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빛이 출렁이는 먼 바다, 바다의 왕에게 여섯 명의 공주가 있었다. 모두 성격이 다르고 개성이 넘쳤지만,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막내 공주는 호기심이 많았다. 공주들은 열다섯 살이 되면 물 위로 나가 인간 세상을 구경할 수 있게 된다. 막내 인어 공주는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물 위로 올라가 인간 세상을 구경하러 나갔다.
“세상에! 이게 바로 인간 세상이구나. 인간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다운 게 많구나.”
공주가 인간 세상을 신기해하며 구경을 하던 중이었다. 배 한 척이 난파되어 왕자가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자, 공주는 왕자를 구해 해안가로 데려간다.
“살아야 해요. 꼭 살아야 해요.”
공주는 의식이 없는 왕자의 몸을 붙들고 애절하게 말했다.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왕자의 모습을 보고 공주는 처음으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주는 커다란 바위틈에 숨어 사람들이 왕자를 무사히 데려가는 장면을 지켜봤다.
다시 바다로 돌아온 공주는 자꾸 왕자의 얼굴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너, 혹시 사랑에 빠지기라도 한 거니?”
공주의 할머니께서 공주를 보고 미소 띤 얼굴로 물었다.
“네? 아니에요......”
공주의 얼굴이 순식간에 홍당무가 되었다.
“애야, 사랑이라는 건 말이다. 갑자기 찾아와서 내 삶을 흔드는 일이란다. 깊이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소용돌이처럼 말이다. 네가 사랑을 해도 네 삶은 지켜냈으면 좋겠구나. 이 할미는.”
할머니는 공주의 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그 후로 공주는 왕자를 다시 만나기 위해 매일 해안가를 찾았지만, 끝내 왕자를 볼 수 없었다.
공주는 사람의 모습으로 왕자를 찾아가기 위해 마녀를 찾아갔다.
사람의 다리를 얻는 대신 공주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바쳐야 한다고 마녀가 말했다.
그리고 만약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왕자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되면 공주는 물거품으로 변할 거라고 충고를 했다.
“왕자님을 만날 수 있다면 제 남은 시간을 모두 내놓을 수 있어요.”
공주는 애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리석은 공주같으니라고. 나야 뭐 손해 볼 거 없는 거래지.”
마녀는 공주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거둬들이고 인간의 다리를 내어주었다.
인간의 모습을 한 공주는 궁전에 도착해 왕자를 만났다. 왕자는 공주가 어디에서 온 누구인지 묻지만, 목소리를 잃은 공주는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왕자를 구해준 사실조차도...
왕자는 인어 공주를 여동생처럼 귀여워했지만, 이웃 나라 공주와 약혼식을 올리기로 발표한다. 막내 인어 공주의 언니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동생을 구하기 위해 마녀를 찾아갔다.
마녀에게 자신들의 긴 머리카락을 내어주고 칼을 받아 막내 인어 공주에게 건네준다.
“네가 살 길은 이 칼로 왕자의 심장을 찌르는 방법밖에 없어. 망설이지 말고 그렇게 해. 그러면 너는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될 거야.”
언니들은 인어 공주에게 간절한 마음을 담아 말했다.
“난, 그럴 수 없어요. 왕자님이 죽게 되면 나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어요.”
공주는 이미 죽음을 각오하면서 마지막으로 왕자를 한 번 더 바라봤다. 그리고 바다로 자신의 몸을 던졌고, 몸이 거품으로 변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단 하루만 완벽한 인간으로 살 수 있다면......’
물거품으로 변하는 순간 공주의 목소리가 공중으로 흩어졌다.
왕자는 이웃 나라 공주와 결혼해 예쁜 아기를 낳았다. 아이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다리에 장애가 찾아왔다. 아이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마리아가 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장애는 평범한 생활에 걸림돌이 되기 시작했다.
“네가 공주로 태어났지만, 넌 우리보다 불행해. 넌 스스로 잘 걷지도 뛰지도 못하잖아?”
“네가 할 수 있는 건 보모들의 도움을 받아서 겨우 살아가는 것 뿐이야.”
친구들은 마리아를 향해 온갖 비난을 쏟아냈다.
“아니야! 나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있어. 분명히...... 난 불행하지 않아.”
마리아는 친구들의 놀림에 당당하려고 애썼지만, 이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공주님, 수영을 한번 배워보실래요?”
어느 날 마리아를 유별나게 예뻐하던 보모가 말했다. 보모는 수영선수를 꿈꾸던 수영계의 유망주였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살았다.
“내가 이런 다리로 수영을 배운다고?”
마리아는 보모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주님, 세상에는 기적이란 것도 분명히 있어요. 기적은 애써 노력하는 사람에게 찾아온답니다.”
보모는 마리아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마리아는 보모를 따라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수영장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물속에 들어가 물장구를 치는 일조차 버거웠다. 다리에 장애를 가진 마리아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물속으로 가라앉기 일쑤였다. 하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수영의 기본기를 익히고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는 보모와 마리아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내가 드디어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어! 이것 좀 봐. 내가 이 다리로 수영을 한다고.”
“기적이 일어났어!”
마리아는 뛸 듯이 기뻐하며 수영장을 누볐다.
비록 실력은 평범한 아이들에 비해 부족하지만,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어낸 쾌감에 마리아는 마냥 행복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거에요. 그 빛이 곧 기적을 만들어 내는 거랍니다.”
보모는 마리아를 지켜보며 흐뭇해했다.
“애! 너 우리랑 수영 시합할래? 해보나마나 뻔한 승부지만 말이야. 크크크.”
마리아를 괴롭히고 놀리던 아이들이 몰려와 말했다.
“음......”
마리아는 고개를 푹 숙이고 주춤거렸다.
“자신이 없는 거야? 하긴 그 다리로 우리를 상대한다는 건 불가능하지.”
덩치가 큰 아이가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아니야! 자신 있어! 할 수 있다고!”
마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를 쳐놓고 속으로 노심초사 걱정을 했다.
얼떨결에 시작된 수영 시합 날, 마리아는 수영장에 모인 수많은 친구들 앞에 서 있다.
‘여기서 포기할 순 없어. 그랬다간 저 많은 아이들이 날 조롱하고 비난 할거야.’
마리아는 두 손을 꼭 움켜쥐고 출발선 앞에 섰다.
“탕!”
다섯 명의 아이들이 시작 소리와 함께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다른 아이들은 수영선수를 꿈꾸며 훈련을 밥 먹듯이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마리아는 물속으로 뛰어들어 열심히 수영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푸른 물거품이 몰려와 마리아의 다리를 감싸기 시작했다. 마리아의 다리가 순식간에 인어의 지느러미로 변했다.
‘어? 내 다리가 물고기로 변했어. 어떻게 된 일이지?’
마리아는 재빠르게 앞서 나가는 자신을 보고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물속에서 미끄러지듯 유연하게 헤엄을 치고 있는 마리아,
다른 아이들의 눈에 인어의 지느러미는 보이지 않았다.
기적은 희망을 품고, 믿는 사람에게만 이루어지고 보인다.
"할머니, 보세요! 제 삶이 아름답게 흔들리고 있어요. 멋지게 수영하는 저 아이를 좀 보세요. 전 지금 너무 행복해요."
푸른 물거품 사이에서기쁨에 넘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다리로 일등이라고? 네가 우리를 제치고?”
다른 아이들은 도무지 결과가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패배를 인정하고 마리아에게 사과했다.
“우리가 그동안 너무 미안했어. 겉모습만 보고 너를 판단한 우리가 어리석었어.”
“마리아, 넌 굉장히 훌륭하고 멋진 친구야.”
아이들은 모두 마리아를 둘러싸고 축하해주었다.
푸른 물거품은 인어 공주였다.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고 사랑을 선택한 인어 공주는 물거품이 되어서도 마리아(왕자의 딸)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인어 공주는 또 어딘가에서 푸른 물거품으로 나타날 것이다. 누군가의 희망으로. 기적으로.
기적을 믿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인어 공주는 영원히 바다를 누비고 있다.
"나는 세상 곳곳에 남아 있어요."
어디선가 인어 공주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사랑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일이지만,기적처럼 아름답고 신비한 일이다.
사랑이 사랑에 머무르지 않고, 누군가의 삶에 한 줄기 빛으로 승화될 수 있다면 아름답게 흔들리는 인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