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물색
아침에 눈을 뜨면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생각만으로 시간을 다 써버리는 미련한 생활의 반복이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오늘은 또 어떻게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지, 방안에 펼쳐놓은 캠핑의자에 몸을 깊숙히 묻고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했다. 무엇이라도 하자. 매일 시간 보내기에 급급해서 잠자리에 들 시간이면 오늘 하루 뭐 했나 하 후회도 이제는 지쳤다.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행동을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미용실 예약을 했다. 여름이 시작되자 어중간한 단발머리가 불편해서 2주 전부터 머리를 잘라야지 생각만 하며 미루고 있었는데 이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려면 행동을 해야 했다.
쇼트커트를 해본지가 언제쯤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직장을 다닐 때는 늘 긴 머리에 세팅 파마와 염색으로 관리를 했었다. 퇴사 후 단발로 머리를 잘랐고 이직한 회사가 1년 만에 경영난으로 폐업을 하던 때 원형탈모가 생겼다. 피부과에 원형탈모를 치료하러 다니는 기간 내내 피부 케어를 받으러 오는 손님들이 부러웠었다.
나름 심각했던 상황에서 웃겼던 것은 의사가 했던 말이다. "다행히 머리카락이 검은색 이내요. 흰머리가 나는 환자들도 있거든요". 3개월동안 한번도 빠지지않고 일주일에 두번씩 두피에 주사를 맞았다. 탈모치료를 하면서 여린 솜털처럼 자라나는 머리카락이 신기하면서도 애처로웠다.
치료가 끝나고 한동안 머리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염색도 펌도 하지않은채 지루한 단발머리를 3년 동안 했다. 오늘은 쇼커트로 머리스타일을 바꾸었다. 머리가 짧으면 얼굴이 생기 있게 보이고 기분전환도 될 줄 알았다. 흰머리가 확연히 드러났으나 염색을 하지 않았다. 염색은 안 하세요?라고 묻는 미용사에게 자연스럽게 한번 놔둬 보려고요, 궁색함이 머리에도 따라붙는 것 같아 기분이 찜찜했다. 머리카락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면서 삶의 가치도 하향곡선을 이루고 있는것 같아 마음이 비렸다. 어느 순간부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오늘은 무언가를 하기는 했다. 이것으로 만족하면 너무 소박한것일까? 행복은 크기보다 빈도가 중요하다는 논리를 꾸역꾸역 오늘 하루에 빗대어 본다. 그럼 좀 행복해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