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해상도가 달라진다는 것은
언제부턴가 유행처럼 떠돌던 말이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들은 왜 배워야 하나요?”
“우리 삶에 직접적인 연관도 없잖아요.”
누군가는 이렇게 답했다.
“그 지식들은 꼭 배우지 않아도 됩니다. 책을 읽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조금 더 높은 해상도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 말은 그럴듯했지만, 솔직히 나는 잘 와닿지 않았다.
나무를 볼 때, 단순히 ‘가로수’로만 보지 않고
이 나무의 이름이 은행나무라는 것,
왜 가을만 되면 지독한 냄새의 열매를 뿌리는 나무를
굳이 가로수로 심는지를 아는 것.
그런 지식이 내 삶에 얼마나 큰 차이를 줄까 싶었다.
흥미롭긴 해도, 막상 놀랍진 않았다.
그런데 오늘, 아주 짜릿한 경험을 했다.
10년도 더 된 어느 시절, 한창 유행하던 게임 *문명(Civilization)*의 오프닝 곡인 **‘Baba Yetu’**라는 노래를 기억한다.
처음 들었을 땐, 단순히 멜로디가 좋아서
영어도 잘 못하던 시절, 한글 발음을 블로그에서 찾아 따라 불렀다.
그 노래가 어떤 언어인지, 무슨 의미인지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냥, 좋았으니까 따라 부른 거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잊고 있던 그 노래가
알고리즘을 타고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그 순간 문득, 이 노래는 어떤 언어일까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스와힐리어였다.
놀랐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콩고, 케냐,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들이 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나는 늘 이렇게 물었다.
“어떤 언어를 써요?”
그리고 그들은 종종 이렇게 답했다.
“스와힐리어를 써요.”
그때도 나는 그 언어를
그저 '아프리카의 공용어’ 정도로만 이해했다.
한국에서 접해본 적도 없고, 당연히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좋아했고, 가사도 거의 외웠던 바로 그 노래가
바로 그들의 언어로 불려진 것이었다.
그 사실을 그들과 만나기 전에 알았더라면,
아마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더 가깝게, 더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들자, 아쉬움이 밀려왔다.
내 삶의 해상도가 그때는 아직 낮았구나.
지금의 내가 가진 ‘이해의 선명함’을 그때도 가지고 있었다면
더 풍요롭고, 다정한 장면들이 내 삶 속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된다.
지식은 삶을 직접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삶을 바라보는 눈을 바꾼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해상도로 세상을 본다.
어떤 이는 뭉개진 픽셀 속에서 살고,
어떤 이는 선명한 색감과 섬세한 질감을 인식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해상도는,
우리가 어떤 배움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이제, 조금 더 선명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