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도시 기행 11
유럽의 웬만한 유명 도시에는 한국인 가이드가 진행하는 일일투어가 있다. 반나절 혹은 하루 종일 진행하고, 보통은 가이드 한 명이 참여자들을 케어한다. 가격도 몇만 원 수준이라 유럽 물가 기준으로는 크게 비싸지는 않다. 하지만 예전의 난 돈도 아깝고, 뭐 대단한 게 있을까 싶어 일일투어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영국에 사는 누나네 집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당시 매형이 주재원으로 근무하게 되어 런던 살이 중이었고, 가까운 거리를 십분 활용해 유럽여행을 많이 다니던 때였다. 그리고 반드시 일일투어를 해본다는 얘기를 들었다.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기 앞서 쭈욱 한 번 훑어볼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나는 적당한 가격의 저가항공 비행편을 검색했고, 로마로 3박 4일 간 짧은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물론 조언받은 대로 한국어 가이드가 계시는 일일투어를 신청했음은 물론이다. (TMI: 여러 번 밝힌 대로 배우자와는 이 투어에서 만났다.)
그때 기억이 좋았다. 부담스럽지 않은 비용임에도, 가이드님은 감사하다 느낄 정도로 최선을 다 해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여행 중에도 포르투, 리스본에 도착한 다음날은 일일투어를 다녔다. 로마에는 많을 땐 스무 명도 넘게 참여한다고 들었는데, 포르투갈은 대략 다섯 명 정도라서 소규모로 부담 없이 돌아볼 수 있었다.
가이드는 정해진 목적지를 순서대로 둘러보며 그에 관한 설명을 해 주셨고, 사진이 잘 나오는 스폿에서는 정해진 포즈를 주문하며 사진을 찍어주셨다. 이동 중에도 준비하신 여러 이야기들을 들려주셨고, 투어가 마친 후에도 맛집 정보까지 꼼꼼히 챙겨 보내주셨다. 참고로 사진을 너무 잘 찍어주셔서 사진에 진심이 아닌 우리 커플로써는 더욱 고마웠다.
우리가 만난 가이드님들은 모두 현지에서 생활하고 계셨다. 여행 가이드라는 직업적 특성상 맞지 않는 일을 하고 계시지는 않을 것이고. 유럽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건 많은 이들의 꿈이니, '그들은 과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몇 번의 일일투어를 경험한 우리는 여러 이야기를 나눈 끝에 '스트레스 많이 받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미 우리나라 서비스업은 "고객님,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식의 과한 친절이 일상화되어 있어서인지, 유럽에서 벌어지는 일일투어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이드는 변화무쌍한 날씨를 대비하여 여분의 옷을 챙겨 왔고, 날이 추워지니 자연스럽게 옷이 얇은 참여자를 챙겼다. 한 도시도 아니고, 두 도시 모두 그랬던 걸 보면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뿐이 아니다 가이드가 직접 발굴한 사진 스폿에서는 차례로 한 장씩 사진을 남겨주시기까지.
거기다 투어 후기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멀리 떨어진 관리자 입장에서 평가할 수 있는 건 후기뿐이다. 언뜻 보면 정해진 코스에 준비된 멘트를 해주는 거라, 별다른 문제가 있을까 싶은데. 후기를 보면 가끔 '최악'이라는 글들이 있다. 거기에 가이드는 장문으로 사과하고, 혹여나 새로 올 고객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자신의 변을 적어야 한다.
최근의 돌림병으로 많은 가이드들이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투어의 모객은 어디까지나 도시의 인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인기가 떨어진 도시의 투어 상품은 자연히 모객이 어렵다. 가이드 개인의 역량으로 모든 걸 커버할 수 없는 일인 셈이다. 어떻게든 찾아오는 고객들을 잘 챙겨서 보내야 하는 삶. 뜬금없이 애 먼 소리 하는 댓글을 수습해야 하는 상황. 아무래도 쉽지는 않은 일 같다.
** 포르투의 이브님, 리스본의 주연님.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늘 웃음 잃지 않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