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에세이

사회적 통념에 대한 의문

by 외국인 노동자

나는 성매매는 나쁘다고 배워왔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불법이고, 사회적으로 해롭고, 개인에게도 결국엔 부정적인 영향을 남긴다고 믿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단순한 정의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과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가까운 친구 때문이다.


그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내며, 가족도 잘 챙기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가끔 성매매를 한다.


나는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완전히 이해하진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 모순적인 감정이 나를 생각하게 했다.


성매매를 선택하는 사람들.


그들이 ‘피해자’라고 규정되고,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는다는 사실도 나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분명히 알고 있다.


가정폭력, 빈곤, 성폭력 같은 배경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세상에는 똑같은 환경 속에서도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더 적은 돈을 벌면서도 공장에서 일하고, 가족을 부양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성매매를 선택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기보다 상대적으로 더 편하고 빠른 수익을 위한 결정일 수도 있지 않은가?


나는 이 지점에서 국가가 ‘피해자’라고 규정하고 지원금을 주는 시스템이 오히려 구조를 왜곡시킨다고 느낀다.


한 번 쉽게 돈을 벌어본 사람은,

느리고 고된 일터로 돌아가는 게 정말 쉽지 않다.


이건 단순한 습관의 문제가 아니다.


마치 도박처럼, 고소득과 즉각적인 보상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자신의 몸값이 떨어진 것 같은 감각을 견디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나는 성매매가 구조적으로 끊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단속이든, 지원금이든, 정책적 개입만으로는 이미 그 구조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을 바꾸기 어렵다.


그렇다고 이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수요가 있으니까 공급이 생긴다.


수요자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고, 그들도 평범한 얼굴을 하고 살아간다.


나는 그들에 대해 옹호하고 싶지도 않고, 공격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이중적인 시선, 말로는 금지하면서 현실은 용인하는 구조, 그리고 도덕적 우월감으로 타인을 쉽게 단죄하는 문화에 피로감을 느낀다.


나는 지금도 성매매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단순히 ‘맞다/틀리다’로 정리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구조에서 사람을 너무 쉽게 판단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들의 선택을 이해해 주자는 게 아니라,

그 선택의 배경과 구조에 대해 더 정직하게 말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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