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도시 기행 04
몇 해 전 이탈리아와 그리스를 아우르는 여행을 계획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로마를 시작으로 아네테와 산토리니 섬 등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로마에서는 아침밥을 거하게 차려준다는 배우자의 원픽 게스트하우스에 묵을 예정이었고, 아테네와 산토리니는 전망이 끝내주는 에어비앤비 숙소를 잡았었다. 하지만 얼마 안가 바로 그 돌림병이 발발했고, 우리는 급하게 모든 걸 취소했다. 그래서일까? 제주와 안동, 태백 등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유럽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많은 여행자들에게 로망이자, 꼭 (다시) 가봐야 하는 그 유럽 말이다.
그래서 해외여행의 장벽이 낮아진 올해 유럽 여행을 떠나왔다. 그것도 변방의 포르투갈로. 앞서 무려 20여 년 전 유럽여행 중 가장 좋은 기억을 남긴 곳으로 포르투갈을 꼽기도 했는데, 나의 개인적인 경험 외에도 포르투갈에 가야 할 이유는 꽤 많다.
우선 포르투갈은 서유럽 국가다. 대륙에서 가장 서쪽에 있기도 하거니와 대항해 시대를 거치며 쌓아온 찬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아는 그 서유럽의 감성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 골목길만 다녀봐도 감탄을 자아내기 부족함이 없고, 상대적으로 신뢰할만한 여행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또한 날씨가 너무 좋다. 남쪽으론 지중해의 끝, 서쪽에는 거대한 대서양을 끼고 있다. 이 글을 쓰는 9월 말 기준 때로는 따가울 만큼 햇빛이 강렬하지만, 그늘에만 들어가면 금세 땀이 식고 서늘하다 느낄만한 날씨다. 저녁에는 가벼운 외투 하나 걸치면 야외 테이블에서 부담 없이 저녁 식사도 가능하니 여행하기엔 제격이다.
거기다 음식이 풍부하고 저렴하다. 리스본에 막 도착해서 마신 에스프레소는 잔당 0.8유로였고, 포르투에서 매일 아침 식사를 해결하는 식당은 카푸치노가 단돈 1유로, 그리고 거의 모든 빵을 1유로에 판다. 웬만한 식당에서는 와인 한 병(750ml)을 10유로 이내에 주문할 수 있고, 비싸다는 도우루 강변 레스토랑에서도 10유로대에 판매한다. 결국 비싸 봤자 한 병에 3만 원인데, 소매점에서 구매하면 병 당 8천 원 이하다. 거기다 해산물 요리들이 많고 저렴해서 매일 저녁 행복한 식도락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해물밥은 한국 생각 안 날 정도로 우리 입에 착 감긴다. 거기다 스테이크를 주문할 수 있는 식당도 많고, 고기 질도 좋아서 육식파들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끝으로 사람들이 친절하고 안전하다. 어설픈 포르투갈어 한 마디에도 눈을 크게 뜨며 반겨주고, 어딜 가나 여행자들에게 친절하다. 아직까지는 인종차별을 받는다는 느낌은 받아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일일투어 가이드님의 말씀으로는 술집이 밀집해있는 지역도 늦은 시간까지 꽤 안전하다고 하다. 인근 여느 나라처럼 누가 봐도 소매치기하려는 듯한 무리들이 보이지 않았다.
배우자와 각자의 여행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난 “포르투갈 되게 좋아.”라며 주입식 세뇌를 해왔다. 따라서 이번 여행은 내가 포르투갈을 찍었고, 배우자가 동의하여 오게 되었다. 아주 오래전 3박밖에 하지 않았지만, 포르투갈에 기대했던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그대로라는 사실에 고맙다. 오늘은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여유 있게 낮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저녁엔 강 건너 와이너리에서 파두 공연을 감상하고, 포르투 와인 테이스팅을 해 볼 예정이다. 그 후에는 도우루 강변의 레스토랑에서 문어 다리 스테이크를 먹으며 그린 와인을 곁들이려 한다.
요즘 좀 뜨고 있다는 포르투갈에 갈까, 말까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지체 말고 와 보시는 걸 추천한다. 로마의 콜로세움이나 파리의 에펠탑 같은 세계적인 구조물은 없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유럽의 모든 것이 다 있는 곳이다. 오히려 처음 봐서 더 멋진 것들도 많으니, 더 유명해지기 전에 비행 편부터 알아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