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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석박 목소리

물물물, 그리고 데이터 공유경제


뿌린 농약이 경작물에 잘 달라붙지 못해 땅에 떨어져 결국 낭비된다는 보스턴 외곽 농부 분들의 고충을 들었고, 그러면 농약 방울이 미끄러지지 않고 경작물에 한 번에 달라붙는 그런 기술은 없을까 고민했다.


추운 겨울 보스턴 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들 표면에 형성된 얼음의 무게 때문에 추가 연료 소모가 너무 심하다는 기업인의 하소연을 들었고, 얼음 형성 초기 단계 때 살얼음을 저비용으로 단번에 없애버릴 수 있는 기술은 없나 논문들을 뒤적였다.


이탈리아 석유회사 방문 때 지저분한 녹조류 탱크를 목격했고, 녹조류를 가루 내 건강식품으로 빨리 만들어 팔아야 하는데 더러운 탱크 내벽 때문에 빛 투과가 되지 않아 녹조류가 너무 느리게 자라 걱정이라는 관리인의 투정에, 그럼 탱크 내벽에 녹조류가 달라붙지 않게 하는 기술은 무엇일지 생각했다.


이 세 가지 문제는 흥미롭게도 내가 학부 때 좋아하던 유체역학 (fluid mechanics) 의 관점에서 접근 가능했다. 유체는 말 그대로 부드러운 물체, 즉 액체와 기체를 뜻한다. 잘 보면 농약은 결국 “물”방울에 담겨 야채와 과일 표면에 도달하는 것이었고, 비행기 표면에 형성된 불필요 얼음도 “물”이라는 액체가 얼어서 생긴 현상이었고, 녹조류가 자라는 탱크 내부도 결국엔 “물”로 가득 찬 환경이었다.


이 토픽들은 자연스레 내 석사 연구 주제가 되었다. 주중에는 녹조류를 키우며 탱크 내벽 디자인과 오염 현상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했고, 비행기 재질 표면에는 전극을 연결해 얼음 형성 과정을 관찰했다. 주말에는 농장에 내려가 트랙터 운전 법을 배워 케일, 시금치, 상추 등의 이파리에 연구실에서 특수 제작한 농약을 뿌리고 이파리 표면에 얼마나 잘 달라붙었는지를 관찰했다. 이 모든 결과물들을 갖고 교수님과 미팅을 하며 논문 작성을 했고, 펀딩 단체 앞에서 직접 발표도 하면서 우리 연구가 왜 이 세상에 유의미한지를 설득했다. 


그렇게 제조업에 유체역학과 표면공학을 접목한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박사 과정에서는 제조업에 인공지능 바람이 불면서 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 있는 여러 회사들이 당면한 어려움들, 예컨대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는 있으나 그것에서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뽑아내지 못하는 회사들의 고충을 해결해줄 수 있는 서비스 플랫폼의 개발, 또 이로 인한 데이터 공유 경제의 실현을 꿈꾸며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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