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기록

여행을 떠 날 무렵

by 외국인 노동자

나는 항상 생각했다.


헝가리에 가게 되면,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여행을 떠나야지.


바로 어제가 그날이었다.


도착해서 집을 구하고, 번호를 만들고, 장도 보고 이 도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될 무렵, 나는 생각했다.

다음 주 주말에는 뭐 하지?

고민은 길지 않았다. 부다페스트로 가야지.


나는 곧바로 짐을 챙기고 관광지를 검색했다.

부다페스트의 야경, 세체니 다리, 굴뚝 빵..


너무 많았다. 그래서 몇 가지로 줄였다.

크게 유명한 관광지로 도나우강 건너편에서 보는 국회의사당의 야경, 세체니 다리의 사자 석상, 그레이트 마켓 홀.


나는 데브레첸에서 키스페스트로 출발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곳에서 만난 데브레첸 공과대학의 재학 중인 아담이라는 친구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는 금요일에 집으로 가고, 월요일에 돌아온다고 했다. 식비 등의 금전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헝가리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평균소득이 매우 낮다.


우리는 알바만 해도 180은 받는데, 헝가리는 그렇지 못하다. 내가 전해 들은 이야기 중 충격적인 이야기는, 아무리 20년 경력이 있어도 140을 받는다고 한다.


이건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헝가리 직원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녀는 이 말을 하면서, 나는 그래도 그들보다 많이 받는다고 기뻐하며 말했다.


그의 이야기가 이해가 됐고, 그렇구나..라고 생각할 쯤에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짐을 풀기 전, 낮의 부다페스트와 짐을 풀고 난 후, 밤의 부다페스트를 보니, 밤이 월등했다.



찬란한 황금빛에 휩싸여 빛을 뿜어대는 웅장함은 누구라도 넋을 잃게 만들 것이다. 그 앞 도나우 강을 건너는 배들 또한 웅장함의 액세서리처럼 그곳을, 그 시간을 장식했다.


아, 이게 그거구나. 오래전 어딘가에서 봤던 부다페스트가 눈앞에 펼쳐지자 내 뇌는 가속했다. 기억의 인덱스를 알고리즘을 거치지 않고, 순식간에 찾아냈다.

나는 감탄했고, 그 건축물을 멀뚱히 바라보는 시간을 즐겼다.


부다페스트의 밤은 그때부터 시작했다. 나는 숙소로 돌아왔고 우연히 칠레인 제르미를 만났다. 그는 영어를 포함한 4개 국어를 할 수 있었고, 치과치료 때문에 헝가리를 방문했다고 했다.


나는 그와 한 참을 떠들었고, 그와 밤의 부다페스트를 구경하기로 약속했다.


그와 함께 길거리를 거니는 동안 많은 라틴계열의 사람을 만났고,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 친절했다. 그들 중 한 명에게는 라틴 계열의 춤을 배우고, 다른 이에게는 R 발음을 배웠다.


밤의 도시답게, 반갑지 않은 손님들도 보았다. 그는 마리화나를 파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어쩔 줄 모르자, 제르미가 나섰다.


정말 든든한 지원군이었고, 그 와는 나중에도 꼭 다시 만나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화려한 부다의 밤이 저물고, 아침에서야 기차를 타고 다시 데브레첸으로 돌아왔다.


데브레첸에 돌아오면서, 어디로 떠나거나 이동하는 헝가리 사람이 정말 많았는데, 기차에서 내린 이들이 가족을 만나면

어른, 아이, 청소년 할 것 없이 이들의 가족을 안아준다.


가족끼리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을 정말 많이 봤는데, 볼 때마다 그들의 가족애가 한국과는 다르다고 느낀다.


우리는 크면 이런 모습들을 숨기며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행동으로 치부한다. 대게는 창피해하고 부끄러워한다.

우리는 감정을 드러내는 표현을 과거에 묻어두고 평생 꺼내지 않는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렇다.


만약, 그들이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보면 경악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말하겠지, 우리의 문화가 이상하고 잘못됐다고. 그들은 아마 단번에 파악할 것이다.


마치 기내수하물의 제한 때문에 버려두고 온 물건 같다. 내게는 헤어드라이가 그렇다. 헤어드라이기는 사소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가장 처음 챙겨야 하는 물건이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가족과의 애정 표현도 그런 것 아닐까.


너무 소중하지만, 실용적인 것에 둘러싸여 필요성을 망각하고 무겁다고 판단해 놓고 온, 그래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빈자리를 실감하게 되는 그런 것.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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