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방리 고전

오래된 도서관 속 할머니를 찾아서

by Ashley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짧은 시간 부모님은 맞벌이 생활을 하셨고 나는 할머니와 함께였다. 개포동의 한 주공 아파트 속 어린 손녀를 데리고 할머니의 마음과 몸은 많이 지쳐계셨을 것이다. 할머니의 그런 속을 알 리 없는 어린 나는 그저 엄마와 떨어져 있기 힘들어했던 한 아이였고 거의 매일 밤 울며 할머니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할머니의 속을 많이도 뒤집어 놓았던 나 자신도 비위가 약하고 겁이 많아 조금이라도 공포감을 조성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 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그럼 할머니는 말없이 따스한 손길로 내 등을 토닥여 주셨다. 그렇게 할머니는 당신의 괴로움은 고이 접어 장롱에 넣어두시고 어린 막내 손주를 위해, 딸들과 가족을 위해 온도를 나누셨다.


음식을 가리진 않았지만 ‘밥’은 좋아하지 않았다. 우유는 1리터씩 마시지만, 쌀은 숟가락에 한가득 퍼 한 톨 두 톨만 남겨놓고 덜어냈다. 지금 내 옆에 강아지가 있지만, 만약 이 귀중한 생명이 밥을 먹지 않는다면 정말 큰 고민일 것 같다. 할머니는 얼마나 걱정하셨을까. 억지로 먹이셨을 수도, 겁을 주며 먹을 수밖에 없게 하셨을 수도 있지만, 할머니는 고슬고슬 윤기 나는 밥을 한 그릇 담아 무 김치와 함께 아삭아삭 경쾌한 소리를 내며 잡수셨다, 밥은 싫다 하는 우유를 들고 있는 나의 옆에서. 그리곤 말씀하셨다.


“너는 절대 절대 먹지 말어라. 나 혼자 다 먹으려고 가져온 거다. 사각사각 오독오독.”


생방송으로 바로 내 앞에서 펼쳐지는 향과 소리를 가미한 먹방이라니, 먹지 않고는 버티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때마다 나는 웃는 표정도, 우는 표정도 아닌 얼굴을 하고선 주방에서 수저를 가지고 와 할머니 옆에 앉았다. 할머니의 미션은 매번 완벽한 성공이었고 나는 할머니 덕에 지금 작지 않은 키에 건강한 나물 음식들을 맛있다고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할머니의 사랑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된 무렵,


그리고 그 사랑 속에서 유영하며 할머니와 더 넓고 깊은 바다로 헤엄치고자 결심하게 된 무렵,


할머니는 7번의 수술을 하셨고 거동이 불편해지셨고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을 받으셨다.


나는 미국에서 대학교 졸업 후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할머니는 요양병원 입원 날짜를 받아두고 계셨다.


더는 수화기 너머 할머니께 “할머니, 공부 끝나고 내후년 여름에 갈게. 가서 맛있는 음식도 많이 사드릴게. 건강하게 몸조리하시고 계세요.”라고 말할 수 없었다. 학교라는 곳은 나를 기다려 줄 텐데 할머니는 날 기다려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 촉박한 시간이 혀끝으로 느껴졌다. 가방을 싸고 비행기에 올라타 12시간을 날아 한국에 도착하니 할머니의 삶과 웃음이 가까워졌음이 실감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