 전에 자료를 만들고 제출할 수 있었다.
얼마 뒤 서류 평가 결과가 나왔다. 서류 평가에는 합격하였고 발표 평가에 있을 자료를 준비해달라는 메일을 받았다. 처음엔 오…. 이게 되네?? 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한편으로는 하…. 발표는 자신이 없는데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래도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발표까지 해보자 하는 마음에 발표용 대본도 만들고 나름의 준비를 하였다.
발표 평가 당일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 발표를 진행하였다. 발표라는 것을 살면서 거의 안 해본 나로선 최선을 다했지만 역시나 평가위원들의 평가는 냉혹했다. "혹시 팀 내 다른 분들은 발표를 안 하시나요?", "사업화 부분에 대한 내용이 약하네요." 등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 따끔한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그래도 한 명의 평가위원에게 "특허 분석은 잘 하신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들어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인생 첫 공모전 발표를 어설프게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학부 시절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매사에 소극적이었던 모습과는 조금 달라졌다고 느껴졌다. 아직 결과는 안 나온 상태였지만 기존에 내가 모르던 분야에 도전하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조금이나마 성장했다고 생각했다.
발표 평가를 하고 1달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주최 측으로부터 발표 평가 결과 메일을 받았다. 결과는 장려상이었다. 상을 준다니까 기분은 좋았으나 조금 더 잘했다면 더 높은 상을 받았을텐데 라는 아쉬움도 들었다. 그래도 인생 첫 공모전 치고는 나름 선방했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상금으로 백만 원이라는 금전적인 보상도 받게 되어 당시 몸과 정신은 힘들었지만 소정의 결과를 얻어서 나름 보람찼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2. 사회로 첫 발걸음을 내디다
공모전을 마치고 해가 바뀌어 석사 3기를 맞이할 무렵, 당시 내 여자 친구는 같은 학과 다른 연구실에 다니던 친구였는데 갑자기 계약직 인턴을 하기 위해 파트타임제로 바꾼다는 것이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대학원은 특수대학원이라서 교수님의 동의가 있다면 풀타임제에서 파트타임제로 바꿀 수 있었다.
여자 친구의 사회 진출 소식을 듣고 나니 뭔가 조급해졌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당시 여자 친구가 회사에 가면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한 남자들에게 여자 친구를 마치 빼앗길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같은 회사는 못 가더라도 그 근처의 회사에 나도 들어가서 같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싶었고 당시 여자 친구가 인턴을 하게 되었던 회사는 선릉역 부근에 있어서 나도 그 근처에 가볼 만한 회사를 찾게 되었다.
채용사이트를 둘러보며 선릉 그리고 강남 부근에 기계 공학을 전공한 사람이 갈만한 회사가 찾아보는데 마땅히 갈만한 회사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특허법률사무소에서 올린 채용 공고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전문직 자격증을 지닌 변리사들만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특허 업계에서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침, 특허 관련 공모전에서의 수상 경력도 있었고 일반적인 회사보다 조금 더 어필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아 더 수월하게 채용이 되지 않을까 하여 공고가 올라온 몇 개의 특허사무소에 지원서를 접수하였다.
지원서를 접수한 다음 날, 한 특허사무소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인생 첫 면접이기도 했고 깔끔한 인상을 주기 위해 새로 산 정장을 입고 면접을 보러 갔는데 그 날따라 비가 많이 와서 가방이며 옷이며 반쯤 젖은 상태로 면접 볼 회사에 도착했다.
회의실에서 5분 정도 기다리니 면접 볼 당시엔 몰랐지만 내 인생 첫 팀장님이 아주 편안한(?) 복장으로 면접에 들어오셨다. 면접 과정은 정말 편안하게 진행되었다. 압박 질문도 없고 특허에 대한 나의 관심도를 체크하는 분위기였다. 이후에 봤던 다른 특허사무소 면접관과는 달리 인품도 좋으신 거 같고 무엇보다 분위기를 편안하게 해주셔서 추후 입사 제안이 왔을 때도 감사한 마음에 흔쾌히 제안을 수락하였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특허사무소에 입사가 확정되어 당시 지도교수님께 양해를 구하고 첫 사회생활을 특허 업계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도 모르는 어렸던 당시의 나는 그저 여자 친구와 가까운 곳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을 안고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입사 이후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